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내내 푹 빠져서 보던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가 얼마 전 종영했다.〈사이코지만 괜찮아〉속 ‘문강태’는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형 ‘상태’를 돌보며 살아가는 정신병동 보호사로, 삶의 무게가 버거워 사랑을 거부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성공한 동화 작가이지만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지닌 ‘고문영’은 타인의 감정에 무관심하고, 충동적이며 공격적인 행동으로 아동문학계의 뜨거운 감자로 그려진다.
드라마〈사이코지만 괜찮아〉는 어린 시절, 자신과 가장 가까운 존재인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와 결핍으로 인해 과거에 묶여 영혼이 자라지 못하고, 온전한 어른이 되어 살아갈 수 없었던 강태와 문영이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고 치유해가는 한 편의 동화 같은 작품이다.
가장 사랑하고 의지했던 가족에게 상처 받은 아이들
드라마〈사이코지만 괜찮아〉의 회차별 제목은 우리에게 익숙한 동화와 극 중에서 문영이 쓴 동화의 제목으로 이뤄져 있다. 동화는 이 작품의 주제를 상징하는 주요한 장치로 사용된다.
성공한 동화 작가이지만 정작 기존의 동화 속 세계와 그 세계를 채우는 사랑 앞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문영은 추리 소설계의 왕으로 불리던 작가 ‘도희재’의 딸로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지속적인 정서 학대를 받아온 인물이다. 그리고 사이코패스적 성향의 도희재를 두려워하던 문영의 아버지 ‘고대환’은 아내인 도희재를 자신이 만든 성에서 제거하고, 문영 역시 도희재와 같은 괴물이 되리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결국 어린 딸의 목을 조른다. 이처럼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정서적, 물리적인 폭력에 노출된 문영은 사람에 대한 온기가 아닌 먹이에 집착하는 어른으로 자란다. 타인으로부터 상처 받지 않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충동적이며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어른으로 자란 것이다.
그리고 강태는 어렸을 때부터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형 상태에게 집중된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며 자랐다. 하지만 상태를 보살피는 것만으로도 너무 버거워 강태에게 마음껏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던 어머니가 갑작스레 타인에 의해 살해된 후 강태는 자신의 곁에 있던 유일한 어른인 어머니와 사랑을 주고받으며 성장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결국 강태는 어머니 대신 자신이 평생 형의 곁에서 그를 지켜주고, 함께 있어 주는 어른이 될 것을 결심한다. 그리고 그 누구도 두 사람을 떼어놓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며 살아간다.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갈 것을 결심한 강태는 조금씩 자신의 진짜 얼굴을 잃어간다. 가짜 웃음을 짓고, 형을 안심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하며, 겉으로는 형에게 헌신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고 싶다고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된 죄책감과 자괴감으로 인해 스스로 자신을 위험한 상황 속에 밀어 넣는다. 어린 시절, 형을 위해 자신을 낳았다는 어머니의 말에 입은 상처를 온전히 치유하지 못하고 살아온 강태에게는 자신이 소중하지 않으며, 그저 타인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마음속 깊이 뿌리 박혀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상태는 어머니가 살해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후 오랜 시간 트라우마를 지닌 채 살아간다. 어머니를 살해한 범인이 입은 옷에 달려있던 나비 브로치로 인해 매년 봄이 올 때쯤이면 나비가 나오는 악몽을 꾸어 그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 집을 옮겨 다녀야 하고, 누군가에게 뒷머리를 잡히는 것을 몹시 두려워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가 겉으로 표현할 수 있는 아픔이었다. 정말로 그를 아프게 했던 또 다른 상처는 평생을 자신 곁에 있어 준 강태로부터 받은 것이었다. 어린 시절 강태가 어머니와 자신 앞에서 형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울며 소리치던 날, 물에 빠진 자신을 곧바로 구하지 않고 주저하며 돌아서던 강태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기억이 오랜 시간 상태를 괴롭혀왔다.
