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번 선보고 결혼한 남자
그 남자와 첫 선에 결혼한 여자
어떤 모임이든 간에 모임이 무르익거나, 관계가 무르익으면 서로에게 꼭 물어보게 되는 질문이 있다.
“남편을 어디서, 어떻게 만났어?”
그 얘기는 세상 어느 얘기보다 재미있다. 여자들이 모이면 물론 출산 얘기도 빠지지 않는다고는 하나, 개인적으로 극심한 고통으로 점철된 애 낳는 얘기보다, 싱그러웠던 시절에 어떻게 서로를 만나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는지의 이야기가 훨씬 흥미진진하다. 그런데 살다보니 엄마에게는 그 질문을 한번도 안했던 것 같다. 엄마와 매일의 산책을 하면서 넌지시 물었다.
“엄마, 아빠 어떻게 만났어?”
엄마는 전에 없이 신난 목소리로 아빠와의 인연이랄까 러브스토리를 시작하신다. 벌써 40년도 더 전의 일인데 엄마에겐 어제 일처럼 생생한 것 같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의 소개로 교회를 알게 된 엄마는 교회에 가는 게 그렇게 즐겁더란다. 크리스찬이 아닌 부모님이 교회 가는 걸 반대하시자, 일요일 아침마다 남강에 빨래하러 간다며 10식구 빨래를 온통 모아 짊어지고 나오셨단다. 그리고 교회 가기 전에 빨래를 하든, 예배를 마치고 빨래를 하든 그렇게 예배와 빨래를 마무리 짓고 빨래감을 이고 지고 집으로 돌아 오는 길이 그렇게 행복하실 수 없으셨다고.
결국 엄마는 목회자 생활을 결심하시고 수도원으로 들어가셨고, 교회에서 전도사 생활을 하시며 2년간을 지내셨다. 그런데 하루는 언니가 결혼을 하니 집으로 들르라는 전갈이 와서 집으로 갔는데, 이때가 아니면 딸을 붙잡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아신 부모님의 간절한 소망 때문인지 사건은 이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났다.
집에 머무는 동안 하루는 동네에 살던 고모가 한 할머니와 함께 집에 오셨더란다. 먼길을 오셨는지 목이 마르시다는 그 할머니의 말씀에, 엄마는 그 시절 표현 그대로 오봉에 물을 담아 건네 드렸는데, 그 모습이 상대 할머니의 마음에 그렇게 들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할머니는 서른 번 선을 보고도 마음에 드는 처자가 없어 결혼을 못하고 있던 아들이 있던 분, 바로 나의 친할머니셨던 것이다.
일은 착착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엄마는 얼떨결에 고모와 미래의 시어머니가 주선한 맞선을 보게 되었고, 그것은 엄마 인생의 첫 선이자, 남자와의 첫 만남이었다. 서른 번의 선을 퇴짜 놓았다는 이 남자는 과거가 무색하게 첫눈에 이 여자가 마음에 들었단다. 그렇게 두 분은 단 두 번의 만남을 뒤로하고 결혼날을 맞이하게 되었단다. 막상 결혼 날짜를 잡아놓고, 요즘말로 현타가 온 엄마는 결혼 날짜가 다가오자 친정아버지께 ‘나 결혼 못 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며 ‘그 사람이 작은 민간 회사에 다닌다는데 다음에 살기 어려워지면 어떻게 할거냐고’ 따졌단다.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던 외할아버지는 ‘다음에 만에 하나 니가 그런 일이 있게 되면 내가 도와주마’ 하고 약속을 하셨다고. 그렇게 미래의 나의 아빠와 엄마는 결혼에 골인하셨다.
말이란 그렇게도 무서운 것인지. 아니면 때로 사람은 자신의 미래를 예견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결혼한지 5년이 채 되지 않아, 아빠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그래서 치료법도 없다는, 길어야 2-3년, 맥시멈 5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근육병을 진단받게 되셨다. 작은 회사에서 일하면서 실력을 인정받아 대기업 특채로 뽑혀가 서울에서 일하시며 너무 몸을 혹사한 탓이었는지, 아니면 알 수 없는 하늘의 뜻이었던지 그렇게 두 분은 서울 생활을 정리하시고 두 분의 고향이자 엄마의 친정이 있는 진주로 다시 내려와 터를 잡고 살게 되셨다고.
아빠가 서울로 가자고 할 때 엄마는 서울이 복잡해서 싫다고 하셨다는데, 이미 두 회사 간에 이야기가 마무리 된 상태라 되돌릴 수 없는 상태였단다.
"우리가 서울만 가지 않았더라면 아빠가 그렇게 긴 시간동안 아픈 일도 없었을 텐데..."
라며 엄마는 마음아파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가 아팠던 그 시절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주말도 없이, 새벽에 별을 보며 퇴근하는 아빠였던지라 얼굴 한번 제대로 못 보고 살았는데, 그렇게 다정한 이와 많은 시간 함께 보낼 수 있었던 아빠와 함께 하던 시절이, 그리고 우리가 한참 크던 그 시절이 엄마는 제일 그립고 행복했었단다.
아빠가 돌아가신지 벌써 22년이 흘렀다. 그런데도 아직도 잠결에 나도 모르게 아빠 생각에 눈물을 적시곤 한다. 아빠와 함께 산 만큼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빠가 아직 그리운 거 보면, 나에게도 엄마에게도 아빠를 기억하고 추억하고, 그리워할 시간이 아직은 더 필요한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