녁에서 만난 사람들 : 공적인 사람 M과 함께했습니다.
살다 보니까 별 일이 다 있다. 사터뷰를 기획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해 보리라는 결심은 있었지만 그 결심이 지금 일하는 곳의 대표님까지 미칠 줄은 몰랐지. 덥석 혹시 인터뷰하실래요? 하는 질문에 대표님-인터뷰에서는 M이라는 가명으로 쓸 예정-은 좋죠! 하고 대답해주셨다. 덥석 결정된 인터뷰가 실제로 성사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한 이주 정도?
우리의 첫 만남은 당연하게도 면접. 내가 생전 입지도 않던 면접용 정장 세트를 입고 십 분 정도 일찍 도착해 가게 앞에서 서성이다가 마주친 것이 처음이었다. 나는 면접을 할 때 한껏 긴장한 상태였기에 M과 무슨 대화를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유일하게 선명한 기억은 장장 4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다가 M이 사뭇 진지한 얼굴로 '그럼 같이 일하는 걸로 할까요?'하고 제안했던 순간이다. 당황스러웠지만 진지한 태도와 나긋한 목소리에 '그럴까요?'하고 대답했던 것 같다.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에 M은 자신이 을지로에서 좋아하는 공간으로 나를 안내했다. M은 가는 내내 을지로가 이런 곳이라고 소개해줄 수 있어 기쁘다고 이야기했다. 기쁜 기색을 감추지 않은 채 휘적휘적 걸어 안내했다. 가는 동안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M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약간 외골수적인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이들도 보통 그렇겠지만. 특히 M은 자신이 있는 을지로라는 공간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같았다.
도착한 카페는 '백두강산'이라는 을지로의 작은 공간이었다. 원래는 다른 곳을 가고 싶었는데요. 하고 M은 한참 백두강산이라는 공간이 가진 특수성과 '을지로 다운'면에 대해 설명했다. 잠깐을 보고 들어도 알 수 있다. 그가 이 공간과 을지로를 각 매장의 주인들보다 더 사랑하고 있을 것이라는 걸. 애정이 가득한 그의 표현과 말을 듣고 있으면 나도 이 공간을 좀 더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안녕하세요. 일단 사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M 안녕하세요. M입니다.
일단 사터뷰를 읽으시는 분들을 위해서, 뭐 하시는 분인지(웃음) 제가 살다 보니까 대표님한테 자기소개를 다 시키는 날이 오네요.
M 아, 네(웃음) M입니다. 을지로에서 '녁'이라는 공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이 대목에서 우리는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 이건 제가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건데요. 혹시 '녁'이라는 공간을 운영하시기로 결심한 사건 같은 게 있을까요?
M 사건... 보다는, 원래 제 걸 하고 싶었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생각한 거였지만 어떤 일을 진행하면서도 좀 더 관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그랬어요. 회사가 나쁘다기보단 회사에서도 '내 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하게 됐습니다. 꾸준히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뭔가 특별한 사건이나 계기가 있다기보단. 이런 작은 욕심과 생각들이 쌓이고 쌓이다가, 아 내 일을 시작하려면 시점은 서른 살을 넘지 않으면 좋겠다. 생각을 했고 어느 순간 어? 지금 하면 재밌겠는데(웃음) 하는 생각에 시작하게 됐습니다. -아 꽤 즉흥적이셨네요.- 즉흥이죠. P의 즉흥.
엠비티아이, 맹신하시나요?
M 맹신까지는 아니고 파트타이머 분들이 오시면 항상 물어보기도 하고, 요새 트렌드니까요. 그리고 종종 P라서 제가 즉흥적이다! 이런 말들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렇군요. 그럼 제 첫인상은 어떠셨나요?(첫인상은 사터뷰 고정 질문은 아닌데, 왜인지 고정이 되었다.)
M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면접 내내 보인 눈동자에서 일을 그저 하루 지나가는 '일'로 생각하는 것 보다도 진실되게- 진심으로? 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를 채용하신 결정적 계기는 뭘까요?
M 같이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직감이죠. -P의 충동이었을까요?- 아 이건 충동이나 즉흥은 절대 아닙니다. 사람으로서의 에너지가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공간에 필요한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사람으로 하여금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에너지가 있으시거든요. 그래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자신이 가진 지식수준으로만 말을 전달해서 상대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Y 씨는 그렇지 않은 스타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상대를 편하게 만들어 주고 공감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네, 그럼 가벼운 질문은 여기서 마치고 좀 답한 질문을 드려 볼까요?
