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폴리오 No.5
제목부터 강하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라니 말이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는 그냥, 살인자의 엄마인가?라고 스쳐 지나갔던 것 같다. 그러나 어떤 사건인지 알고 난 뒤 꽤나 충격적이었다. 그 사건의 가해자의 엄마가 대체, 무슨 내용의 글을 어떻게 펼쳐나갈지 궁금하기도 했다.
책은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다. 1부는 사건의 발생부터 그 사건을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을 담아둔다. 이해를 향해라는 부제가 달린 2부는 딜런이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사건 직전의 딜런의 (그녀가 미처 캐치하지 못했던, 그러나 돌이켜보면) 미묘한 행동 변화와 실제 딜런이 어떤 심정을 지니고 있었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처음 그 사건 ; 콜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 (1999년 미국) 마주했을 때, 자신의 아들이 피해자 일 것으로 여기고 죽지 않기를 소망했다고 한다. 그녀의 머릿속에 자신의 아들이 가해자일 것은 경우의 수에 들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아들이 가해자라는 것을 알고 난 뒤에
이 모든 일이 사실이고, 우리 아이가 살아남아서 재판을 받고 사형 판결을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두 번 아이를 잃을 수는 없는 일이었어요. 그전까지 해본 적이 없는 간곡한 기도를 했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해달라고요. 그러면 적어도 애가 죽고 싶었다는 것을 알 테고, 경찰의 총에 맞고 죽었다면 결코 답을 알 수 없을 의문들이 남지 않을 테니까요.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나중에는 그렇게 기도한 것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릅니다. 내가 내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를 바랐고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났다는 것에 대해서요.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16p, 수클리볼드, 반비)
부모 된 자로 자식이 자살하기를 바랄 정도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정도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가해자의 부모에게 감정이입을 하여 읽는 순간이 많았다. 그 전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편에 조금이라도 기울었다는 느낌에 약간의 자책감도 들었다. 가해자의 편에서 서서 생각하기 힘들어하는 나는 그냥 평범한 시민이다. 불의를 보면 함께 화를 내고 약자의 편에 서고 싶어 하는 한다. 이런 평범한 사람들은 대게 이렇게 생각하게 마련일 것이다.
"저런 학살자가 태어난 집안은 분명 문제가 있을 거야."
그러나 내가 책에서 읽은 바에 따르면, 이 집안은 너무나도 평범한 집안이다. 오히려 화목한 집안에 속한다는 게 더 맞을 것이다. 책을 쓴 저자 수클리볼드는 대학에서 장애인을 돕는 일을 했던 사람이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은 부모였고, 아들에게 늘 올바른 윤리의식을 강조했던 유대교를 믿는 건실한 시민이었다. 자식의 교육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고, 어찌 생각하면 헬리콥터 맘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이에게 관여한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이 이런 평범한 가정을 갖고 있는 자이기에 자신의 아들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을 것 이란 뉘앙스는 전혀 전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부분을 이야기할 때마다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님을 되짚는다. 자신의 의도가 왜곡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그녀의 가정의 평범함을 강조하여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극히 평범한 집안에서 자란 딜런이 살인을 하게 된 배경은, 바로 자살 심리 때문이다. 그는 심각한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 (저자는 그렇다고 딜런이 살인을 한 것에 대해 면죄받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모든 우울증 환자가 살인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학살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 것을 알지 못했다. 어떻게 부모라는 자가 아이가 항우울제를 복용할 정도로 극심한 우울에 시달리고 있는데 모를 수 있냐고 다들 따져 물을 것이다. 그녀 또한 그녀가 자신의 아이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딜런은 그녀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그녀를 잘 속였다. 아이들이 부모를 얼마나 잘 속이는지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도 몇 가지 예시가 나온다.
첫째, 5-6살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다. 어린이들에게 어른들을 속일 수 있을 만한 상황을 제시한다. 이를 테면 방안에 있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말라고 한 다음에 자리를 비우는 것이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어른들이 와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는지 아닌지 질문하면 많은 어린이들이 거짓말을 한다. 이때 얼마나 많은 어른이 거짓인지 아닌지 맞추었을까? 대학생은 52%, 경찰은 48% 였다. 이는 동전 던지기보다 못한 확률이다. 이 실험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어른들을 잘 속인 다는 것이다.
