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먼 길 끝, 여성 인권

인문폴리오 No.06

by 소소

나쁜 페미니스트

by. 록산 게이


최근 가임기 여성지 도로 대한민국의 여성들의 분노를 자아낸 사건이 있었다. 행정자치부가 출산율 저하에 대한 경각심과 임신, 출산과 관련된 정보를 효율적으로 배포하기 위해 만들어냈다는데 그들의 의도가 참으로 얄팍하고 한심하다. 단순히 비율만을 인포그래픽으로 나타내도 어이가 없는데 1의 자리 명 수까지 계산하여 만들어낸 이 지도로부터 우리는 대한민국의 여성 인권이 얼마나 바닥에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출산율 저하(출산율이란 용어도 출생률이란 말로 바꾸어야 한다는데 동의한다.)를 여성만의 책임으로 보는 인식이 담겨 있으며, 여성을 출산하는 기계 그 이상으로 취급하지 않는 저급한 시각도 내포되어 있다. 실제 행정자치부 남자 직원들 내부에서 여성을 포켓몬에 비유하며 비하적 용어(XX몬고)를 사용하여 표현한 캡처본이 인터넷상을 떠돌고 있으니 이 땅의 여성의 1인으로서 분노할 수밖에...


나쁜 페미니스트를 보면서 선진국이라고 하는 미국 내에서도 여성인권 수준이 얼마나 바닥에 있는가를 느낄 수 있었다. 보는 내내 화를 꾹꾹 눌러내며 봐야만 했는데, 아마도 여기에 열거된 예시들이 한국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1. 여성을 비하적으로 다룬 노래 가사들과 강간 농담

영어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 내가 듣던 그 유명한 노래들의 노랫말이 여성 비하적인 표현인 줄 몰랐던 곡들도 꽤나 있었다. 노래 가사와 관련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들먹거리며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거 아니냐,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오버다, 라는 등의 인식이 많다. 독일에서 노래 가사에 유태인 학살이나 나치를 들먹거리며 표현했다면 과연 그렇게 받아들였을까? 표현의 자유를 언급하기 이전에 인권이라는 가장 소중한 가치에 대한 고려는 왜 없는 것일까. 우리나라에서도 래퍼 송민호가 "산부인과처럼 다리를 벌려"라는 가사로 여성들의 공분을 산 적이 있다. 사과를 하면서 넘어가긴 했지만, 이런 가사를 쓴다는 것 자체가 여성 인권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 같은 가벼운 문제의식은 친구들끼리의 대화인데 어떠냐며 단톡 방에서 여성 비하 표현이나 성희롱적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적어 내려 가는 대학생들에 대한 기사에서도 알 수 있다. 문제를 문제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 자체가 문제이다. '가볍게, 일상적인, 농담 삼아하는 말인데 뭐 어때'라는 의식들로 인해 인권신장이 도태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책에서도 언급되듯이 강간 농담을 하는 코미디언 앞에서 분노한 사람이 단 한 명밖에 없는 것에 저자는 분노했다. 우리는 남들의 시선이 따갑더라도 분노할 때에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따가운 남들의 시선이 내가 아닌 그런 말들을 뿜어내는 사람들로 향하게 될 것이다.

2. 성폭행 피해자에 대한 따가운 화살

우리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성범죄 관련하여 언론의 태도가 문제가 많았다. 미국의 어떤 도시에서 한 여학생이 남학생들로부터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그러나 언론의 논조가 가관이다. 피해자에 대한 걱정과 가해자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가해자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다분한 태도로 일관한다. 심지어 뉴욕타임스라는 언론사에서조차 말이다. 밀양 성폭행 사건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영화 "한공주"를 보았을 때 느꼈다. 이들은 인간의 탈을 쓴 악마가 분명하다. 모든 비난의 화살을 피해자에게로 돌리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가해자를 보니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왔다. 그런데 이런 일이 비단 국내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에 놀라웠다.

