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아홉

2026년 새해가 되면서

by 디디

2026년이 되면서 스물 아홉이 되었습니다. 그간 몇 살인지 밝히지 않다가 나이에 대해 이야기하려니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스물 아홉이라는 나이가 막연하게 느껴지던 스무 살 초반의 감각이 떠오릅니다. 막연하게 언젠가는 오겠지만, 그때의 내가 뭐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고 생각하곤 했어요.


저는 작년에 오래 만났던 연인과 이별했습니다. 영원이라는 게 아주 멀고 특별한 것임에도 행복을 꿈꾸던 시기가 지나고, 괴로움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던 날들도 이제는 흐려졌습니다. 고요 속에 눈을 뜨던 자취 생활도 접고 이제는 시끌벅적한 온기와 강아지의 응가 신호에 잠을 깨는 새벽이 잦아졌지만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스물 아홉이 된 첫 달은 그리 실감나지는 않습니다. 그냥 매번 그렇듯 해가 바뀐 것이지요. 해가 바뀌고 날이 늘어도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되기는 했습니다. 여전히 저는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해보자고 다짐했던 것들 중에는 이루지 못한 것이 더 많고, 책을 내자는 다짐도 매년 결심만 있을 뿐 실행은 잘 하지 않고요. 누군가는 서른을 목전에 두면 삶이 어렵지 않아진다고 하던데 그도 아닌 것 같습니다. 삶이 이전보다 조용해지기는 했습니다. 이제는 술을 밤새워 먹는 일도 없고, 진탕 취해 친구들에게 취중진담을 하지도 않습니다. 고민상담을 해 놓고 제멋대로 하는 친구를 붙들어 굳이 서운하다 토로하지도 않습니다. 적당히 포기하는 법을 배운 거겠지요.


솔직히 제 삶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20대 초반에 멋모르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진짜 하고싶은 걸 찾을래' 라고 돌아다니던 날의 패기롭던 나는 사라져버린 것 같습니다. 매일 카페 안에 오천 칠백원 짜리 라떼를 시켜두고 눈이 내리는 창 밖을 구경하며 언제까지고 글만 쓰면 좋겠지만 몇 년간의 지난 경험을 돌아보면 그런 꾸준함도 없는 것 같습니다.

작년에는 함께 일하던 누군가가 저에게 "이런 곳에서 도태되면 안 되죠."하고 무례한 쓴소리를 던진 적이 있네요. 스물 여덟, 그러니까 이십 대 후반에 아르바이트로 고용되어 일하고 있는 제게 그 말이 꽤 타격이 컸던 것도 같습니다. 무엇도 책임지고 싶지 않고, 이제는 편하게 일하고 싶다는 마음에 지원해서 들어오게 됐던 거니까 어떻게 보면 그 사람 말이 맞기도 했습니다. 지금 하는 일이 도태된 상태라고 생각하는 건 전혀 아니에요. 그냥 나의 '지금 이 상태'가 삶에서 가장 노력과 집중이 적은 상황이긴 하니까요. 왜냐면 요즘은 마냥 행복하고 나른하고 가끔은 힘들지만 보람차고, 단순한 말과 행동을 반복하며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하하호호 떠드는 것이 마냥 삶의 낙입니다.

그러니까 요즘은 더 많은 게 변하지 않고 오랫동안 이렇게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종종 합니다. 물론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아마 얼마 안 있으면 휴머노이드-GPT모델이 가사 분담을 도와주고, 인간의 삶을 조율하고 있을 지도 모르죠. 그렇게 세상은 빠르게 변하겠지만, 스물 아홉이 되어보니 제 삶은 그리 많이 변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듭니다. 여전히 뭘 해야 좋을지 모르는 마음으로 살아갈 것 같아요. 스무 살 뭘 하면 좋을까? 하고 두근두근 설레이던 마음과는 약간 다르겠지만.


어찌되었든, 스물 아홉이 되었습니다. 2026년에는 더 자주 적으려고 합니다. 부디 다짐으로만 마무리되지 않기를 바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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