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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Feb 23. 2020

한국 출장 중입니다

없다가도 생기고 있다가도 없어지는 자신감 앞에서...

한국이다. 한국에 왔다. 이제는 출장으로도 한국에 온다. 물론 이번 여정을 거창하게 출장이라고 이름 붙인 건 순전히 1인 작업실의 주인인 내 마음이다.


예전에 일할 때도 나는 출장을 좋아했다. 매여있는 몸도 아니었고, 그때의 나는 일을 아주 좋아했던 데다가, 출장을 가면 출장비가 나왔으니까. ‘출장’이라는 단어가 주는 있어빌리티도 좋았다. 해외출장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여행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어쨌든 비행기 타고 나 스스로는 갈 수 없는 나라들을 가볼 수도 있었던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이번 한국 여정은 명목상으로는 출장이지만, 출장이 아니기도 하다. 아이와 함께 왔으니까. 아이의 학교 휴교령이 길어져 이참에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에 즉흥적으로 티켓을 끊고 하루 만에 비행기를 탔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왔지만, 미처 날씨를 생각 못했다. 봄 날씨를 기대하고 짐을 쌌는데 추워도 너무 춥다. 더운 나라에서 10년을 살다 보니 확실히 한국의 4계절에 대한 감각이 둔해졌다.

짧은 일정이라 지인들에게 연락하고 만나자고 할 시간도 없지만, 그래도 서운한 몇몇에게 귀국 소식을 전했다. “하루 전에 티켓 끊어오는 거 있어 보인다.”라는 선배 언니의 말에 정말 그런가 생각해봤다. 새벽 2시에 출발하는 저가항공. 혼자도 아닌 아직은 필수옵션처럼 붙어 다니는 9살 딸아이와 함께하는 여정은 조금도 있어 보이는 일이 아니다. 나에게 그렇게 얘기한 선배 언니는 내가 도착한 다음 날 호주로 한 달 동안 간다고 했다. 도대체 누가 더 있어 보이는 건지.


이번에 한국에 들어온 이유는 두 가지다. 가장 우선은 아이 학교를 알아보기 위해서였고, 두 번째는 들어오는 김에 이번에 제출한 기획서를 관심 있게 봐주신 대표님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였고...


한국에 급히 들어온 이유의 90%, 아니 100%는 아이의 학교 문제지만, 지금 쓰고 있는 글은 일에 대한 것이므로 일에 대한 이야기만 써보려도 한다.


대표님을 만나고 싶었다. 궁금한 게 많았다. 진행은 어떻게 되어가는지, 계약은 언제쯤 가능한지, 혹시 밀린 것은 아닌지 등등.


한국에 잠깐 들어왔다는 말에 대표님은 흔쾌히 먼저 약속을 잡아주셨다. 약속을 잡고 나서야 많은 생각이 들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그동안 한국에서의 경력이 단절된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나의 능력이 과연 대표님의 기대치에 맞을까, 내가 과연 쓸 수 있을까, 나의 글을 좋아해 줄까, 아주 오랜만에 일로써 사람을 만나는데 미팅을 잘할 수 있을까 등등은 물론, 옷은 뭘 입고 가야 하나 싶은 눈앞에 닥친 모든 일들이 걱정됐다.


예전에 서울에 살면서 내가 이 동네에 와본 적이 있나 싶을 만큼 낯선 곳에 회사가 있었다. 4개뿐인 계절도 감잡지 못하는 형편에 이동하는 시간 계산은 더 혼란스러웠다. ‘만에 하나’ 생길지 모를 돌발 상황이 걱정돼 정확한 이동시간을 알려주는 어플도 못 미더워 일찌감치 출발했다. 물론 아무 돌발 상황은 없었고, 누나의 초행길을 데려다주겠다던 동생 앞에서 민망해졌을 뿐이었다. 길이라도 조금 막혀주던가 해서 “거봐 일찍 출발하길 잘했어”라는 말로 동생에게 내가 옳았음을 어필하고 싶었지만, 간절히 바라던 일은 생기지 않았고, 1시간이나 일찍 도착해버렸다.(역시 걱정은 미리 할 필요가 없다는 걸 다시 한번 뼈 때리게 배웠다)

대표님과의 만남은 좋았다. 추위가 매섭던 날이어서 추위와의 사투를 벌인 탓에 대표님을 만나기 전까지 다른 걱정을 할 새도 없었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멋진 일은 생기지 않았지만, 새로운 기획안도 긍정적으로 생각해주시고, 대표님도 여러 가지 제안을 해주셔서 감사한 시간이었다.


