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차] 내일은 없다

줄넘기 1일 차

by 정은

"그걸 왜 정리해?"
"나중에 쓸 수도 있는데."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이사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살림을 좀 더 줄여야겠다고 했더니, 다들 말렸다. 베트남에서는 원하는 물건을 구하기 어렵다는 걸, 모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가전제품을 추천하는 분도 있었다.

"건조기 좋은 거 저도 알아요. 근데 베트남에 사는 동안 짐을 더 늘리고 싶지는 않아요."

"그건 또 그렇지."


오늘 만난 분들은 모두 인생 선배들이었다. 듣다보면 삶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 많다. 아이 문제로 고민을 털어놓을 때도, 이미 자녀를 키워낸 분들의 담담한 조언이 위로가 되었다. "그래, 그럴 수 있어.", "사춘기라 한참 그럴 때지." 그 말들이 오늘따라 유독 따뜻하게 다가왔다. 이 힘든 시간도 결국은 지나간다는 진리를 확인받은 듯 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비움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도, 운동을 시작한 것도 사실은 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고 싶어서였다. 물건을 버리며 불안과 미련을 비워내고, 몸을 움직이는 운동을 하며 마음의 근력을 키우고 싶었다.

아이에게도 그런 '마음의 근력'을 키워주고 싶었다. 아무리 따뜻한 말을 많이 해줘도 잔소리로 들을 수 있을테니, 스스로의 힘을 길러주는 게 더 좋지 않을까.

그래서 아이에게 매일 줄넘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집에 들어오면 나가기 싫어하는 아이라 설득하는 게 쉽진 않았지만, 체육 시험을 못 본 게 속상했으니, 함께 기초 체력을 키워보자며 함께 집 앞 공원으로 나갔다.

처음엔 투덜거리던 아이는 나보다 더 열심이었다. 한 번에 줄넘기 100개 뛰는 게 목표였지만, 쉽지 않았다. 그래도 목표보다 20개 많은 120개나 성공했다. 나갈 때의 마음은 하루에 천 개씩 해보자였지만, 그건 역시나 무리였다.


할 수 있을만큼만 최선을 다하면 된다. 내 꾸준함의 비결은 조금씩 천천히 하는 거다.


딱 100개만 뛰고 집에 가겠다던 아이는 어느덧 재미를 붙이고 게임도 하자고 했다. 진 사람은 줄넘기 50번이 벌칙이었는데, 티 안 나게 일부러 지고서 벌칙으로 줄넘기 50번을 더 뛰었다. 모든 걸 아이보다 잘하는 엄마보다는, 허술하지만 친근한 엄마가 되고 싶은 나의 전략이기도 했다.


나는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의 체육 수업에도 큰 관심이 없었다. 수영복 챙겨주고, 갈아입을 옷 챙겨주는 정도가 전부였다. 같이 운동하면서 체력을 키워줘야겠다는 생각은 못 했다. 그게 아이의 자존감과 연결될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요즘 아이들은 알아서 크지 않는가 보다.

뒤늦은 후회지만, 곧 방학이 시작되면 수영도 같이 하기로 했다. 정말 싫어하는 수영이지만, 이제라도 아이와 함께 근력을 키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의 나는 예전의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가장 나답지 않은 모습 같지만, 지금이 더 만족스럽다.


내가 정한 기준 하나.

내일은 없다.

마음먹었다면, 시작은 오늘 하는 것이다.


”내일부터 할게.“라는 아이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오늘 함께 줄넘기를 한 나 자신이 참 뿌듯하다.


오늘의 이 작은 선택이, 더 단단한 우리를 만들어줄테니 말이다.


아이의 뒤에서 함께 걸어가기. 힘들어하면 등도 조용히 밀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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