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랜만에 일해서
일을 하면서 알게 된 두 사람과 점심을 먹었다. 둘 다 나이는 한참 어리지만, 내가 그녀들을 좋아한다. 부끄러워서, 그래도 되나 싶어서 밥 한 번 먹자고 얘기하는 게 어려웠는데, 한 번 시작되니 벌써 두 번이나 같이 밥을 먹었다. 그녀들과 밥을 먹기 위해 요즘 핫하다는 곳을 찾고 있다. 좋아해 주고, 맛있게 먹어주니 덩달아 신이 난다.
베트남에서 오래 살았다며 주름깨나 잡던 내 주름을 확 펴놓은 베트남 생활 20년 차의 진정한 시조새 30대 과장님. 중학교 때부터 살았다고 하니 대단할 뿐이다. 베트남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그 사이 부모님은 한국으로 돌아가셨지만, 인생의 절반을 살아온 이곳이
익숙해서 떠나지 못한다고 했다. 베트남어를 잘하는데, 그녀는 늘 겸손하고 깍듯하다. 웬만하면 회사에서는 일 외에는 입을 꼭 다물고 있지만, 가끔 한국말을 할 데가 없어서 답답할 때면 찾아가서 푸념할 수 있는 비빌 언덕이기도 하다.
오늘은 막내 인턴의 출근 마지막 날 모인 조촐한 송별회였다. 같은 팀이면서도 일하는 장소가 달라 오가며 인사만 하고 지내다가 가까워진 지 얼마 안 됐는데, 이제 막 그 친구의 반짝이는 진가를 알게 되었는데 마지막 출근 날이라니. 학업 마무리를 위해 그만둔다는 그녀에게 한 달만 더 일해달라고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너무 고맙게도 그녀는 마지막 퇴근을 하고 문자를 보내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작업하면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많은 걸 깨달았던 거 같아요. 멋진 사수, 그 이상으로 제게 더 많은 영향을 주셨어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부족한 제게 기회 주시고, 하나하나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비록 저는 그만두지만, 늘 응원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회사 밖에서 또 뵙고 싶어요
종종 안부 여쭙겠습니다! 항상 건강 조심하세요!
그녀의 마음씀씀이가 고마웠다. 팀원들과의 단톡방에도 그녀는 베트남어로 장문의 인사를 남기고 갔다. 나에게 필요한 베트남어 필수 자료도 일부러 찾아서 선물처럼 만들어주고 갔다. 감동받을 수밖에 없다. 좋아할 수밖에 없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으니, 나이, 체면 무시하고 종종 치근덕거릴 테니 한국으로 떠나기 전 두 달 동안 같이 밥도 먹고, 차도 마시자고 했다.
수많은 이별을 경험하는 해외살이지만, 이번 이별은 또 처음처럼 아프다. 그래도 일로 만난 새로운 인연에 감사하기로 했다. 내가 잘 해내고 있는 건지, 내색하지 못하고 자신감이 떨어져 고민할 때도 그녀는 묵묵히 나를 서포트해 주었다. 오랜만에 다시 ‘작가’라는 호칭으로 불리게 되었을 때, 나를 가장 많이 ‘작가님’이라고 불러주며 내 자존감을 세워준 친구이기도 하다. 그녀는 늘 사람을 경계하고 쉽게 다가가지 못하던 나를 무장해제시켰다. 좋은 사수가 되고 싶어서, 열심히 노력했다. 착한 말하기, 짜증 안 내기, 불평 안 하기… 덕분에 지킬 수 있는 선들이었다.
당장 내일부터 분리불안증이 올 것 같다. 하지만 인턴을 끝낸 그녀는 자유를 외치고 있겠지.
답장을 보냈다.
치킨이 먹고 싶거나, 피자, 족발이 먹고 싶은데 혼자 먹을 수 없어서 고민되면 연락해요.
알고 보니 나이가 많으나 적으나 똑같은 집순이 1호, 2호, 3호 직장 동료들. 조만간 집순이 2호, 3호를 불러 모아야겠다. 아쉬워하고 섭섭할 틈도 없는 날들이니 망설이지 말자.
오랜 경력 단절을 끝낸 출근 4개월 차. 가끔은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회사를 다니지 않았다면 몰랐을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나에게 월급도 주고, 자기 계발도 시켜주는 회사다. 내가 이 맛에 그만두지 못한다. 무엇보다 엄마로 아내로 묻혀 있던 나를 작은 보석처럼 캐내어준 고마운 회사다.
나는 회사 생활이 나쁘지 않다.
집안일은 쌓여갈 지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