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 마포 성산동에서 약 30년을 살다가, 강서구 등촌동에서 4-5년 이후, 신사동, 압구정을 거쳐 지금은 성동구 송정동에서 살고 있다. 서울에서만 평생 살아온 도시사람이다. 게다가 성산동에서의 내 인생 대부분은 ‘홍대입구’ 앞에서 이루어졌다. 홍대 서울캠퍼스 안에 있던 중학교, 고등학교 총 6년을 다니면서 10대부터 홍대앞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다녔었고, 그 관성은 20대까지 이어졌다. 그당시 홍대는 인디문화 그 자체였다. 쉬는 시간 홍대 후문 앞에는 노브레인 멤버들이 계단참에 앉아 있곤 했고, 우리가 인사를 하면 잘 받아주곤 했다. 지금은 철거되어 사라졌지만, 철길옆 얼기설기 만든 건물들은 타투, 피어싱, 레코드 등 신기한 아이템들의 천국이었다. 거리에는 온갖 희한한 외양의 사람들이 가득했었던 시절이었다. 그런 골목들이 나의 하교길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나의 동네는 홍대앞 이었다. 여전히 친구들이 망원동, 서교동, 성산동에 살았고 친구들과의 만남의 장소는 홍대였다. 홍대는 조금씩 달라졌지만, 그 안에서 살 때는 잘 몰랐던 것 같다. 하지만 성산동을 떠나 강 건너 등촌동으로 갈 때 쯤에는 홍대가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물론 나는 평범했지만,) 홍대앞을 메우던 사람들은 진짜배기들이라고 생각했고, 그들에게서 나오는 동네 분위기가 좋았는데, 점점 그런 사람들이 떠났고, 그 자리에는 관광객들이 채워졌다. 내가 이사를 가기도 했지만, 예전같은 분위기가 사라진 때문에, 친구들과도 합정이나 연남동에서 만남을 갖기 시작했다.
등촌동은 내가 살던 홍대앞과 많이 달랐다.
진짜 주거지였다. 내가 이사온 곳은 빌라였지만, 인근에 목동 아파트단지 등 큰 아파트단지들이 많았고, 특별히 문화적이라고 할 만한 콘텐츠가 전무했다. 하지만 살기에는 매우 편리했다.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재래시장이 있고, 버스 4정거장이면 목동 현대백화점도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등촌동에 살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문화적인 인프라가 풍족한 동네에서 살았는지 깨달았다. (비록 홍대가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홍대는 홍대였다.) 기꺼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공연장, 밴드멤버가 하는 펍, 새로운 분위기의 레스토랑 등이 모여 있었고, 무엇보다 홍대에는 재미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길을 돌아다니면서 가게를 구경하고, 나처럼 홍대에 모여든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세상구경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한가지, 성산동 그리고 홍대는 ‘한강’에 가깝다. 물론 홍대에서 합정까지 가야 하지만, 내 심리적인 홍대앞의 영역은 ‘연남~홍대~서교/합정’ 이기에 한강이 포함된다. 홍대에서 놀다가 합정을 거쳐 한강에 가서 캔맥주를 먹기도 했고, 성산동 집에서 홍제천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달려 한강에 가기도 했다. 그것은 그냥 일상이었다. 어떤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하지만 등촌동에서 한강 접근은 쉽지 않았다. 일단 자전거를 타고 한강까지 가는 길이 너무 불편하고 위험했다. 동네에서 놀다가 발걸음이 한강으로 ‘자연스레’ 도달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애초에 동네에 놀 곳도 없다.)
분명 등촌동은 아이들을 키우며 살기 괜찮은 동네이지만, 내가 30년 넘게 살아왔던 일상을 담기에, 나에게는 부족했다. 아마도 성산동~한강의 물리적인 거리는 등촌동~한강 거리와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접근하는 길, 그 과정은 매우 다르다. 등촌동에서는 한강에 가려면 ‘큰 맘’을 먹고 가야했다. 성산동에서는 집에서 주말에 누워있다가 심심하면 훌쩍 가곤 했다.
