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말은 많다.
왜 자꾸 짜증내니?
왜 그렇게 요구사항이 많니?
내가 너한테 뭘 잘못했어?
나한테 맡겨놨니?
내가 니 기분 일일이 맞춰줘야 하니?
변덕 좀 그만 부려!
내가 네 말만 들어줘야 하니?
내가 메이드냐고!
하지만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열 살에게 이렇게 화 내봐야 좋을 게 없으니까.
그래도 여전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오늘 아이가 나에게 던진 컴플레인은 이렇다.
1. 왜 나보다 다른 친구들한테 더 잘해 줘?
2. 나한테 왜 자꾸 숙제하라 그래?
오해의 소지가 많은 첫 번째는 서로 잘 얘기해서 서운함을 풀었다.
그건 질투라는 감정이야.
많이 놀라고 서운했겠다.
질투라는 감정도 느끼는 걸 보니 많이 컸네. 앞으론 나도 네 마음을 배려해서 조심할게.
문제는 두 번째 컴플레인이다.
코로나 확산으로 수업이 온라인으로 바뀌면서 숙제가 많아졌다. 요즘은 매일 담임 선생님이 아이의 작문에 대한 첨삭 영상을 찍어서 보내주신다. 그러면 아이는 선생님의 조언대로 다시 글을 수정해서 보내야 한다. 그렇다 보니 숙제를 안 할 수가 없다.
온라인 수업이 끝나고 바로 숙제를 하지 않으면 마냥 노는 아이에게 중간중간 “숙제했니?”를 물어보는데, 결국 오늘은 숙제하라는 말이 듣기에 매우 못마땅했단다.
그 말에 계속 참았던 나도 터져버렸다.
“너 나한테 왜 그러니...!”
긴장감이 감도는 2021 모녀 사태.
숙제는 거들었을 뿐 락다운 상황에서 서로 집에서만 생활하면서 부딪힐 게 부딪혔던 것 같다.
육아에는 종료 휘슬이 없잖아요.
박지성 선수의 말에 백 번 천 번 공감한다. 아이가 한 살 한 살 커가도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사춘기가 오기 전에.
친구가 더 좋다고 할 때가 오기 전에.
우리 엄마, 아빠가 최고라는 콩깍지가 벗겨지기 전에 더 많이 사랑해주겠다고 늘 다짐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나도 별 수 없이 서운하다.
오늘의 사태로 숙제는 저녁 8시 반에 겨우 시작해서 다른 어린이들이 모두 자고 있을 10시 반이 다 돼서야 끝났다.
아이 : 숙제 다 했어.
나 : 지금까지 숙제하니까 어땠어?
아이 :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했어.
나 : 그럼 내일부터는 숙제하라는 말 안 할 테니
스스로 할래?
아이 : 그건 아냐. 숙제하라고 해줘.
어느 말을 믿어야 할까.
이런 얘기를 하소연했을 때 누군가 그랬다.
그건 누구 잘못도 아니에요.
다 코로나 잘못이에요.
코로나 때문이든 아니든, 코로나는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스스로 하는 어린이.
화 안 내는 엄마.
서로가 갈 길이 한참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