3. 여성에 대한 시각 : Sexual & 혐오

https://www.youtube.com/watch?v=k6hz7WoO6Bo

여성을 단순히 성적 대상으로 보는 시각은 정말 오래되었다. 할리우드도 예외는 아니다. 때문에 할리우드의 많은 여배우들이 여권 신장을 위해 노력하며 성적 대상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도 매우 비판적이다. 위의 영상의 30초 즈음에 나오는 케이트 블란쳇의 태도는 주목할 만하다. 여배우들에 대한 카메라 워크가 늘 아래에서 위로 훑듯이 지나가는 것에 대해 케이트 블란쳇은 당당하게 불만을 표한다. "남자 배우에게도 그렇게 하냐(Do you do that to the guys?)"고 물으면서 말이다. 케이트 블란쳇은 기자회견에서 여배우들에게 육아와 배우 일을 병행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질문받는 것에서도 불쾌함을 드러낸다. 남자 배우들에게는 하지 않는 질문이라는 것이다. 육야=여성의 일로 프레이밍 하는 사회 인식을 꼬집어 낸다. 이 책에서도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여성들은 분명 이전보다 능력 발휘를 하고 있다. 그러나 전 국방부 장관이자 2016년 가장 강력한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은 아직도 패션에 관한 질문을 받고 있다. CNN 방송국은 여성 유권자들은 투표할 때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다는 기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놓고 있다. (p.130)

성적 측면뿐만 아니라, 이 사회는 여성을 혐오의 대상으로 규정짓기도 한다. 최근 강남의 묻지 마 살인 사건의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점은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 인식을 단적으로 드러내어준다.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우리는 여성 혐오에 대한 시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나쁜 페미니스트에서는 의외의 포인트를 제시한다. 바로 문학 작품에서 여성이 주인공인 경우 독자들의 관점이다. 똑같이 불쾌감을 주는 캐릭터라도 성별이 여성인 경우에는 비난 조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남성이 주인공인 작품은 캐릭터의 호감, 비호감의 문제를 떠나서 외부적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독자들의 태도와 상반적이라는 것이다.

4. 페미니스트 = 비호감

남성들 앞에서 페미니스트임을 당당하게 밝히기란 어려운 문제다. 미국에서는 여성 CEO, 일부 여배우들이 자신들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페미니스트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페미니스트=메갈리아=남성 혐오주의자로 인식된다. 이는 굉장히 잘못된 시선이라는 것이 저자의 이야기다. 나도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페미니스트=양성 평등주의자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 때문에 일부 할리우드 남자 배우들(조셉 고든 레빗, 다니엘 레드클리프 등)은 자신들도 페미니스트라고 말한다. 페미니스트란 거창하거나 공격적인 것이 아니다. 어쩌면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호주 작가 Su 의 말 마따나 페미니스트 들은 "개똥 같은 취급을 받고 싶어 하지 않는 여성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양성평등은 아직 머나먼 얘기인 듯싶을 때가 많다.

혹자는 말한다. 이 시대는 양성평등을 수준이 굉장히 높은 시대라고 말이다. 그러나 작가는 말한다.

여성들의 삶이 숫자나 통계상으로는 개선되었다는 로진의 의견에는 잘못된 점이 없으나 이 정도면 충분히 나아졌다는 주장은 잘못되었다. '더' 나아진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겨우 이 정도에 안주해 버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가부장제가 아직 멀쩡하다 못해 팔팔하게 살아 있다는 증거는 셀 수 없이 많다.(p. 133)


이 책은 성평등뿐만 아니라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 인종차별 등을 다루고 있다. 주제가 주제이니 만큼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다. 그러나 이 부분 또한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굉장히 많다. 내가 이성애자이고 내가 인종차별을 당할 만한 상황에 놓여보지 않았기에 몰랐던 많은 부분을 알게 되었다.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였던 '헬프', '노예 12년', '장고-분노의 추적자' 등이 얼마나 인종차별적이며 여성 폄하적인지에 대해 이 책을 읽고 깨달았던 것이다. 내가 그 사람이 되어보기 전엔 알 수 없다는 말에 또 한 번 공감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2016년을 마무리하며 이 책과 함께, 가임기 여성지도 논란 덕분에 양성평등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 볼 수 있게 되었다. 논쟁 아닌 논쟁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많은 공부를 하기도 하고 어떤 시각과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정립할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침묵하지 않고 분노할 줄 아는 사람이 조금은 늘어가고, 피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논쟁해 나간다면 한 발자국 우리는 또 앞으로 나아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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