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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Feb 14. 2024

너는 숙제를 하여라 나는 독서를 할 테니

꾸준히 시리즈-1

"방학은 쉬라고 있는 거 아냐?
수학선생님 너무해!
숙제가 너무 많잖아.

베트남의 Tet(뗏. 베트남의 설 연휴) 연휴가 시작되었다. 정부가 지정한 뗏 연휴는 일주일이지만, 아이 학교의 방학은 열흘이나 된다. 회사도 열흘 동안 쉰다. 난 길고 긴 베트남의 연휴가 참 좋다. 일 년에 몇 번 안 되는 연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일을 하다 보니 더 연휴가 기다려지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가는 이 시기에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쉬기로 했다. “연휴에 어디 갈까? 예약해야지…”라는 말은 하면서도 누구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남편에게도 나에게도 마음 푹 놓고,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시간이 간절했다.

아이도 이번 연휴를 꽤나 기대했다. 아침 7시에 학교에 가서 5시에 하교하는 일상(방과 후 활동 포함 안 된 학교 수업 일정. 등하교 셔틀 시간 40분씩)에 쉼이 간절히 필요했던 것 같다. 그런데 학원 선생님이 폭탄 같은 숙제를 내주셨으니 투덜거릴 만도 하다.


엄마, 이 책 읽어봐. 정말 재미있어.

억울해도 어쩌랴. 매일 시간을 정해놓고 숙제를 하겠다고 했다. 아이가 공부하는 동안 나는 아이가 추천한 책을 읽기로 했다. 일방적으로 시키기만 하는 엄마는 되고 싶지 않은 내 이미지 관리이기도 하다.

아이가 쫓아다니며, 잔소리하듯 나에게 계속 추천한 책 <열세 살의 걷기 클럽>. 네 명의 걷기 클럽 아이들의 이야기에 나의 아팠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 콕콕 찌르기도 했고, 가끔 아이가 털어놓는 학교 생활의 어려움도 비슷할까 싶어 마음이 시리기도 했다. '녀석... 너도 이 책을 읽으면서 위로를 받았구나.' 아이는 경험으로 독서의 이유를 알아가고 있다.


내가 유튜브 안 보면 좋겠지?
일주일 동안 유튜브 안 보기 도전해 볼 거야.


스스로도 많이 본다고 생각했는지 아이가 먼저 꺼낸 말이다.

나 : 이제 곧 연휴인데 괜찮겠어?

아이 : 아… 어쩌지? 그래도 해볼래.


조건은 있었다. “성공하면 용돈 주세요.” 그래도 먼저 유튜브를 끊아보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실패는 했지만, 아이는 유튜브 대신에 할 일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 노력만으로도 대견하다고 생각한다.

“엄마, 쿠키 만들자.”, “엄마, 보드게임하자.” 평소 같으면 폰을 들고 있을 시간에 계속 불러댔지만, 싫지 않았다. 아이는 이 방 저 방에서 책을 읽고 뒹굴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지겨워질 때면 다 같이 동네 한 바퀴를 돌다가 문 연 식당(연휴에는 거의 문을 닫는다)이 보이면 들어가서 한 끼를 해결했다.


아이는 책을 좋아한다. 이 녀석은 어떻게 책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아마 다른 독서 지도 선생님들이 하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집에 학습만화는 거의 없고, 아이의 취향과 관심사를 고민해서 책을 고르고, 아이에게 새로운 관심사가 생기면 그와 관련된 책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눈에 자주 띄는 곳에 책이 있다. 아이방 들어가는 입구에 책장이 있어서 들락날락할 때마다 책이 보인다. 아이에게 일부러 책 읽는 모습도 자주 보여준다.


아이의 방학숙제 덕분에 나도 열흘의 연휴 동안 2권의 책을 완독 했고, 2권의 책을 더 읽는 중이다. 아이에게 성실을 강조하다 보니 나도 덩달아 성실해진다. 숙제를 한다는 것은 성실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연휴가 끝나간다. 어서 남편은 회사에 가고, 아이는 학교에 갔으면 좋겠다.

많이 쉬었다, 우리. 잘 쉬었다.


<소공녀>(비룡소)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 스무 번 이상 읽은 엄마의 인생책이야. 한 권의 책을 이렇게나 많이 읽어서 엄마가 국어를 잘하게 된 게 아닐까? 엄마의 인생책을 너는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

<잠옷파티>(재클린 윌슨 글. 시공주니어)  
"너처럼 전학 온 아이가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야. 그런데 표지에 나온 이 아이는 정말 눈이 못 되게 생기지 않았니?"

<외규장각 도서의 귀환>(조은재 글. 스코프) "
전쟁 때 프랑스가 우리의 유물을 많이 가져갔어. 그런데 그 옛날에 프랑스로 유학 간 박병선 박사라는 분이 그걸 찾아냈대. 최초의 한국인 여성 프랑스 유학생이기도 하고. 정말 멋진 분이지? 프랑스학교에 다니는 너도 읽어보면 좋지 않을까?"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고정욱 글, 대교북스 주니어)  
"엄마, 손가락이 4개인 피아니스트가 있대. 유튜브에서 봤어." 그래서 찾고 찾은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희아의 이야기책이다.

<내 이름은 로빈>(로빈 하 글. 길벗스쿨/그래픽노블)  
"열네 살에 미국으로 떠난 소녀의 성장일기래. 엄마도 읽어보지는 않았는데, 외국에서 학교 다니는 너도 공감되는 부분이 있을 것 같더라고." 아이는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3학년 때 선생님으로부터 받았던 부당한 일들을 털어놓았고, 나만 그런 일을 겪는 게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내 아이가, 나와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이 인생책을 만날 수 있게 도와주는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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