이렇듯 그들은 모두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의지하던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지니며 살아간다. 이것은 비단 그들에게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니다. 가장 가깝지만 때로는 가장 멀게 느껴지는 존재인 가족에 대한 상처가 우리의 마음속에도 조금씩은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미처 온전한 어른이 되지 못한 세 사람의 모습과 문영의 서늘하지만 따뜻한 동화를 보며 우리는 가슴 깊이 공감하고, 그들의 행복을 응원하게 된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자신의 곁에서 존재하는 또 다른 사람들이다
문영은 강태가 보호사로 일하는 정신의료기관인 ‘괜찮은 병원’에서 동화 수업을 진행하게 된다. 그곳에는 문영의 아버지인 고대환, 그리고 어린 시절 유일한 단짝이었으나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고 멀어진 친구 ‘남주리’가 있었다. 어린 시절 자신의 목을 조르던 아버지, 온몸으로 자신을 피하던 주리의 눈빛에서 슬픔과 두려움을 읽어낸 문영은 그들과 마주하는 것이 꺼려지지만 강태를 만나기 위해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기꺼이 감수한다. 그렇게 시작된 동화 수업을 통해 문영의 독특한 시각으로 동화를 접한 환자들은 그녀의 이야기에서 일종의 자유와 해방감을 느낀다.
극 중 우울증을 앓고 있는 환자 ‘아름’은 눈물이 많고 내성적인 성향의 인물로 그려졌으나 문영의 동화 수업을 들으며 점차 변화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미녀와 야수’가 스톡홀름 증후군을 다룬 이야기라고 말하는 문영에게 ‘미녀와 야수’는 사랑을 통해 서로를 변화시킨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말하며, 사랑은 숭고한 것이라는 자신의 신념을 강하게 어필하는 용기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는 오랜 시간 함께해왔으나 결혼 후 알콜중독으로 인해 폭력을 일삼던 전 남편으로부터 상처 받고 우울증을 앓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또 다른 알콜의존증 환자 ‘주정태’와의 만남을 계기로 자신을 옭아매던 사랑의 아픔을 딛고, 다시금 용감히 사랑에 뛰어드는 행동을 통해 사랑은 아름답고 숭고하며, 충분히 가치 있다는 그녀의 신념이 참되었음을 증명한다. 이런 아름의 사랑에 대한 신념 앞에서 문영은 평소처럼 냉소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악몽을 꾸는 자신을 끌어안으며 곁에 있겠다고 말하던 강태와 그로 인해 안정을 찾아간 자신을 떠올리며 ‘사랑’이라는 단어를 조용히 읊조린다.
강태 역시 국회의원의 아들이자 조증을 앓고 있는 환자 ‘권기도’가 문영의 도움으로 자유를 얻게 되고, 그동안 자신을 억누르던 존재인 아버지의 유세 현장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며 꾹꾹 눌러왔던 자유를 향한 자신의 내적 열망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또 다른 환자 ‘강은자’를 만나게 된다. 은자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딸을 잃은 후 딸의 마지막 선물인 여우 숄을 사시사철 목에 두르고 지내는 인물이다. 강태는 그동안 마음과 다르게 딸을 대하던 자신에 대한 후회와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다 정신병적 우울증을 앓게 된 은자와 상태를 통해 자신이 잊고 있던 어머니의 사랑을 기억해낸다. 그 후 은자의 숄이 문영에 의해 벗겨지고, 한결 가벼워진 모습의 은자와 목줄을 끊어낸 문영을 부러워하며 점차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져 가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그리고 상태는 극의 후반부, ‘베트남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시대를 지나오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갖게 된 환자 ‘간필옹’을 우연히 버스에서 만나고 그의 아픔과 마주하게 된다. 