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까지 함께하길

국립중앙박물관 빗살무늬 토기, 그리고 삼천포 대방진굴항

by 서선영

케데헌의 열풍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은 연일 오픈런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몇년전 가본후 최근에는 가보지 않았지만, 조카들과 함께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어린이 박물관을 관람하고 상설전시관에 아무생각 없이 들어섰다가 유적을 전시해놓은 방식을 보고 놀랐다. 특히 ‘빗살무늬 토기’의 전시가 인상적이었다. 내 기억 속에 빗살무늬 토기는 유리전시실 안 가느다란 실이나 지지대에 기대어 허공에 매달려 있는 채로 있었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흙바닥에 꽂아 사용했던 유물이라는 것은 하단의 설명문을 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가보니 큰 사각 박스에 모래가 담겨져 있고, 그 안에 빗살무늬 토기가 일부는 모래에 파묻힌채 전시되어 있었다. 하나의 사물이 진공상태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 생활양식 등 ‘맥락’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치 고급스러운 매장의 전시 같아 보여서 익숙하면서도 신선했다. 상업공간에서는 상품의 이미지, 브랜드를 소비자에게 전달할 때 ‘오브제’로서만 전시하지 않는다. 그 상품이 생활 속에서 사용되는 ‘상황‘, ’장면’을 재현하기도 하고, ‘시퀀스가 있는 경험’으로 연출하기도 한다. 내가 최근 경험한 박물관은 주로 단순히 유적을 시대별로 비치해두는 경우가 많았어서 인지, 국립중앙박물관의 맥락까지 보여주는 전시가 새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지난주, 삼천포 여행을 하면서 ‘대방진굴항’이라는 장소에서 ‘유물의 맥락까지 함께 전시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이 떠올랐다.


대방진굴항은 고려시대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연안 땅을 파서 만든 군항시설-인공항구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93호로 지정되어있다. 바다를 향해 둔덕과 거대한 팽나무가 둘러싸고 있고 안쪽으로 오목한 형태이다 보니, 바다쪽에서는 나무가 무성한 언덕으로 보여 지나치기 쉽지만 안쪽에는 군함과 상비군들이 상주해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작은 어선들이 정박하는 한산한 어촌 느낌이었다. 그리고 둔덕을 올라서면 바다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굴항선착장 시설이 펼쳐진다. ‘대방진굴항’이 어떠한 환경 속에서 만들어졌고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었을지 현재 주변 환경으로는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과거의 기능이 사라지고 주변도 모두 바뀌어버린 ‘대방진굴항’이 외로워 보였다.


이 풍경을 보면서 나는 국립중앙박물관의 ‘모래상자 박스에 전시되어 있던 빗살무늬 토기‘가 떠올랐다.

토기라는 유물 하나의 전시에 맥락을 함께 보여준 것 처럼,

역사적인 장소나 건축물을 문화재로서 사람들에게 보여줄 때, 그 영역만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이 그 자리에 그렇게 자리잡게 주변 환경을 함께 지키며 보여준다면 어떨까?


어떤 장소나 건축물이 갖는 역사적인 ‘가치’ 안에는 그 건물이나 공간 뿐 아니라, 주변 환경 즉 맥락까지 포함된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재보호구역 이라는 제도가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화재보호구역은 모든 유적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 주변 생활환경 속 다양한 역사적 장소/건축물들은 현대적으로 개발된 환경 속에서 고립된 섬처럼 존재한다.


나는 그러한 장소/건축물들이 고유의 아우라를 뽐내지 못하고 잠들어 있는 것이 참 아쉽다. 그렇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의 빗살무늬 토기 전시를 보고 기대를 해본다. 토기의 맥락도 함께 전시하는 관점이 확장되어 언젠가는 ‘대방진굴항’ 같은 문화유산도 주변환경의 ’맥락‘까지 함께 관리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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