M 이게 가벼운 질문이었군요!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M 아 사랑, 사랑은 전부죠. 제 인생에서는 사랑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사랑 때문에 제 공간을 운영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아끼고, 생각하고, 전반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배려하고 생각하는 것.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하고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 애틋해지는, 애틋하게 만드는 무언가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주기만 하지 않고 받기만 하진 않으니까요. 주고받는 과정에서의 애틋함이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꿈은 혹시 뭐라고 생각하세요?
M 제가 어릴 적에는 약간 시대의식? 같은 게 있었습니다. 굉장히 그 생각이 강했어요. 지금은 많이 흐려진 편인데요. 세상에 한줄기 메시지를 남기고 싶고, 의식을 심어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 굉장히 강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지금 제가 생각하는 꿈은 사랑이랑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를 아껴주고 나도 아끼는 사람들과 추억할 수 있는 공통된 기억들을 계속해서 쌓으며 나아가는 것이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이기도 하고요.
이제 2022년인데요, 22년도의 목표는 어떻게 되실까요? 아주 개인적인 목표였으면 좋겠어요.
M 개인적이고 단순한 목표라고 하면 잠적을 한 번 하고 싶어요. -잠적이요?- 잠적이라는 이름의 다큐멘터리를 봤었는데 그게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작년에 한 번 차를 타고 혼자 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굉장히 좋았어요. 한 1박 정도 하고 돌아왔었는데, 이번 연도에는 그 기간을 좀 늘려서 잠적하고 싶어요. 그래서 혹시.. 협조해주실 거죠?-M은 이 말을 하고 당황한 내 표정을 살피더니 파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제가, 제가 좀 더 익숙해지고 나면 약속드릴게요. 지금의 저는 아직 확신할 수가 없네요(웃음) 다음 질문 한 번 드리겠습니다.
제가 봤을 때는 취향이 확고하신 것 같아요. 혹시 인생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들, 확고한 취향이 담긴 것들이 있을까요?
M 취향보다는 좋아하는 걸 얘기하자면 아스날을 좋아합니다(웃음). 일단 취향에 대해 얘기해 보자면, 최근에는 취향을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 많아졌어요. 과거에는 이런 것들이 라이프스타일이나 브랜드로 보이기도 했죠. 최근에는 공간으로서도 취향을 많이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취향의 의미를 확장해 보자면 지금 이 공간-백두강산-도 취향을 양껏 드러낸 곳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좋아하기도 하고. 저희 매장도 마찬가집니다. 제 취향이 가득 들어있어요.
아, 이건 아까 드렸어야 했던 질문인데 혹시 잠적하시게 된다면 해외로 가실까요?
M 아! 아-주 좋은 질문인 것 같아요.-이 부분에서 M은 한번 더 파하핫 하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직 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어디든 좋을 거 같아요.
그렇군요. 다시 취향으로 돌아가서, 저희가 이전에 이야기하다가 고흐를 좋아한다고 얘기하셨던 적이 있는데요. 혹시 고흐를 좋아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M 제가 인생에 가장 큰 슬럼프가 왔던 시기가 있는데, 정말 힘들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정말 힘들었어요. 하던 제작물의 퀄리티도 떨어지고- 그러다 보니 일적으로도 힘들던 시기였어요. 그때 작업실에 있는 눈에 들어오는 책을 읽게 됐는데 그게 고흐와 고흐의 절친인 테오의 편지 내용을 실은 책이었습니다. 고흐의 인생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어서 몰랐는데 그 책을 읽으면서 고흐의 거친 붓 터치와 그림에 담긴 삶에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알게 됐어요. 그림에 삶이 담겨있더라고요. 아무래도 이 책에 담긴 게 편지라서 고흐와 테오의 사적인 대화들이 디테일하고 다양하게 적혀있었는데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갈망과 작품에 대한 애착, 자신의 재능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는 점이 참 흥미로웠습니다. 갈증이 느껴졌어요. 고흐의 삶과 재능, 작품에 대한 갈증이요. 그걸 보고 나니 고흐의 여태까지의 흔한 그림들이 다시 보였습니다. 책에서 위로를 받았던 것 같아요.
인상적인 순간이셨군요.
