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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선영 Nov 13. 2018

난생처음 지원사업에 신청해보다

서울시 청년허브는 청년들의 '실험'을 지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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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한번 해보자 vs 아무도 안 올 거 같아  


이전 상황들을 거쳐, 나와 고치기를 좋아한다는 친구(A라 하겠다)는 리페어 카페에 대해 얘기하던 중 "우리가 열어보자"라는 말까지 하게 되었다. 그런데 "과연 누가 오겠어, 아무도 안 올 거 같아"라는 말이 뒤따랐고, 그때부터 해보자, 하지 말자가 무한 반복되었다. 어쩌지?




"우리가 열어보자"

라는 말을 할 때 나는, 생각보다 사람들은 빨리 변하고 있고, 요즘 환경에 관심도 많으니 판을 깔아주면 호기심을 갖고 참여할 것 같았다. A는 고치기를 즐기는 사람으로서, 리페어 카페를 통해 사람들에게 직접 고치는 재미를 알리고 싶어 했다. 그리고 본인 같은 메이커들은 고치는 것 자체를 재미있어하기 때문에, 자원봉사자로 올 사람들도 분명 있을 거라고 하였다. 그래, 이 세상에는 나 같은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니, A처럼 '직접 고치는 걸 관심 있어하는 사람, 누군가 고치는 걸 도와줄 사람'도 있긴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주변 지인들에게 리페어 카페에 대해 얘기를 해보면 하나같이 너무 재밌겠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아무도 안 올 거 같아"

라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A 외에는 고치기를 좋아하거나, 고치기를 시도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일단 부끄럽지만 나부터 물건을 직접 고쳐본 적이 없다. 얼마 전 밥솥이 고장 나자, 엄마는 as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며 바로 새 밥솥을 구입하셨다. 향초 만들기나 뜨개질을 가끔 하는 친구가 있긴 하지만, 생활가전이나 옷 등을 직접 고치는 친구는 본 적이 없다. as센터에 맡기는 것이 가장 능동적 형태의 '오래 쓰기' 행동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누가 고쳐주는 것도 아니고 직접 고치러 올 사람이 있기나 할까?




아직 없는 직업 실험을 지원하는 청년 업(業) 사업


해보자 라고 말을 꺼내놓고서도 끊임없이 할지 말지를 고민하던 중, 서울시 청년허브 페이스북에서 '실험'이라는 단어를 보게 되었다. 청년 업(業)이라는 사업의 공고였다.  


'이미 있지만, 아직 없는' 직업들을 탐색하고 시도하는 '직업 실험'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합니다.
경제적 자립을 위한 일, 사회 구성원으로서 가치를 생각하는 일, 가업을 물려받는 일, 좋아서 하는 일 등등 청년 스스로 일을 만들고 새로운 직업군을 만들어나가는 시도와 용기를 지원합니다.
가업승계, 덕업 일치, 부업 개발 세 개 분야의 직업 실험 이야기를 지원합니다.
(*청년 업 사업 공고문 발췌)


"이미 있지만, 아직 없는, 직업 실험, 사회 구성원으로서 가치를 생각하는 일, 부업 개발"

딱 리페어 카페에 들어맞는 키워드 들이었다!

리페어 카페는 해외에는 이미 있지만, 한국에는 아직 없는 일이다.

리페어 카페가 비영리단체나 사회적 기업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직업 실험이다.

리페어 카페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환경적 가치를 생각하는 일이다.

나와 A는 모두 본업이 있으니, 부업 개발에 해당한다.


정부의 창업지원사업을 기획/운영해본 경험이 있었던 나는 '실험'을 지원하는 이 사업이 굉장히 반가웠고, 이런 사업이 진행되는 것이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했다. 모두가 원하고 바라는 그 '혁신적인 비즈니스'는 바로 실험이 가능한 상황에서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는, 아니 실패 가능성이 더 높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도전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청년 업(業) 사업은 참 반가웠다.


나는 바로 이 공고문을 A에게 공유했다. 리페어 카페를 할지 말지 고민만 하고 있지 말고, 마감일이 정해져 있는 지원사업을 활용해보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그래, 한번 해보자


사실 우리 둘다 각자 일이 있다보니, 개인적인 활동으로 하다보면 자칫 느슨해질 수 있고, 결국 실행은 안되고 “아름다운 아이디어 였지”로 끝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이런 기관의 지원을 받으면 긴장감도 생기고 어찌됐든 결과물은 나오게 될테니, 시도해보기로 하였다.


우리는 일주일 만에 사업계획서를 작성하여 신청하였다. 사업계획서 양식은 특별히 없었다. 우리는 자유롭게 우리의 생각을 적었고, 해외 리페어 카페도 소개하였다. 운이 좋게도 1차 서류에 합격하였고, 2차 면접심사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어렵게 어렵게 합격하다  


2차 면접은 1차 합격자 여러 팀과 심사위원단, 사업담당자가 함께 그룹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러고 보니 언제나 심사회를 개최하는 주최 측의 입장에서만 참여해봤었지, 심사를 받는 입장으로 참여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긴장이 되면서도 굉장히 흥미롭기도 하였다. 그동안 몰랐던 또 다른 경험을 하는 기분이 좋았다.


인터뷰가 시작되면서 그 좋은 기분은 이내 당황으로 바뀌었다. 나와 A도 끊임없이 고민하던 그 지점에서 심사위원분들의 질문이 이어졌고, 나의 답변이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이다. 요약하자면 리페어 카페의 취지는 좋으나, 가성비를 중요시 생각하는 한국 실정 상 어렵고, 지속가능성, 수익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나와 A도 고민했던 지점이다. 나는 청년 업 사업이 '실험'을 지원하는 사업인 만큼, 적은 가능성이라도 고려해달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면접장을 나오면서, 분명히 탈락이라고 생각했다. 심사위원 중 단 한 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부적합하다는 의견을 내셨기 때문이다. 사실, 나와 A도 리페어 카페가 선정될 것이라고 완전히 확신하지는 않았다. 운영해보고자 하는 우리조차 "한국에선 아직이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완전히 떨치지 못했기 때문에 심사위원들의 의견에 수긍이 가긴 했다. 그럼에도 누구보다 열려있고 적은 가능성이라도 찾아볼 것 같았던 사람들로부터 한국은 아직이라는 말을 들으니 속상하긴 했다.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리페어 카페에 대해 잊고 있던 며칠 뒤, 우리는 합격자 명단에 올라가 있었다. 오리엔테이션에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리페어 카페 서울은 머릿속에서만 떠다니던 아이디어에서, 실제 손에 잡히는 현실로 나왔다.


"이제 정말 하는구나.
아니, 해야 하는구나"




-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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