윗집에 중학교 동창이 살고 있었다
1편 : https://brunch.co.kr/@sosim-in/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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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름은 현지였다. 현지를 처음 본 건 동네학원에서였다. 같은 A초등학교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같은 반을 했던 적은 없어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그렇게 2년 동안 서로 얼굴만 아는 시큰둥한 사이로 지내다가 6학년 때 같은 반이 되었다. 그래도 낯이 익었던 탓에 현지와 나는 빠르게 친해졌다. 그녀는 모두에게 친절했으며 착한 성품을 갖고 있었다. 의외로 강단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남자애들이 장난 삼아 어디라도 때리고 도망가면 가만있지 않고 달려가서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내는 그런 아이였다. 현지는 진실게임에서 좋아하는 여자아이 리스트에도 종종 이름을 올렸다. 남자아이들은 각자 그럴듯한 이유를 들어가며 왜 그녀를 좋아하는지 에둘러 설명했지만 난 그들이 솔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들도 빨간 안경 뒤에 가려진 현지의 얼굴이 예쁘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A초등학교 졸업자들은 대부분 A중학교로 진학했는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10명 남짓 되는 아이들은 B중학교로 진학하게 되었고 불운하게도 그 안에 나와 현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6년 동안 같이 뛰놀던 아이들과 다른 중학교에 간다는 것은 당시에 꽤나 큰 공포로 다가왔다. 이런 현지와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담임선생님은 "너희들 거의 다 A중학교로 가지? 다른 초등학교에서 온 애들 괴롭히면 안 된다."라며 '요즘 왕따의 심각성'이라는 시청각 자료를 틀어주었다. 각목으로 후배를 때리거나 옷을 발가벗기는 장면은 초등학생의 시선으론 도저히 믿을 수 없어 연출된 장면이라고만 생각했다. 물론 그보다 더한 일도 많이 일어난다는 것은 중학교 진학 후 금방 알게 되었다. 심각하게 영상을 보고 있던 현지에게 지나가는 말로 내가 지켜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자 현지는 사뭇 진지하게 “진짜?”'라고 되물었다.
B중학교 입학 후에는 사주에도 없는 반장을 하게 되었다. 9할 이상이 B초등학교에서 올라온 아이들이라 같이 어울리지 못하고 맨 앞에 조용히 앉아있었을 뿐인데 담임선생님에겐 그 모습이 과묵하고 책임감 있어 보였던 모양이다. 반장 같은 건 하기 싫었기에 “선생님, 보통 투표를 하지 않나요?”하고 물었지만 입후보자가 아무도 없어 담임의 권한으로 강제 반장 데뷔를 하게 됐다. 부반장은 왈가닥대는 소희라는 친구가 맡게 됐는데 B초등학교 출신이라 친구도 많고 책임감도 강해 수고스러운 일을 도맡아주었다. 소희가 없었다면 아마 난 B초등학교 개교 이래 최악의 반장 타이틀을 달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소희를 보고 있으면 마치 초등학교 때의 현지를 보는 느낌이었다. 소희와 나는 반장과 부반장이라는 관계 속에 빠르게 친해졌다.
하루는 현지가 급하게 나를 찾았다. 체육복을 깜빡했다는 것이다. 다행히 현지네 반과 같은 날 체육수업이 있었기 때문에 체육복은 있었지만 문제는 체육 수업을 한 뒤라 옷이 땀에 절어있었다는 것이다. 냄새나는 옷을 건네기가 곤란해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소희가 여자친구냐며 너스레를 떨면서 다가왔다. 우선 서로를 소개해주고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소희는 흔쾌히 자신의 체육복을 현지에게 빌려주었다. 아무래도 남자애 땀냄새보다는 낫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 날 이후로 현지와 소희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둘이서만 교환일기장을 쓰기도 하고 여자들만의 물건을 서로 주고받을 때도 있었다. 같이 하교할 때는 주로 캔모아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거나 노래방에 갔다. 가끔 대학가 골목 액세서리 가게에 들를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항상 소희와 현지의 가방을 들고 밖에서 하염없이 그들의 쇼핑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시간이 갈수록 현지와 나의 관계를 궁금해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남녀불문 인기가 많았던 소희는 약속이 많았기에 현지와 나 둘이서만 하교할 때도 잦았는데 아마 그 모습을 보고 우리가 사귄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기분은 나쁘지 않았으나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혹시 현지가 괴롭힘을 당하면 어떡하지? 학기 초부터 연애질이냐며 아니꼽게 보는 선배들이나 동급생들이 분명히 있을 텐데. 게다가 초등학교 졸업 전 담임선생님이 틀어준 '요즘 왕따의 심각성'에서 튀는 행동을 지양하는 것이 왕따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내용도 왠지 있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조금씩 현지에게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은근하지만 조금씩 불편하도록. 그러자 현지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우리 반을 찾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현지와 나는 가끔 교과서 빌릴 때만 급하게 찾는 사이가 되었다.
한 번씩 복도에서 마주치는 현지는 볼 때마다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 물론 2차 성징이 오는 시기인 만큼 체형이 변한 것도 있었겠지만 풍기는 분위기 자체가 묘하게 달랐다. 그녀의 상징과도 같았던 빨간 안경은 어느새 서클렌즈로 바뀌어 있었고 어깨길이의 생머리는 유행하는 파마스타일로 바뀌어 있었다. 치마와 셔츠 역시 짧아져만 갔는데 초등학교 때와 많이 달라져서인지 인사를 건네기도 어색할 정도였다. 현지 본인 역시 자신의 모습이 아직은 어색한지 무리들 사이에서 항상 상기된 얼굴로 땅이나 먼 산을 보며 바보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나마 학원에서는 몇 마디라도 나누며 장난을 치곤 했는데 2학년 여름방학에 그녀가 학원을 그만두게 되면서 그마저도 없는 일이 돼버렸다.
현지와 나는 3학년 때 같은 반이 되었다. 그 사이 현지의 위상은 사뭇 달라져있었다. 예쁘기로는 학교에서 1번 2번 했고 후배들 사이에서는 예나언니로 불렸다. 예나언니란 '예쁜 나이키 언니'를 줄인 말인데 나이키 후드를 자주 입어서 붙은 별명 같았다. 우리 반은 학교 짱을 포함해 이상할 만큼 불량아들이 많았다. 현지와 친분이 있어서였는지 그들은 나를 건들지 않았고 오히려 무리에 끼울 때도 있었다. 부담스러워 그쪽 무리에 자주 끼진 않았지만 가끔 그들과 어울릴 때마다 느낀 건 현지는 그들과 태생이 다르다는 것이다. 학생주임을 피하기 위해 새벽에 등교하면서까지 유지하는 파마머리와 짧게 줄인 치마, 가끔씩 찍찍 뱉어대는 침은 '나 좀 봐줘. 나도 이렇게 불량스러운 아이야.'라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일진의 중심은 당연하게도 학교 짱인 창수였다. 창수는 키도 크고 운동도 잘했으며 심지어 잘생기기까지 했다. 그런 창수와 현지가 사귀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둘이 사귀게 된 그 시점부터 현지는 아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녀의 행동이나 말투는 점점 더 불량스럽게 변해갔고 등하교는 항상 창수의 오토바이와 함께였다. 매점 뒤 공터에서 한 손에는 소시지빵을, 다른 한 손에는 나무젓가락에 담배를 끼워 피우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완연한 일진의 모습이었다. 불량아를 자처하던 현지는 어느샌가 진짜 불량아가 되어 있었고 학생주임은 교내방송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현지를 불러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