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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선영 Nov 08. 2018

잉여로운 일요일이 지루해졌다  

나에게 흥미로운 활동이면서, 남에게도 도움되는 일이 없을까

Intro

나와 내 친구는 2018. 11. 3.(토) 신촌 이대 앞에서 '2018 리페어 카페 서울'을 개최하였다. 고장 난 물건을 직접 고칠 수 있는 공간을 하루 운영한 것인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다.
시작할 때부터, 준비하는 과정 중간중간, 과연 고쳐주는 것도 아니고, '직접' 고치러 오는 사람이 있을지 걱정도 많았고, 한계도 많았다. 하지만 막상 열어보니, 사람들이 모였고, 신기했다. 혼자의 힘으로 뚝딱뚝딱 고쳐나가는 모습이, 그 손이 아름다웠다.
또 언제 여나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준비하겠다 얘기했다. 그리고 그 준비의 첫 단추로, '2018 리페어 카페 서울'을 어떻게 시작하고 준비했는지 그 과정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리페어카페서울 페이지 




# take 1 _ 일요일 오후 내 방  


시작은 어느 일요일 오후였다. 여느 때와 같이 토요일은 이런저런 약속을 잡아 친구들을 만났었고, 그날은 하루 종일 침대에 붙어있었다. 밥도 먹었고, 커피도 마셨고, 간식도 먹었다. 주중에 놓쳤던 드라마와 라디오스타, 나 혼자 산다도 다 챙겨보았다. 인스타와 페북, 유튜브도 다 둘러보았다. 책도 이미 읽었다. 나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침대에 누워 창밖에 하늘을 보던 중, 내가 쉴 때 하는 일은 왜 이다지도 수동적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신변을 챙기기 위한 일들과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의 시간 외에 온전히 '놀고 쉬라고' 있는 그 시간에 하는 일들은 그저 '보고', '소비하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 만나서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수다 떨기, 자전거 타기, 아이패드로 드라마나 영화보기, 책 읽기, 독서모임, 동네 산책, 가끔 쇼핑하기. 대부분의 활동이 뭔가를 사거나, 오로지 나만의 내면을 위한 행위, 그리고 거의 시각적 행위들이다. 나는 이렇게 보내는 여가활동이 재미있고 의미 있긴 하지만, 좀 지루해졌다. 어쩌면 직장생활을 10년간 하면서, 평일 동안 온갖 에너지를 쏟아내고 주말에 널브러져 있는 이 루틴이 지겨워진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더 이상 나의 주말을 그렇게 보내고 싶지 않아 졌다.


여가시간을
좀 더 생산적으로 보내는 방법 없을까?

그동안 여가를 좀 더 다르게 보내기 위한 노력은 해왔었다. 봉사활동도 알아보고, 춤 동호회나 소모임 등에도 나가보기도 했었다. 양초 만들기도 해 봤었다. 하지만 정말 의미도 있으면서 재밌고, 계속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서 이내 그만두었던 게 여러 번이었다. 나는 이런 심심함을 한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그 친구는 살면서 심심함이 느껴본 적이 별로 없다고 했다. 쉴 때 뭔가 항상 만드는 사람이었다. 집에서 스톨이나 테이블을 만들기도 하고, 갑자기 재봉틀을 사서 유튜브를 보며 에코백을 만들기도 했다. 친구는 내가 원한다면 이런 걸 가르쳐주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 권태로움을 손으로 하는 작업을 통해, 그리고 진짜 필요한 것을 만드는 작업을 통해 조금 해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직접 만들고 고치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만들기를 하려면 장비와 공구도 사야 하고, 공간도 더 필요했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집에서 내 방은 침대, 옷장, 책상으로 가득 차 있는데, 당장 장비나 공구를 구입한다면 수납해놓을 공간이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내 마음속에 일었던 작업에 대한 약간의 의욕은 이내 수그러들었다.




# take 2 _ 해외 리페어 카페


친구와의 대화 이후, 우연한 기회에 해외에는 리페어 카페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리페어 카페는
고장 난 물건을 직접 고칠 수 있는 공간이다

장비와 공구, 재료를 무료로 쓸 수 있고, 고치는 법을 아는 자원봉사자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고칠 게 없더라도 그냥 놀러 가서 커피 한잔 하며 구경해도 되는 공간이었다. 모든 것이 무료인 데다가 이렇게 조건 없는 환대를 해주는 공간이라니. 이것이 과연 가능한가?


