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병영 이라는 지명은 약 3년전에 처음 들었다. 성수에서 양조장을 하면서 알게된 분들의 베이스가 되는 지역이었다. “강진은 바지모양 이에요, 병영은 원래 잘 살던 동네래요” 라는 얘기가 처음 들은 얘기였다. 지도에서 강진군 행정구역을 찾아보면 정말 바지 모양이다. (양천구가 강아지인 것처럼!)
그렇게 ‘바지모양’만 기억하던 강진군을 지난 4월에 처음 갔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꼬박 4시간반 걸려 강진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강진군 읍내는 여느 소도시와 다를것 없이 한산했다. 터미널로 픽업 나온 친구의 차를 타고 전라도의 자연과 농촌경관을 즐기며, 병영면에 도착했다.
병영면은 조선시대의 군사도시이다. 전라병영(군사 주둔지)이 설치되면서 본격적으로 발달하게 되었다. 원래 광주에 있었다가, 왜구 침탈이 증가함에 따라 남쪽 바다 근처인 병영으로 옮기게 된 것이다(병영이라는 지명도 병명성이 만들어지면서 유래). 평탄한 지형으로 바다와 가까우면서도 산으로 둘러싸여 적합한 입지였다. 이때부터 병영은 상업중심지로 변모하게 된다. 조용한 시골마을에 광역적인 인프라가 개발된다는 것은 자금과 사람의 유입을 의미했다. 병영성을 조성하고 운영하기 위하여 각종 물자의 조달이 필요했었고, 병영 지역 사람들이 그것을 담당하면서 그들은 ‘상인’이 되었다. 또한 병영유지에 필요한 자금 충당을 위해 군사들의 상업활동을 일부 허용하였는데, 병영성 일대에는 이러한 거래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1894년 동학농민군에 의해 병영성이 함락되어 1895년 폐성되면서, 병영의 전성기가 저물기 시작하였다. 이후 병영성이 방치되어오면서, 내부에는 병영국민학교가 세워졌고, 성곽 주변에도 면사무소 등 건물들이 세워지기도 했다.
1997년 국가사적지로 지정되면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1998년부터 복원공사가 시작되면서, 내외부 건물들은 철거/이전되었다. 복원공사는 당초 2013년 쯤 완료 예정이었으나, 재원조달 등 이슈로 현재까지 복원이 진행 중이라 한다.
지난 4월의 어느날, 실물로 마주한 병영성은 비일상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평범한 2차선 도로인 ‘병영성로’의 한쪽면에 성곽이 자리잡고 있었다. 성곽은 도로와 간격을 두고 있었고, 그 간격에는 ‘해자’의 흔적이 보였다. 나는 관리인도 없고, 입장료도 없이 개방되어 있는 병영성 성문으로 들어갔다. 성 안은 휑 했다. 문화재복원 중으로 보이는 스팟도 있었다. 성곽에 올라가 한바퀴를 걸으면서 주변의 산세와 너른 논밭의 경관, 이와 어우러지는 병영성 윤곽을 감상했다. 500년전 이 빈공간은 시설과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을 텐데, 이렇게 비어있는 현재를 보니 여러가지 생각들이 들었다.
병영면은 병영성을 중심자원으로 가지면서, 병영불고기, 강진맥주브루어리 등 파생 콘텐츠를 개발/운영하고 있다. 또한 하멜표류기의 저자 ‘하멜’이 유배되어 7년간 살았고 그가 전수한 ‘하멜식 돌담’이 골목골목 남아있어, 하멜 콘텐츠 또한 병영은 적극적으로 관광자원으로 내세우고 있다.
강진군은 조선시대 군사도시 병영에서 새로운 실험을 계속 진행 중이다. 그것의 성공을 논하기 보다는 새로운 시도를 지속한다는 지점에 응원을 하고 싶다. 강진군에서는 청년인구 유입을 위하여 전국 최초의 파격적인 정책을 개발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직접적으로 나의 지인들이 그러한 정책을 통해 강진으로 이주를 하였고 또 누군가 이주를 검토하고 있다.
하멜식돌담길 덕분인지 통일된 골목 경관을 유지하고 있으며, 브루어리를 통해 병영에 이주한 청년들이 여기저기 보이는 마을. 매주 금요일, 토요일 저녁에는 시장에서 불고기파티가 열려 조용한 마을에 소소한 변주를 준다.
문득 나는 동두천시, 의정부시 등 미군부대가 주둔한 근대의 군사도시들이 떠올랐다. 병영과 비슷하게 시작되어 번성했다가, 미군부대가 이전하면서 영향을 받고 있는 도시들.
그 도시들보다 앞선 세대에 특수 시설에 의존한 산업시대를 경험하고, 그 이후를 거치고 있는 병영. 물론, 병영면은 미군부대 주둔 도시에 비해 가진 자원이 많다. 병영성 이라는 자원이 우리의 사적이므로, 문화재로서 그 공간과 관련 콘텐츠를 적극 활용할 수 있다.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군부대가 빠져나간 도시들은 그 부지를 자유롭게 쓰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문화적인 콘텐츠로 활용하기에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영의 실험에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