그렇게 애매한 불만족스러움을 품고 살다가 나는 신사동에서 살게 되었다.
2년 정도 살다가 압구정역으로 옮겨서 약 2년 정도 더 살았으니 그쪽 동네에서 4년 정도를 살았다. 두 집에서 살아봤는데 둘 다 가로수길 근처였다. 이 동네로 이사온 첫 해에는 너무 만족스러웠다. 그러고보니 예전 내가 알았던 ‘홍대’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비교적 문화적인 콘텐츠가 많은 동네였고, 일반 주택가라 산책할 만한 골목길이 많았다. 게다가 한강이 코 앞이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한강에 가까웠던 동네였다.) 이 동네에서 나는 일상이 참 풍요로웠던 것 같다. 퇴근하면 저녁 먹고 동네를 산책하면서 사람구경을 하고 새로나온 제품이나 브랜드 등등을 구경한다. 일주일에 몇번은 한강에서 운동을 한다. 자주 짐을 챙겨 한강으로 나가 피크닉을 했었다. 어디 멀리 놀러갈 필요 없이 바로 집앞에 탁 트이고 푸르른 장소가 있다니, 살기에 너무 좋은 입지였다.
그런데 살면서 점점 가로수길과 신사동은 비어갔다. 코로나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글로벌 브랜드의 매장이 잇따라 철수했고 공실인채 남아있는 건물이 점점 많아졌다. 동시에 주택들만 있던 골목의 빌라가 리모델링을 하면서 점적으로 상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살던 빌라앞에도 상가가 들어왔다. 술집이었고, 밤 12시가 넘도록 고성과 큰 음악소리가 이어지는 일이 많았다. (이때 처음으로 알았다. 소음 민원은 구청 소관이라 경찰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츄리닝을 입고 집앞에 나서면 최대한으로 멋낸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는 광경이 펼쳐졌다. 점점 일상적인 생활이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다음에는 진짜 조용한 동네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오게 된 동네가 성동구의 송정동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송정동은 대중교통 입지가 나쁘다. 근처에 2호선, 5호선, 7호선이 있지만 어느 전철역도 가깝지 않다. 대부분의 전철이 걸어서 20분 정도 걸린다. 하지만 따릉이를 타면 7분이면 도착한다. 나는 오히려 이렇게 역에서 멀어서 더 마음에 들었다. 주택가인 이 동네는 시끄러울 일이 없다. 반면 중랑천 뚝방길이 1분 컷이다. 집에서는 중랑천의 푸르른 나무가 한눈에 보인다. 큰 장은 건대입구 이마트에서 보거나 집앞 슈퍼에서 본다. 따릉이를 타면 한강, 서울숲, 어린이대공원 어디든 갈 수 있다. 동네가 평지라서 자전거 타기에 더욱 좋다. 중랑천은 한강까지 이어져 러닝하기에 최적이다. 지금 나에게는 이 동네가 참 좋은 동네이다.
어떤 동네가 100% 좋다고 할 수 없다.
생애주기에 따라 좋은 동네는 달라지기 마련이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서도 다르다. 다만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거쳐온 동네를 생각하면 나에게 좋은 동네의 요소가 몇가지 있는 것 같다.
한강, 그러니까 큰 자연에 대한 접근성이 좋을 것 (거리가 너무 멀지 않고, 기꺼이 가는 가고 싶은 여정일 것)
집에서 가까이에 자연을 접할 수 있을 것 (중랑천, 홍제천 같은)
가게와 사람들을 구경하며 산책할 수 있는 길이 많을 것 (아파트단지 신도시가 아닌, 가로 중심의 도시를 의미)
가까운 거리에 장볼 곳이 있을 것
자전거를 타기 좋을 것
몇가지 없는 것 같으면서도, 따지려고 하면 저 4가지를 모두 충족하는 동네가 서울에 얼마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원하는 동네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각자가 원하는 동네의 모양이 제각각이겠지만, 우리들이 좀 더 좋은, 그러니까 다양한 사람들에게 좋고, 지구와 환경에도 좋은 모양을 원한다면 좀 더 좋은 도시, 좋은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