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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선영 May 02. 2024

불법주차공간을 공원으로,
‘파클렛 강남'

통과교통과 불법주차로 가득한 선릉로107길

강남구 선릉로107길은 선정릉역 인근 이면도로로, 봉은사로와 선릉로 교차로에서 차량들이 우회하여 통과하거나, 블록 내부의 차량들이 대로에 접근하기 위해 지나치게 되는 ‘통과도로’ 성격을 갖는다. “통과”를 주목적으로 하다 보니 차량들의 속도는 꽤 빠른 편이다. 폭은 6~7m로 좁은 편이지만 양방통행이 가능하며, 도로변으로는 불법주차가 상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선릉로107길은 현재 자동차의 빠르고 신속한 통행이 이루어지고, 원하는 곳에 언제든 주차를 하는 ‘자동차 중심 도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도로 일대는 주거와 상업, 업무 등이 복합된 지역으로 일상적 생활가로 기능을 갖기도 한다. 주택과 편의점 앞에는 엄마, 아빠와 아이가 나와 어린이집 버스를 기다리기도 하고, 지역 어르신들이 걷고, 걷다가 힘들면 건물 앞 조경시설에 걸터앉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 앞으로 통과 차량은 빠르게 지나가고, 불법주차차량과 통행 차량 사이에 보행자가 끼게 되는 상황도 왕왕 발생한다.     


선릉로107길의 교행하는 자동차와 불법주차된 차량


선릉로107길의 보행문제는 도로환경의 차원뿐 아니라, 지역 일대의 교통체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강남 일대는 보차분리도로로 둘러싸인 약 800m x 500m 규모의 슈퍼블록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슈퍼블록의 내부는 10m 미만의 보차혼용도로로만 이루어져 있어 도로의 위계가 빈약하고 내부 교통체증이 유발될 수밖에 없는 태생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지역단위의 교통체계, 도로위계 등은 기존 도시공간에서 조정하기 매우 어려우며, 조정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선릉로107길에 보행친화환경을 임시 조성하여, 이 길을 이용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보행친화환경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           


지역의 보행환경 수요를 반영하여,
도로변 임시 보행로를 만들다

   

선릉로107길을 보행친화 환경으로 조성하기 위하여 우리는 상습적으로 불법주차가 이루어지는 공간을 점유하여 팝업 파클렛을 만들고, 그와 함께 도로변 보행로를 페인팅해 보기로 했다. 도로변 보행로는 인접한 복지관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었다. 선릉로107길에는 ‘청각장애인 복지관’이 위치해 있어 청각장애인 보행자들의 통행이 빈번한데, 보행 시 뒤에서 오는 차량의 소리를 감지하기 어려워 보행이 불편하고 위험한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복지관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로변 보행로 확보를 원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수요를 이번 팝업 파클렛에 반영하여, 선릉로107길 약 100m 구간에 팝업 보행로를 조성하게 되었다.      

보행로는 복지관과 구청의 의견을 토대로 디자인되었는데, 공식적으로 도로가 변경되는 것은 아니고 실험적인 보행로이기 때문에, 보행로로 보이면서도, 보행로로 보이지 않는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디자인이 필요했고, 여러 대안 가운데 버블 컨셉의 디자인이 채택되었다.


보행로 디자인의 페인팅 시공은 팝업 파클렛 개최 2일 전 진행하였다. 비소식이 있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작업을 했는데 다행히 작업이 거의 완료될 때쯤 비가 오기 시작해서,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불법주차공간에 파클렛을 만드니,
사람들이 머무르고, 자동차가 느려졌다     


우리는 선릉로107길에 상습적으로 불법주차가 이루어지는 스팟을 5군데 선정하여, 벤치와 화분, 평상으로 파클렛을 조성하였다. 팝업은 총 5일간 운영되었다. 첫날에는 불법주차공간을 개인사유지처럼 활용하던 주민들의 민원(?)이 있었지만, 사업의 취지를 설명드렸고, 그동안 주차해 오신 행위가 ‘불법주차’임을 안내해 드리는 신기한 상황도 있었다.      

임시 조성된 파클렛에는 주변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모여 쉬거나, 오후 시간대에 부모와 아이와 함께 이용하기도 하였다. 파클렛 조성 전 관찰했을 때에는 선릉로107길에서 여럿이 머무르거나 활동하는 모습이 전무했었는데, 그럴만한 공간이 생기니 사람들이 머무르기 시작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파클렛과 보행로의 영향인지, 차량의 속도도 조성 전에 비해 느려지고, 보행로를 침범하지 않고 통행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특히 파클렛에 사람들이 앉아있을 경우 그 근처에서 차량의 속도는 현저히 느려졌었다.




팝업 파클렛의 이용자 90%가 만족했고,
영구적 조성 수요가 70%로 나타났다


5일간 팝업 파클렛 이용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고, 응답자 75명 중 69명(89.3%)이 만족한다는 응답을 주었다. 불법주차 공간을 활용하여 불법주차도 방지하고, 사람들이 앉아서 쉴 공간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만족도가 높게 나타났다. 팝업 보행친화도로의 운영기간에 대해서는 영구적으로 변화되었으면 하는 의견이 81.4%로 높게 나타나, 보행친화환경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수요를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팝업 파클렛은 철거되었지만, 노면페인팅으로 시공한 임시 보행로는 아직 남아있다. 작년 보행로 시공을 할 즈음, 구청에서는 효과가 좋다고 판단되면 정식 보행로 조성을 검토해 보겠다는 의지를 비추셨던 기억이 난다. 파클렛 강남을 시작으로, 선릉로107길에 보행환경 개선이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 이 사업은 (재)티머니복지재단의 보행 친화 환경 조성 사업 일환으로 추진되었고, 서초구청의 협조를 통해 주차장 공간을 확보하고 팝업 운영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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