M 네, 그래서 당시에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회사 면접이 잡힌 주에 파리로 떠났습니다. 물론 면접은 보고요. 당시에 면접을 보면서도 얘기했었어요. 제가 고흐의 작품을 보러 파리로 떠날 생각이라서 합격하게 된다면 혹시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로 연락을 주실 수 있느냐고(웃음) 그리고 떠났습니다.
당시에 회사는 붙으셨는지, 직접 가서 본 고흐의 작품들은 어땠나요?
M 회사는 붙었습니다. 직접 가서 보니까 훨씬 좋았어요. 그냥 한 겹 물감이 발려있는 게 아니라 수없이 많은 터치가 느껴졌습니다. 유화라는 게 계속 칠할수록 그림이 입체적으로 변하잖아요. 그걸 눈앞에서 볼 수 있는 점이 좋았습니다. 디테일이 전부 보였어요. 고흐는 자신의 삶이 힘드니까 컬러를 선명하게 점점 더 선명하게 만들어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색채 이야기를 하다가 떠오른 건데요, 혹시 무채색을 좋아하시나요?
M 오히려 좋아하는 색을 고르라면 비비드 한 계열을 더 좋아하는 편입니다. 다만 저희 매장에서 일할 때는 무채색 톤으로 맞춰 입는 게 편한 것 같아서 더 자주 착용하는 것 같아요.
면접 때 술을 좋아하냐고 물으셨던 게 생각나서요. 혹시 선호하시는 주종이 있으실까요?
M 사실 제가 선호하는 주종은 청하입니다. 청하는 해산물 하고 잘 어울리고, 저는 해산물을 좋아하니까요.
인생에서 추구하시는 재미 같은 게 있을까요?
M 사랑이요. 사랑은 질리지 않아요. 성애적인 의미의 사랑 외에도. 사랑은 질리게 하지 않습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좀 더 사적인 질문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는데 M은 이미 다 알겠다는 듯이 다시 파하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민망한 순간이었다. 너무 사적인 것 같죠? 했지만 이미 무슨 질문 생각하셨는지 다 알아요~ 하고 웃어넘겼다. 끝내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럼 가벼운 질문을 두 가지 정도 하고 마치겠습니다. 혹시 놀이기구 좋아하시나요?
M 싫어하지는 않고 즐겨 타는 편인데, 제가 마지막으로 놀이동산에 갔던 게 고등학교 때여서요. -20년정도 되셨군요(웃음)- 아, 아직 20년은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다시 가면 신밧드의 모험?을 엄청 재밌게 탈 수 있을 것 같아요. 기승전결이 완벽한 놀이기구라고 생각하거든요. 처음에 왁! 하고 떨어졌다가 다시 천천히 잔잔하게 긴장감을 주는 점이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정말 마지막으로 사터뷰는 후련하셨나요?
M 후련.. 보다는 재밌었습니다! 인터뷰를 하던 입장에서 당해 보니 좀 낯설고 즐거웠어요.
우리는 거의 쉬는 시간 한 시간을 내내 백두강산에서 대화를 나눴다. 인터뷰 질문을 몇 개 마치고도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었다. 질문이 너무 적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거듭 너무 허술한 준비여서 죄송하다는 내 말에 M은 아니라며 웃었다. 여하튼 대표님을 이런 알파벳 대명사로 칭할 수 있는 것도 아마 이 사터뷰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너무 사적인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내 말에 M은 연신 고개를 저으며 아닙니다 저야말로 재밌었어요. 하고 대답했다.
같이 돌아오는 길에 내가 사터뷰는 사실 뭘 먹고 마시면서 하느냐도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더니 M은 오늘의 티라미수는 어땠냐고 물었다. 티라미수도 맛있었지만, 사실... 사터뷰는 술이 중요해서요. 하고 이야기하자 M은 또 파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언젠가 영업제한이 풀리고 코로나가 사그라들면 한 번 이 근처에 마시러 갑시다. 하고 이야기했다. 너무 공적인 사람과 사적인 인터뷰를 진행하고 나니 30분 남은 쉬는 시간이 애석하기도 했지만 남은 30분 보다 가치 있는 한 시간을 보낸 것도 사실이기에 꽤 뿌듯했던 것도 같고.
다음번에 또 M과 인터뷰를 한다면 막걸리나 청하가 함께하는 인터뷰일지도 모르겠다.
20220214
공적인 사람들의 사적인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