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 5학년을 맡던 해의 일이었다. 하루는 나보다 한 살 어린 옆반 선생님이 고민스런 얼굴로 내 교실을 찾아왔다.
“왜? 무슨일 있어?”
“선생님, 지훈이 아시죠? 지훈이 어머니께서 과목별 진도를 매일 아이 알림장에 따로 교사가 직접 적어서 보내달라고 하셨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교사 경력이 15년도 훌쩍 넘은 이 노련한 후배교사가 굳이 바쁜 시간에 왜 나를 찾아왔는지 이해가 되었다. 5학년이면 매일 과목별로 어디까지 배웠는지는 자신이 더 잘 알터였다. 그리고 지훈이는 꽤 똘똘한 아이였다. 5,6학년 학생의 경우 교육청 영재반을 지원할 수 있는데 영재반을 지원할 정도의 아이였다. 그런 아이의 엄마가 아이의 매일의 진도를 매일 교사가 직접 적어서 달라는 것은 ‘내 아이는 특별하며, 내 아이에게 그런 것을 매일 시킬 수 는 없으니 교사인 네가 직접 하라’는 메시지로 들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실 나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 아이의 엄마는 자신의 아이가 그 정도를 해 낼 수 없다고 생각했던 걸까. 아니면 아이에게 번거로운 일을 시키고 싶지는 않았던 걸까.
그 후배의 시름어린 이야기를 전해들으며 문득 5년 전 6학년을 가르치던 해가 생각이 났다. 그 해 우리 반에는 운영 위원회 소속의 엄마가 있었다. 언젠가 운영위원회 회의 중 자신과 생각이 다른 선생님의 발언에 자신의 앞에 있던 뜨거운 녹차를 선생님 얼굴에 부어버렸다는 끔찍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터였다. 그런 것에 겁먹고 앉아 있기에는 하루 하루 해내야 할 일, 신경써야 할 일이 너무도 많았다.
그러던 중 하루는 교감선생님께 호출이 왔다. 사실 교직경력 5년이 되도록 교감선생님께 호출이 온 적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학교에서 하는 모든 일에 내가 관여가 되었을 만큼 바쁜 나날들이었다. 돈 한푼 더 주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참으로 열심히 일했던 패기 있고 열정적인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땐 경제적 성과나 평가 와 무관하게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교직 문화가 있기도 했더랬다.
그런데 새로 옮긴 학교에서의 교감선생님의 갑작스런 호출이라니. 왠지 좋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나에 대해 알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상황이었을 것이다. 교감선생님께서는 화가 머리끝까지 난 채로 대뜸 소리부터 치셨다.
“아니 정선생, 대체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애들한테 쿠션 나눠주기 전에 미리 하나 하나 다 확인했어야지!”
이건 또 무슨 밑도 끝도 없는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인가. 알고 보니 실과시간에 ‘쿠션 만들기’라는 바느질 활동이 있었는데 그 아이가 받은 솜통에 곰팡이가 묻어 있었던 것이다.
‘아차차’
이미 늦은 일이었다. 보통 교실에서는 반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배분할 일이 많게는 하루에도 여러번 있다.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하루에만도 나눠주어야 할 종이 가정통신문과 학교 예산으로 사서 나누어 주는 준비물이 꽤 많았다. 보통 아이들은 자신의 것을 가져가거나 조장이 나와서 나눠주곤 했다. 미처 꼼꼼히 살피지 못한 내 불찰이었다.
나는 그 아이가 왜 곰팡이를 발견하자마자 나에게 말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보았다. 그 아이는 여분의 솜통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확인했을 것이다. 학습준비물이라는 것은 학생 수에 맞추어 각 교실에 할당되어 배분되기 때문이다. 자기가 곰팡이가 있어 이걸 못쓴다고 반납하면 다른 아이가 그것을 써야만 한다는 것을 그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걸 모를 정도의 아이가 아니었다.
