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비도시 그리고 농촌 그 어딘가
올해 여름휴가로 고성에 다녀왔다.
‘고성’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강원도 고성군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고성이라는 지명을 가진 군이 2개 존재한다. 나머지 하나는 경상남도 고성군 이다. 이 두 지역의 이름은 신라 경덕왕 대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쓰인다고 한다. 둘은 발음은 같지만 한자가 다르다. 강원도 고성은 높을 고(高), 성 고(城)를 써서 ‘높은 성’을 의미한다. 경남 고성은 굳을 고(固), 성 고(城)을 써서 ‘단단한 성’을 의미한다. 경덕왕 시절, 한자가 다르더라도 굳이 같은 발음으로 할 필요가 있었을까 의문이 든다. 하지만 신라때부터 지금까지 쓰이는 지명이니, 역사가 꽤 깊어 이제와서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바꿀 필요는 없겠지..? 하는 생각을 한다.
아무튼, 이번 여름 휴가지는 강원도 고성이 아닌 ‘경남 고성’ 이었다. 그 중에서도 나는 ‘하이면’을 방문했다. 하이면은 고성군의 서쪽 끝자락에 위치하여, 사천시의 경계, 삼천포 일대와 맞닿아 있다. 원래 하이면의 일부는 사천시였고, 일부만 고성군이었다. 1914년 고성군 하일면 일부와 사천군 수남면 등을 병합하면서 ‘하이면’이 만들어졌다. 태생부터 2개 군을 모태로 만들어진 지역이라서 일까, 하이면은 이도저도 아닌 경계에 간신히 서 있는 분위기의 동네이다.
분명 행정구역 상으로는 ‘고성군‘의 지역이라, 민생소비쿠폰도 고성군에서만 사용할 수 있지만, 일상생활은 삼천포*에서 이루어진다. 행정적인 일을 처리하는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장보기, 외식, 운동, 카페가기 등등을 위해서 대부분 삼천포로 향한다. 하이면에서 고성읍까지 자동차로 30~40분 정도 걸리지만, 삼천포는 10분이면 도착하기 때문이다.
*삼천포도 지금은 법정 지역명은 아니지만, 사천군과 삼천포시가 통합되어 사천시가 되어 법정동명이 바뀐 지금에도 여전히 지역주민들은 ‘삼천포에 산다’고 말하고, 하이면 주민들은 ‘삼천포에 간다’ 라고 한다. ‘사천에 간다’라고 할 때는 삼천포보다 북쪽으로 올라가 있는 예전 사천군 일대에 갈 때 그리 표현한다.
태생적으로 ‘경계성’을 가진 하이면은 1981년 하이면 덕호리에서 가동을 시작한 삼천포화력발전소, 2021년 개시한 고성하이화력 1,2호기로 인하여 또 다른 형태의 ‘경계성‘을 얻는다. 특히 하이면소재지가 그러하다. ‘발전소’라는 대규모 인프라가 들어오면서, 면소재지는 외지인의 출입이 잦아졌고, 모르는 사람들에 익숙한 동네가 되었다. 보통의 시골마을이라면 새로운 사람이 드나들면 마을 전체가 관심을 갖고, 말한마디라도 걸만 하지만 이곳은 워낙 발전소 관련하여 출장온 사람들이 유입되다 보니, 도시의 ‘익명성’이 어느 정도는 확보되는 느낌의 동네가 되었다.
외지 특히 도시의 사람들이 유입되다 보니, 다른 면소재지에서 보기 드문 프랜차이즈 음식점들이 많이 들어와 있기도 하다. 또한, 인근 발전소라는 인프라 영향인지 면소재지에는 철물점 관련 매장이 꽤 많이 있었다. “OO종합상사”라는 이름의 이것저것 설비 관련 물품을 판매하는 곳들이 여럿 있었고, 새로 생긴 듯 보이는 곳도 있었다. 면소재지, 농가주택, 논밭, 프랜이런 매장, 철물점 등의 공간이 혼재된 이곳은 마치 서울 외곽, 서울과 수도권 지역의 중간지대, 도시도 아니고 농촌도 아니고 ‘비도시’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경계성은 도시공간적으로도 느껴진다. 면소재지도 몇개의 시골마을로 이루어진 곳으로 자생적인 도시조직을 갖는다. 그러다가 고성하이화력 1,2호기가 들어서면서 그 부지에 살던 주민들이 집단 이주를 하게 되었다. 이주 지역은 면소재지의 서측 일대 군호마을 이었다. 2015년 군호마을 일대에 단독주택 단지를 개발하여 주민들이 이주했다. 이로 인해 이주해온 주민들은 농업인으로서 경작지를 상실했다. 이주해온 주미 모두가 농업인이 아닐 수 있고, 이로인한 금전적인 보상을 받았겠지만, 농촌마을에서 ‘주택’이란 농경지와의 관계 속에 존재하는데, 이주해온 주민들은 농경지라는 ‘뿌리’를 상실한 채 ‘주택’에서의 삶만 갖게 된 것이다. 이주 주민들은 농경지와 관계맺은 농업인의 정체성과 뿌리를 잃고 홀가분해진 도시인의 정체성이 혼재되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이주단지의 개발은 새로운 경관을 만들기도 하였다. 부정형의 꺽이는 골목으로 이루어진 옛 마을의 경관은 길의 끝이 감춰져 있어 길 끝에 무엇이 있을지 호기심을 갖게 만들거나, 길의 끝이나 길을 따라서 논밭이나 산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이주단지는 직선형의 길로 이루어져 계획도시 답게, 오리엔테이션이 쉽고 명확하다.
하이면 사람들은 고성군과 사천시를 오가며 생활한다. 농업인이면서 도시인의 삶을 살아간다. 도시와 농촌, 그리고 비도시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경관과 환경을 갖는다. 나는 하이면을 경계도시라 말하고 싶다. 그리고 경계도시라는 것이 이도저도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는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진 도시일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