현재 전 세계 1,600여 곳이 있는 리페어 카페는 2009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처음 열렸다고 한다. 환경에 관심이 많았던 네덜란드의 한 기자가 사람들이 조금만 고치면 쓸 수 있는 물건을 고쳐볼 생각도 안 하고 쉽게 버리고 새로 사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꼈다. 그녀는 사람들이 각자 물건을 고쳐서 오래 사용하게 되면 그만큼 쓰레기를 줄이고, 나아가 좀 더 깨끗한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2009년 그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 암스테르담에서 직접 수리해볼 수 있는 공간인 '리페어 카페'를 개최한 것이다.


리페어카페, 네덜란드 (출처: 위키피디아)


리페어 카페는 보통 월 1회 정기적으로 열리고, 걸어갈 수 있는 가까운 장소(보통은 주민 커뮤니티 센터)에서 개최된다. 소형가전, 생활잡화, 컴퓨터, 패브릭 등 생활에서 사용하는 온갖 물건들을 다 고쳐볼 수 있다. 고치기를 좋아하고 방법을 알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이 집에 있는 자신의 공구와 장비를 가져와 펼친다. 혼자 쓰는 장비들을 사람들과 잠시 공유하는 것이다. 기타 소모성 재료는 주최 측에서 구비해놓는다. 고장 난 물건을 가진 주민들은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친구와 함께 물건을 고치러 방문한다.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으며 물건을 고친다. 고칠 물건이 없더라도 구경하러 온다. 커피를 한잔 하면서 리페어 카페에서 만난 이웃들과 근황을 이야기한다. 공구와 장비는 자원봉사자가 자신의 집에 있는 것들을 가져와 공유하였고, 공간을 무료로 대관해주는 커뮤니티센터를 이용했다. 돈이 크게 들지 않은 행사였다. 이 첫 번째 행사는 크게 성공하였고, 이내 네덜란드나 유럽의 다른 도시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1년 비영리단체 '리페어 카페 재단'을 설립했다. 참여자들의 기부와 기업 후원 등을 통해 운영비용을 마련하고, 전 세계에 리페어 카페를 알리고 퍼뜨리는 일을 하고 있다.


리페어 카페 재단의 홈페이지에는 전 세계 리페어 카페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세계지도가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없었다. 유럽이나 북미에 가장 많긴 했지만, 가까운 일본이나 홍콩에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매체에 리페어 카페가 소개된 적은 있지만, 개최되진 않았었나 보다.


우리나라에도 있다면,
가보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만약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리페어 카페가 정기적으로 열린다면, 내 잉여로운 주말을 좀 색다르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굳이 장비와 공구를 구비해놓지 않아도, 가서 잠깐 사용할 수 있을 것이고, 누군가 옆에서 도와준다면 나도 고치고 만드는 작업을 할 수 있을 텐데. 그리고 또 한 가지, 내 방 외에 내가 머무를 곳,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주말에 머무를 수 있는 곳이 하나 더 생기니 좋을 것 같았다. 누군가 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take 3 _  태평양 한가운데 쓰레기섬


여느 때처럼 페이스북 스크롤을 내리다가 어떤 영상을 보고 멈췄다. 태평양 한가운데 엄청난 쓰레기섬이 떠다니고 있다고. 그리고 얼마 전 태풍으로 필리핀 프리덤 섬 해안가에 그 쓰레기가 쓸려오면서 쓰레기섬이 되어버렸다고 한다.(기사) 끔찍했다. 전 세계인들이 아무 생각 없이 버린 쓰레기들은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만 같았다.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즈음 우리나라에서도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는 얘기가 많았고, 거의 모든 카페에서는 테이크아웃일 경우에만 플라스틱 컵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 BBC 영상과 플라스틱 줄이자는 움직임이 서서히 일어나는 것을 보고, 얼마 전 알게 된 리페어 카페가 떠올랐다. 태평양에 떠있는 쓰레기섬이 더 커지지 않게 하려면, 결국 우리 각자가 쓰레기를 더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쉽게 버리고 쉽게 사는 가성비만 따지는 문화에서, 고쳐서 오래 쓰는 문화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노력과 변화가 필요하다. 법이나 규제를 통한 노력도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 개인들의 삶의 방식이 변화해야 한다. 리페어 카페가 그런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을까?


다른 누군가가 열어주길 기다리지 말고, 내가 한번 열어볼까? ㅇㅅㅇ





-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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