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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선영 Sep 07. 2018

가자, 베를린

intro 

떠나기 전의 마음 



회사원으로 10년 넘게 살았다. 작년 하반기 문득 이제 조직생활은 그만하고, 독립해보라는 계시가 머릿속에 울렸다. 그만두고 무엇을 할지 정해놓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언제나처럼 비합리적으로 나의 미래를 결정했다.


그동안 미래를 결정해야 하는 시점들이 종종 있었다. 어느 대학 어느 전공을 선택할지, 어느 회사를 들어갈지, 회사를 그만둘지 등등 내 신변에 변화가 생기는 결정들 말이다. 중학교 때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얘기했던 것이 주체적인 첫 번째 발언이었던 것 같지만 실패했고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했다. 그 후 내 선택이 실행으로 이어졌던 첫 번째 경험은 대학과 전공을 정할 때였다. 


당시에 과연 나는 합리적으로 선택했는가? 


고3 3월, 갑자기 수시를 써보라는 담임선생님의 말씀에 며칠 조금 알아보고 한 군데 결정을 했고, 덜컥 붙어버렸다. 입학 후 공부를 하면서부터 전공이 재미있긴 했지만, 내 결정이 맞았나 하는 의문이 때때로 들었다. 그때마다 나는 왜 어떤 이유에서 선택했는지 스무 살 내 인생 경험을 총동원하여, 이 전공은 나에게 맞는 것이라며 합리화시켰다. 


졸업 후 취직할 때에는 공모 프로젝트를 같이 하던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열렬히 원하는 회사였다기 보다(그런 회사도 없었지만) 마침 입사 제안도 들어왔고 어떤 곳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 후에도 회사를 그만두고 입사하는 등의 결정을 할 때 나는 하고 싶은지, 아닌지를 가볍게 스스로에게 묻고 그에 따라 결정했다. 분석적으로 장단점을 계산해본 적이 있긴 하지만, 그 분석 결과에 따라 결정한 적은 없었다. 그리고 사실 그 분석도 결국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했던 것 같다. 


합리화는 모두 일을 결정하고 난 뒤에 이루어졌다. 


종종 주변에서 나에게 너무 충동적으로 결정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 직관과 감정을 믿고 결심을 하는 편이다. 결과적으로 그런 다소 충동적이고 비합리적인 결심들이 조금이라도 내가 행복하게 되는 결정들이었다.



이번 회사는 사실, 입사하고 한달만에 "큰일났다." 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머릿속에서 여기서 멀어져야 한다느 경보가 울렸었다. 하지만 사정 상, 들어온지 한달만에 나갈 순 없었다.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고, 나를 뽑아준 사람에게 "우리는 서로 잘 맞지 않아, 인정하지?" 라는 메세지를 준 후에야, 사직서를 제출했다. 


회사를 그만두면서 아예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 고3 전공 선택하던 때처럼, 지금까지의 경력을 차치하고, 순전히 나라는 한 인간은 무얼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될 때,
무얼 하는 사람인가? 

나라는 한 인간을 들여다보기 위해, 낯선 환경을 찾았다. 이미 나는 일상 속에서 이러저러한 권위들에 얽매여 있었다. 이런 것들을 벗어나고 싶었다.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고, 일을 오래 하기 위해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아무것도 달성하지 않아도 될 때 과연 나는 어떤 일을 자발적으로 할지 궁금했다. 언니네 가족이 살고 있는 베를린이 떠올랐다. 숙식해결을 하며 최대 3개월까지 머무를 수 있고, 천사같은 조카들을 매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베를린에서 그냥 살아보기로 했다. 

가기 전까지 한달의 시간이 있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무얼 할지, 어디를 가볼 지, 한두번 찾아보다가 이내 흥미를 잃고 노트북을 닫곤 했었다. 언제나 규칙적으로 뭔가를 해왔으니, 이번에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말아보자는 계획을 세웠다. 




다녀와서의 마음 


올해 4월 한국을 떠나 베를린에서 6월까지 약 3개월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솔직히 베를린으로 떠날 때 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에서의 관성을 모두 버리고 싶었고 한국에 대한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한달 정도 지나니, '하고 싶지 않다'는 어떤 의지나 마음조차 사라졌다. 


나는 그저 그곳을 보았고, 걸었다.
그냥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었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그냥 찾아 보았다. 그렇게 하다보니, 어느새 나는 3개월 동안 베를린에서 끊임없이 서울을 떠올리고 있었고, 보여지는 베를린의 도시모습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자꾸만 보게 되었다. 도시를 배우고 일해온 관성이 작용했다. 그 의미들을 생각했고, 서울을 생각했다. 서울이 가고 싶어 졌다. 서울에서 어떤 변화를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그것이 어떤 결실을 맺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누군가 제대로 된 결실을 맺을 때, 1% 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례라도 만들고 싶어졌다.


한국에 온 나는 베를린에서 부러워 했던 일들을 내가 직접 해보기로 했고, 하나하나 해보는 중이다. 그 일들 중 하나가 내 생각들을 글로 풀어내는 것이다. 


그 언젠가의 누군가를 위해, 베를린에서 일었던 생각들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이런 이야기에 과연 누가 관심을 가져줄 지 모르겠다. 아무도 관심없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내 안에서 올라오는 생각들을 풀어내는 것. 33년 동안 서울에서 살아온 사람이, 3개월 동안 베를린에서 보고 느낀 것들, 베를린을 보면서 놀라워하고 부러워하다가, 서울을 떠올렸던 에피소드들을 써보려고 한다. 


누군가 이 글을 통해, 내가 살고 있는 주변 환경에, 도시에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 

베를린 여행을 갈 때, 한번 쯤 읽어봐 주면 좋을 것 같다. 조금 다르게 관광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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