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학교는 누구나 인생의 생애주기에서 꽤 오랜시간 다니게 되고, 자녀가 있다면 자녀의 교육으로 인해 가까이 하게 되는 공간이다. 자연스레 학교 주변의 공간은 아이들과 학부모가 등하교하고, 머무르며 교류하는 장소가 될 수 밖에 없다. 이런 배경에서 많은 도시들은 ‘학교 주변 공간’을 안전하고 쾌적하게 관리하는 주요 대상으로 삼아 왔다.
아이들의 안전이 최우선인
어린이보호구역
우리나라는 1995년 도로교통법 제정을 통해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이 처음 도입되었고, 2003년 본격적인 어린이보호구역 개선사업을 시작으로 점차 강화되어 왔다. 초등학교 및 유치원 주변 반경 300m 이내를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지정하여 30km/h 이하로 속도를 제한하고, 불법주차 금지, 안전시설 설치 등을 추진하고 있다. 어린이보호구역은 행정안전부 소관으로, 조성 및 운영/관리에 대한 지침을 마련해 놓고 있다. 지침에 따라 어린이보호구역의 아스팔트 노면은 붉게 칠해지고, 어린이보호구역, 30km 이라는 단어가 씌어진다. 좁은 도로에 더 좁은 보도를 만들어 자동차와 사람의 통행공간을 구분하고, 그 사이에 방호용 울타리를 두른다. 시종점에는 어린이보호구역 표지판이 걸린다.
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은 등교시간에는 아이들을 라이딩하는 부모님의 자동차로 붐비고, 하교시간에는 학원셔틀버스로 붐빈다. 그 틈에서 도보 통학하는 아이들의 학부모나 조부모가 비좁게 서서 아이를 기다린다. 아이가 보이면 얼른 차에 태우거나, 붐비는 교문을 빠르게 빠져나가기 바쁘다. 학원셔틀을 타지 않는 고학년 아이들은 혼자 또는 삼삼오오 모여 어린이보호구역으로 꾸며진 길을 걷는다. 하지만 아이들은 정해진 보도로만 걷지 않는다. 울타리 쳐진 보도공간은 여럿이서 걷기에 비좁고 중간에 빠져나갈 틈도 없어서 보도 대신 차도로 걷기를 택하는 아이들이 많다.
어린이보호구역에서는 아이들을 자동차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자동차와 아이들을 분리하고, 울타리를 쳤다. 하지만 비좁은 도로 공간에 무리하게 보도를 만들다 보니 그 보도는 통과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공간이 되어 선택받지 못한다.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울타리는 오히려 아이들을 보도 안에 ‘격리’하는 것 같기도 하다. 울타리로 인해 시각적으로 차도가 명확히 구분되다 보니, 운전자는 시야를 넓게 쓰기 보다는 앞만 보고 속도를 내기 쉬운 환경이 되기도 한다. 안전성이 높아지면 운전자는 이를 믿고 더 난폭하게 운전을 하게 되는 ‘펠츠만 효과(Peltzman effect)’가 발생하는 것이다.
어린이보호구역, 그 출발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되었지만 안전을 위한 ‘분리’에 치우치면서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 안전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물리적인 분리가 아닌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최근 파리시의 학교 앞 거리 프로젝트를 보고 우리가 놓친 것을 저들은 챙기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배우고 성장하는 공공공간
_ 파리시 학교앞거리 프로젝트 Rue aux Écoles
파리시는 2019년부터 어린이의 등하교 안전을 위하여 학교 주변 거리의 차량 통행을 제한하는 ‘학교앞거리(Rue aux Écoles) 프로젝트’를 추진해오고 있다. 시작은 도심 내 대기오염 문제를 인식하면서 부터 였다. 당시 프랑스 내 통계에 따르면 아동 4명 중 3명이 WHO 권고치를 상회하는 오염된 공기에 노출되어 있었고, 이는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고, 인지 발달과 학업성취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고 있었다. 특히 학교 정문 앞은 학부모 차량 이동과 공회전이 집중되는 구역으로 도시 평균보다 미세먼지(PM2.5)와 이산화질소(NO2) 농도가 도시 평균보다 더 높게 나타나고 있었다.
이러한 위기 의식 속에서 파리시는 시범적으로 학교 주변 도로의 차량 통행을 폐쇄하는 조치를 일부 지역에서 추진하기 시작했으나,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도시 전체적으로 확산되게 되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시민들이 차량 통행이 멈춘 거리의 조용함과 깨끗한 공기를 경험하게 되면서 ‘차없는거리’의 효용을 느끼고 그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2020년은 파리시의 시장 선거가 있던 해였다. 2014년 취임 이후 ‘자동차 없는 파리’를 지향해왔던 안 이달고 시장은 재선에 도전하였다.당시, 재선의 핵심 공약이었던 ‘15분도시’는 새로운 개발로 환경에 부담을 주기 보다, 기존 도시공간을 일상적 삶 중심으로 재구성하고 복합활용하여, ‘동네 중심의 삶’을 회복하자는 내용이 골자이다. 학교 앞 도로의 차량 통행 폐쇄 조치는 ‘15분도시’ 정책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핵심사업 ‘Rues aux écoles(학교앞거리)’ 이 되었다.