마냥 내 불찰을 탓하며 자학하고 있을 수만도 없었다. 교감선생님의 호통 이후에도 수업을 계속 해 나가야 한다. 좋지 않은 마음이지만 아이들에게 내색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듯 평소처럼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쳐야 한다.
하루에도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수업하랴 매시간 다른 수업을 진행하랴, 나도 기계가 아닌 사람인 이상 실수하고 놓치는 부분이 있을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스스로에게 나 자신을 비난하고 힐난하면 교사는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없다는 걸 나는 몸으로 겪어 왔다. 다만 그 일 이후로는 무언가를 아이들에게 나눠줄 때도 어떤 변수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염두 해 두고 한번 더 확인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몇 년후 그 후배가 결국 교직을 떠났다는 소식이 누군가를 통해 전해졌다. 누구보다 아이들에게 진심이었고, 수업에 열정적이었던 후배였다. 학예회를 하면 ‘도대체 저런 무대를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준비할 수 있지?’ 싶을 정도로 매사에 열심히 하던 교사였다. 그런 후배를 더 이상 교직에서 만날 수 없다는 게 꽤 많이 아쉬웠다.
내 주변에는 이미 여러 풍파로 교직을 떠난 이들이 많이 있다. 서이초 교사 사건 전후로 아니, 이미 ‘학교 폭력’이 학교에 들어온 10년 전부터 학교는 이미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어 가고 있었다. 가해자 아이의 부모에게는 왜 피해자 아이만 감싸느냐는 비난이 들려왔고, 피해자 부모에게는 왜 가해자 아이만 감싸 도냐는 비난이 돌아왔다.
교사에 대한 존경은 고사하고 비난에서 나아가 고소의 소식도 종종 들려오는 시절이 되어 버렸다. 교사의 월급은 나라에서 받는 세금이며, 그 세금을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내고 있다는 인식이 학부모 사이에서 꽤 퍼져 나가있었다. 교사와 학부모가 너와 나로서가 아니라 갑과 을로 존재할 때 얼마나 슬퍼질 수 있는지를 몸으로 깨달았다. 퇴근길에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며 아이의 요즘 학교 생활을 부모님께 신나서 읖조리던 순수했던 나의 모습도 점점 사라져갔다.
교사와 학부모는 한 아이를 잘 기르려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만난 사이이다. 하지만 한 반에는 대략 30명의 아이가 있으며, 그 아이에게 두 명의 보호자가 있으니 교사는 한해마다 100명에 육박하는 이들을 이끌고 가야 하는 배의 선장과도 같은 역할이다. 한 해에 한 교실 안에서 수많은 요구가 오고가고 사건이 터진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학부모는 서로 완전히 다른 요구를 하고 그 사이에서 교사는 자신이 이도저도 할 수 없음을 알고 점점 무기력해져간다.
“도대체 그런 일이 있을 때 선생님은 무얼 하고 계셨습니까?”
교사는 이 질문에 순간 말문이 콱 막힌다. 그래서 쉬는 시간조차 화장실을 가지 못하고 방광염을 달고 사는 동료 교사들을 많이 보아왔다. 서이초 교사 사건 이후로 참아왔던 교사의 분노는 거대한 불씨가 되어 터져버렸다.
“도대체 우리가 하지 않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 반문이 너무나도 슬프고 마음 아팠다. 나는 어떤 조직에서도 이렇게 성실하고 정직한, 순수한 사람들을 만난 적이 없다. 한때는 학교가 이렇게 변해버렸다는 사실이 너무 슬퍼 학교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원하지도 않은 무거운 업무의 연속으로, 교실 안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들 속에서 몸도 마음만큼이나 지쳐, 수술을 하고 후속치료가 이어지며 본의 아니게 일터를 떠난 시간들이 길어졌다. 어쩌면 갈수록 각박해져만 가는 학교라는 세상 속으로 들어갈 자신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꿈꾸는 학교는 어떤 곳일까 생각해 본다. 갑과 을이 아닌 ‘너’와 ‘나’로 만나는 학교라는 세상 속에서 서로를 보듬으며 함께 성장하며 나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