역시나 대표님이 물어보셨다. “그럼 10년 동안 베트남에서만 계시고 한국 쪽 작업은 안 하신 건가요? 왜죠?”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처음에는 일만 하다가 외국에 와서 쉬게 되니 너무 좋았다고. 그러다 아이가 생겼고, 정신 차려보니 지금이라고... 그래도 일을 완전히 놓고 살지는 않았고, 베트남에서 틈틈이 일해왔음을 말씀드렸다. 나의 기획안을 좋게 봐주셔서 편하게 얘기할 수 있었다. 조금은 후회가 됐다. 아니, 아주 많이 후회가 됐다. 10년 전 일의 끈을 놓지 말 걸...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엇하랴. 그때는 해외살이에 심취해 사는 게 좋았던 것을.


이제 남은 일은 대표님과 나눈 이야기들의 결과물을 만들어서 보내야 한다. 미팅을 끝내고 서점에 가서 책 탐방을 실컷 했다. 아이를 데리고 도서관에 가서도 참고할만한 책들을 빌렸다. 7권이나 대출 가능하다니 사이좋게 아이가 4권, 내가 3권을 빌렸다. 전자책보다는 역시 종이책이 좋다. 한국은 참 좋다.

할 일이 없으니 둘이 뒹굴뒹굴 이불에 과자 부스러기 흘려가며 책을 읽었다. 눈을 뜨고, 잠들기까지  TV가 켜져 있는 부모님 집에서 작업할 공간은 마땅치 않았다. (TV를 인생 최고의 동반자로 여기시는 부모님. 그래서 딸이 방송작가가 되었는가 봅니다.) 아이디어는 떠오르는 대로 짧게 정리하고, 스마트폰에 저장했다. 가까이에 커피숍이 있지만, 코로나로 인한 부모님의 걱정도 크고, 이불 밖은 너무 추워 모든 작업은 집에서 해결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도 아이처럼 내 집이, 내 작업실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학교 휴교령이 길어지고 있어 한국 일정을 늘리려고 했지만, 다음 주 중에 돌아가려고 한다.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손에 꼽힐 만큼 외출을 했고, 언제 어디서나 마스크를 착용했다. 입국 2주가 된 지금까지 나에게는 아무런 코로나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다.(내가 호찌민에서 출발할 때부터 지금까지 베트남에서 공식 코로나 확진자는 추가되지 않았다) 베트남에서 왔다고 2주간 조심했는데, 갑자기 한국의 코로나 상황이 급반전됐다. 오히려 베트남에 있는 친구들이 하늘길 막히기 전에 빨리 돌아오라고 성화다. 한국에서 자기 격리 기간이 끝나니, 베트남에 돌아가서도 자가 격리해야 한다. 참고로, 호치민에서는 마지막 격리 환자가 어제 퇴원을 했다고 한다.


이제, 돌아갈 준비를 해야겠다. 돌아가는 마음에는 조금은 더 나은 내가 되어 있길, 한국에서의 일정이 그런 마법이 되어주길 기대하면서.


대표님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말을 했다.

“이것저것 해봤는데요. 그래도 이 일이 제일 재미있고 잘하는 일이었어요.” 이거면 되지 않을까? 재미있게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은 듯하니 말이다. 여전히 정답은 모르겠지만.


카누 커피를 사러 가야겠다.

.

.

.

그런데... 비행기 예약은 가능하겠지...

코로나 사태로 아무것도 예측이 불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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