‘학교앞거리’는 단순히 차량 통행을 폐쇄하는 수준이 아닌, ‘도로’라는 공공의 자원을 자동차의 통행과 주차라는 단일 용도에서 보행, 놀이, 휴식, 학습 등 다층적 용도로 재구성하려는 시도였다. 이러한 시도는 기후 위기 대응, 공중보건 개선, 사회적 결속 강화라는 도시의 복합적인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고자 하는 결정이었다. 2020년 차량의 통행만을 차단하던 수준에서 15분 도시의 핵심사업이 된 이후로 차량 통행 폐쇄와 더불어, 깨끗한 환경을 경험하고 소통할 수 있는 녹색공간으로 조성되기 시작했다.
재정비 과정에서 공공공간의 미학적, 생태적 질을 높이기 위하여 모든 학교앞거리의 시각적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설계 가이드라인을 제공했다. 고밀도 식재를 통해 아동들에게 도시 생태계를 직접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고, 소음을 차단하고자 했다. 다양한 수종의 단풍나무, 봄철 개화하는 관목과 교목 등을 도입하여 아이들에게 자연의 순환 주기를 느끼고, 벌과 나비, 곤충 등 생물다양성을 일상에서 관찰할 기회를 제공했다. 또한 지표면 열 흡수를 줄이기 위해 명도가 높은 아스팔트나 투수성 포장재를 사용하여 표면온도를 일반 아스팔트보다 4~6도 낮추도록 하였다. 학교앞거리는 단순히 차가 다니지 않는 보행자전용도로가 아니었다. 아이들이 일상속에서 세상과 자연을 배우고 성장하는 공공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자 하였다.
초기 시범사업 대상지인 파리시 20구에 위치하는 피에르 퐁생 거리(Rue Pierre Foncin)는 초등학교와 2개의 유치원이 면해 있어 아동 유동인구가 매우 높았으나, 과거에는 양측 도로변 주차로 인해 실제 보행유효폭이 협소하고 차량 통과속도도 빨라 사고 위험이 높았다. 재정비 시, 과감하게 모든 주차 공간을 비우고 녹색공간으로 전환했다. 차도였던 노면의 높이를 보도와 일치시키고 밝은색 아스팔트를 적용하여 공간적 연속성을 확보했다. 특히 아동들이 직접 노면 마킹 설계를 제안하고 페인팅 작업에 참여하는 워크숍을 사전에 진행하여 공간에 대한 애착을 높였다.
지난 5년간 파리시는 약 300여개의 학교앞 거리를 조성했다.
파리시 내 학교는 약 400m 마다 있기에 이 공간은 학생들과 학부모만을 위한 공간이라기 보다는 사회적 배경에 관계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지역의 공공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파리 호흡기 협회 연구에 따르면, 학교앞거리 주변에서는 이산화질소(No2) 농도가 최대 30% 까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5분도시 창시자 모레노 교수는 최근 파리에서 진행된 보행자전용구역 사업 중 반대 여론이 거의 없는 몇 안되는 사업으로 대중의 수용도가 매우 높다고 평가한다. 반대하는 운전자도 존재하지만 소수에 불과하고, 어린이 안전과 도시 녹화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시민이 동의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파리시 내 학교가 너무 번화한 도로보다는 비교적 주거지 인근에 위치하여 보행자전용도로로 만들기에 비교적 용이했다는 평도 있다.
다시 한국의 어린이보호구역으로 돌아와 본다. 파리시가 5년 동안 학교앞거리를 아이들과 지역사회의 녹색공간으로 만드는 동안 우리의 어린이보호구역은 학교 정문앞 좁은 도로에 그보다 더 좁은 보행로를 구획하여 페인트를 칠하고, 펜스를 세워왔다. 그 결과 펜스 안을 걷는 아이들도 있긴 하지만, 비좁은 펜스가 아닌 차도로 나와 걷는 아이들, 시민들이 꽤 많이 목격된다. 여전히 자동차가 오가고 주정차가 집중되는 정문앞의 공기질과 환경은 아동친화적이기 않다. 그 공간에서 자연의 순환주기나 생물다양성을 배울 수는 없다.
물론 한국의 학교 입지 조건이 파리시의 그것과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한 마음을 같지 않을까? 그 아이들을 위한 마음이 제대로 된 공간적 솔루션으로, 정책으로 만들어져서 우리도 5년 후에는 아이들이 학교 정문앞에서 뛰어놀고, 도시 자연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