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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선영 Sep 10. 2018

부유하는 베를린

유럽도시라는 수식어 보단, 그냥 베를린 

베를린은 요즘 가장 핫한 크리에이티브한 도시 중 하나이다. 그만큼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고, 독일 내 이민자 수가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다. 이렇듯 다국적 사람들이 많다는 것만으로도 베를린은 여느 유럽도시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어떤 기사에서는 그린스페이스가 풍부한 점이 베를린을 더욱 창조적으로 만든다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100% 동감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전부일까. 내가 베를린에 머무르면서 생각해봤던 베를린만의 느낌을 만들어 내는 요소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흔히 유럽도시에 대한 이미지로 아름다운 건축물과 광장, 웅장한 교회, 성당 건축물, 역사적으로 오래된 골목길과 상점들을 떠올린다. 물론 유럽도시들도 현대적 개발을 많이 해오고 있지만, 그럼에도 역사 도심의 전통을 굉장히 잘 지켜오고 있다. 관광객 입장에서도 글로벌 양식으로 조성된 현대적인 공간보다는 그 도심의 역사와 전통을 알 수 있는 구도심을 탐방하는 것이 더욱 흥미롭다. 방문하는 누구나 그 도시의 묵직한 역사를 느끼고 감탄하게 된다. 대표적인 유럽도시들 파리, 바르셀로나, 암스테르담, 뮌헨, 코펜하겐 등 에는 구도심이 존재한다. 작은 도시조차도 과거 마을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베를린에서는 
다른 유럽도시들에서 보았던
중세의 구도심을 찾을 수 없어서 어색했다.

베를린의 중세 도심은 제2차세계대전으로 인해 파괴되었다 한다. 나는 구도심의 도시조직(좁은 골목과 전통양식의 건축물들, 기념비적인 건물, 광장 등)을 찾아 볼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유럽도시 같으면서도 아닌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베를린도 약 70년전까지는 여느 유럽도시들처럼 중세도시 모습을 갖고 있었다. 지금의 박물관섬(지도상, Cölln으로 표시되어 있다.)과 알렉산더플라츠 남측 영역(지도상, Berlin으로 표시되어 있다.)이 도시지역이었고, 도시주변으로 해자와 성곽이 둘러싸고 있었다. 지도 상으로 다소 어긋난 격자가로망, 주요 건축물, 광장, 왕궁과 정원이 보인다. 성 외곽으로는 경작지와 농가를 볼 수 있다. 


17세기 베를린 지도 _ 1652, Berlin and Cölln *출처: 위키피디아



도시의 근대화가 진행됨에 따라, 도시영역이 성 너머로 확장해 나갔다. 성곽과 일부 해자는 도로로 대체되었고, 철도가 놓여졌다. 도시의 외형적 모습이 급변했지만, 그럼에도 1905년 베를린 지도를 보면, 구도심의 도시조직(가로망, 광장 등)은 유지되어 있었던 것을 볼 수 있다.  


1905년 베를린 지도에서 중심부를 확대함 *출처: 위키피디아


구도심의 흔적을 찾기 어려워 진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베를린 전투(1945)때 였다. 도시 중심지에 폭탄이 떨어졌고, 그로 인해 역사적 건물과 주거공간의 1/3 이상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전후 복구 할 새도 없이,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면서 도시는 동서로 분단되었다. 중세도시구역은 동베를린에 포함되게 된다. 


1979년 동베를린은 중세도시구역의 복원이라는 화두로 도시계획 공모전을 진행하였고, 당선된 최종안이 실현되었다고 한다. 당시 이 당선안에 대한 많은 논란이 있었으나, 여론은 대체적으로 우호적이었고, 현재 베를린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Harald Bodenschatz(2010), 베를린 도시설계(구민사, 2014, 박종기 역), p87.)






그동안의 유럽 여행을 통해,
중세도심은 그 도시의 진수라는 생각을 했었다. 


도시의 역사를 충실히 지켜오고 있는 유럽도시에 사는 유럽인들은, 그 묵직한 역사와 전통때문에 오히려 새로운 시도를 하기 어렵다는 애기를 한다. 그 육중한 무게에 눌린다고. 오히려 끊임없이 새롭게 재개발되고 있는 신흥 아시아 도시, 특히 서울같은 역동성을 높게 평가하기도 한다. 나도 그동안 몇번 다녀본 유럽여행의 경험을 떠올려 보면, 어느정도 그 말에 수긍이 가는 부분도 있다. 처음에는 역사적으로 잘 보전된 도심 골목과 건축물을 구경하는 것이 흥미진진했으나, 실제로 이 곳에 산다고 생각하면 답답한 감이 들긴 했다. 한편으로는 사소한 것이라도 역사적인 정체성을 지키려는 이들의 노력이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현대적인 편리함은 중세도심 밖에서 충족하면 되었다. 중세도심도 나름대로 현대성을 차근차근 만들어 나가긴 했었다. 그렇게 느린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그런데 베를린은 여행해 본 다른 유럽 도시와 달랐다. 


베를린에서는 다른 유럽도시들이 갖고 있는 중세도심 모습을 찾기 힘들다. 그렇다고 베를린에서 역사성을 느낄 수 없나? 그건 또 아니다. 다양한 분야의 역사를 도시공간과 건축물, 박물관 등에서 풍부하게 느낄 수 있다. 세계 2차세계대전에 대한 역사를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반성하는 모습이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도시 곳곳에 묻어 있기도 하다. 또 이와 상반되게, 지금 베를린은 '공사 중'이다. 독일 통일 이후, 꾸준히 유럽을 대표하는 도시로 성장하기 위해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중이다. 




묵직함과 가벼움 사이 줄타기 하는 도시,
비교적 새로운 시도가 가능한 도시 


묵직한 것 같으면서도 가벼운 이 도시. 비교적 다른 유럽도시에 비해 가볍고, 새롭고, 아직은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틈이 있는 듯 하다. 누구의 어떤 의도였던지 간에, 결과적으로 그리 되어버렸다. 이런 기분은 나만이 느끼는 것은 아닌 듯하다. 유럽 및 세계의 많은 젊은이들, 특히 창조적 작업을 하는 이들이 새로운 도전을 꿈꾸며 많이 모여들고 있다고 하니. 



박물관섬과 슈프레강이 보이는 James Simon Park in Mitte


베를린의 이 자유분방한 분위기는, 중세도시의 부재, 어찌보면 역사적 배경이 일부 사라진 채 한쪽발은 땅위에서 떨어져 부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형성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럼에도 저층의 도시밀도, 도시 전반적으로 현대건축보다는 오래된 건축물이 우세한 현황, 중정형 건축, 근대 건축물의 현대적 재사용 등 덕분에 한쪽발은 땅에 붙이고 서 있으면서 역사를 천천히 쌓아나가고 있기에, 아예 하늘로 날아가지 버리지 않고 부유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유럽도시의 핵심 이미지를 응집하고 있는 중세도심이 없는 상태에서, 어느 면은 유럽도시 같으면서, 또 다른 면은 신흥도시, 미개척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점에서 베를린을 '유럽도시'라는 범주에 넣어버리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다. 베를린은 그저 베를린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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