이를 통해 누군가의 아픔을 끌어안고 보듬어주는 것의 기쁨을 알게 된 상태는 극의 초반 강태에게 ‘가족은 가장 가까운 타인과도 같다’라고 말하던 모습에서 변화한다. 그리고 어느새 자신의 기준에서 타인이었던 문영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며, 누군가의 감정을 읽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고, 가장 사랑하는 가족인 강태를 온 마음을 다해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한다. 그래서 종국에는 강태와 문영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또 다른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 자신만의 길을 걷게 된 상태를 바라보며 우리는 진심 어린 기쁨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는 주변 인물들의 사연이 주인공들의 상황과 맞물려 서로에게 내적 변화를 이룰 수 있도록 돕는 계기가 된다. 이것은 이 작품 전반에 걸쳐 전해지는 ‘사람은 누구나 연약한 존재이며,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과 서로 기대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메시지와 같은 맥락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좋은 어른들
강태와 문영은 외롭게 자라왔다. 하지만 그들이 온전히 홀로 살아온 것은 아니다. 문영에게는 그의 외로움을 알아보고, 그녀에게 동화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임을 알고 있으며, 서늘하지만 따뜻한 그녀의 동화를 통해 이상을 꿈꾸는 출판사 대표 ‘상인’이 있었다. 그리고 상인을 따라 성진시로 오게 된 아트디렉터 ‘승재’는 때때로 주리가 잠 못 이루는 밤 그녀의 고민을 들어주고, 상인과 강태 대신 문영의 옆을 지켜주며, 어떠한 편견 없이 상태를 그림 작가로 대하는 어른다운 어른이다. (참고로 승재는 천연덕스럽게 문영과 주리를 언니라고 부르지만 두 사람보다 나이가 많은 것으로 추측된다.)
강태에게는 자신에게 무해한 존재로서 언제나 자신 곁을 지키는 형이자 친구인 ‘재수’가 존재했다. 재수는 강태의 거짓된 말과 얼굴을 모두 알고 있지만 기꺼이 속아주며 강태 옆에 있었다. 때때로 그는 강태를 ‘조커’, ‘처키’라고 부르거나 문영에 대한 위험성을 인지시켜주며 강태의 생각을 환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자신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을 읽어내지만 자신이 먼저 말하기 전에는 캐묻지 않고 그저 옆을 묵묵히 지켜주는 사람. 형은 필요 없다는 말에 형 대신 친구가 되어주기로 결심한 사람. 이렇듯 재수는 강태 곁에 든든한 존재로 머무른다.
그리고 각자의 삶에서 가장 어두운 기억을 남긴 성진시에서 문영과 강태, 상태는 주리의 어머니이자 그들 모두의 어머니가 되어준 ‘순덕’과 괴짜이지만 진짜인 의사 ‘오지왕’을 만난다. 그들은 순덕이 차려주는 밥상 앞에서 갓 지은 따뜻한 밥을 먹으며 눈물짓고, ‘괜찮은 병원’의 원장인 오지왕의 처방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조금씩 치유해간다.
‘괜찮은 병원’의 환자이자 아동학대 피해자인 ‘유선해’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지속적인 폭력과 아버지의 방관으로 인해 해리성 인격 장애를 갖게 되었다. 여덟 살에 머물러 있는 그녀가 바라는 것은 아버지가 두 번 다시 자신의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막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동안 자신을 지켜주는 일이다. 그녀의 뜻에 따라 강태는 선해가 아버지에게 자신의 마음에 맺힌 말들을 할 동안 그녀를 지켰다. 그리고 다시 선해와 둘만 남게 된 강태는 그녀의 마음속 아이를 따뜻하게 안아준다. 그의 토닥임 속에서 온기를 느낀 아이는 비로소 온전한 울음을 터트린다. 이처럼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그보다 조금 더 일찍 어른이 된 사람들의 따뜻한 응원과 관심이라는 것을 이 작품에서는 꾸준히 말하고 있다.
* 드라마에 대한 넘치는 애정으로 인해 분량 조절에 실패했어요. 남은 이야기는 두 번째 리뷰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