둘째, 콜럼바인 사건 이후 딜런과 에릭(또 다른 총기난사 사건 가해자)의 집을 경찰들이 수색했다. 그러나 경찰들이 끝내 찾아내지 못한 무기들이 있었다는 것을 딜런과 에릭이 남긴 비디오를 보고 나서야 알게 된다. 딜런과 에릭은 폭력적인 언어를 남발하는 셀프 비디오를 남겨놨었는데, 경찰들은 그 비디오에서 그들이 어디에 무기를 숨겨뒀는지를 듣고 나서야 나머지 무기들을 찾아냈다. 이후 경찰들은 집으로 가서 자신들의 자녀들의 방을 뒤져봤다는 후문이다. 아마 상상도 못 할 공간에다 그것들을 숨겨놓았으니 그들이 경악을 하고 자녀들의 방을 뒤져본 것이 아닐까. 또 딜런과 에릭이 콜럼바인 총격사건 이전에 친 사고 때문에 받았던 상담치료 때도 모범학생으로 상담치료 기간을 단축할 것을 치료사가 제의한다. 그 두 아이가 자신들의 심리 상태를 치료사에게까지 잘 속여냈던 것이다. 이후 치료사는 자신의 책임에 대해 크게 통감하며 슬퍼했다고 한다.
셋째, 비단 책에 나오지 않더라도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 아니 그 이전에도 우리는 부모님을 쉽게 속일 수 있다.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갖는지 부모님이 모두 다 알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들 자기만의 고민과 공간과 세계를 구축 해나는 것이 청소년기이다.
자신의 우울증을 잘 속여낸 딜런은 왜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 것일까? 그 동력에는 에릭이 있었다.(물론 에릭의 탓은 아니다. 저자도 언급하듯이 에릭이 이 일을 벌이자고 제시한 주변 친구들은 딜런 외에도 다수가 있었다. 그러나 딜런만이 에릭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에릭은 소위 말하는 공격적인 성향이 강한 아이 었다. 에릭과 딜런이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이 학살이 전개될 수 있었다. 책에서 인용하길, 에릭은 살인을 하러 학교에 갔고 자신이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것이고, 딜런은 자살을 하러 학교에 갔고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이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딜런의 케이스를 두고 살인-자살이라고 칭한다. 저자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이것이다. 에릭 때문에 딜런이 살인을 벌였다거나, 평범한 가정임을 호소한 다 거나 가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도 우울증에 걸릴 수 있고 그 때문에 자살 충동을 갖게 될 수 있고 그것이 살인-자살로 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만약 그녀가 딜런의 우울증을 알아채기만 했더라면 이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재차 강조하는 점은 자살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2부에서는 딜런의 자살 충동 심리가 콜럼바인 사건 이전에 발현되었던 여러 가지 사례들이 제시되어있다. 물론 개인적인 메모 같은 것들은 부모는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아주 미묘한 징후들을 그녀는 그 사건 이후에 떠올려낸다. 그 징후들은 정말 미묘해서, 질풍노도의 시기 누구나 할 법한 행동인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너무나도 평범한 이런 징후들 조차 의심해야 한다고 한다. 내 아이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비극을 불러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실제 자살한 자녀들의 부모모임에 갔던 그녀는 그곳에 있는 많은 부모들이 '내 아이는 아닐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을 알았다.
내 아이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가장 위험한 생각이라는 것이 저자의 전언이다. 일선 학교에서 일하시는 많은 선생님들의 문제학생의 부모로부터 듣는 가장 많이 듣는 말도 바로 저 말이 아닐까 싶다. "우리 아이는 그런 아이 아니에요."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이 모르는 부분이 있을 것이란 것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물론 이 책에서 말하는 모든 것들은 일이 벌어진 뒤에 부모 된 입장에서 던지는 메시지이다. 책을 읽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아이의 방을 매번 구석구석 뒤지고, 아이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고,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꼬치꼬치 캐물어야 하는 것인가. 이러한 것들이 옳지 못하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아직 부모가 되어보지 못한 짧은 나의 생각으로는 가장 필요한 것은 진솔한 대화와 아이에 대해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딜런의 부모도 딜런과 많은 대화를 나눈 편이었다. 그러나 "내 아이는 괜찮을 것이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서 어떤 의심도 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 생각에서 벗어난다면 미묘한 징후에서 아이의 어려움이나 문제점을 파악하기 조금은 쉬울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결론을 내기란 이 글을 쓰면서도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이 정도의 메시지만 얻은 것만으로도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