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를 합시다

휴무에는 꼭 요리를 합니다.

by 디디

요즘은 좀 특이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버려지거나 사연이 있는 길냥이들을 거두어 보호하는 협회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고양이보다는 강아지인 사람이고, 고양이는 좋지만 그냥.. 그냥 저냥인 느낌입니다. 그냥 동물을 다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지 특히 고양이가 제일 좋은 사람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고양이는 정말 특이하고 사랑스러운 동물이라는 걸 같이 살다시피 하며 깨달았습니다.


아무래도 보호소이다보니, 아픈 사연이 있는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쓰레기가 가득한 애니멀 호더(Animal Hoarder : 자신의 사육 능력을 넘어 지나치게 많은 수의 동물을 키우고 최소한의 보살핌이나 관리도 못하는 인간)의 집에서 구조된 아기들, 들개에게 물려 얼굴 반 이상이 삐뚤어진 채로 구조된 아기, 입양되었다가 파양된 아기들까지.

처음에는 마음이 너무 힘들어 그만두고 싶은 기분이었습니다. 생각보다 아픈 아이들이 많았고 그들을 내가 다 케어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거기다 하필이면 제 반려견인 열 네살의 강아지가 만성 신부전 판정을 받은 시기였으며, 경과가 그리 좋지 않아 계속해서 지켜봐야 했던 때여서 더 그랬고요. 그렇다고 연락 없이 나가지 않거나 잠수를 타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똥 먹은 표정으로 출근해서 울면서 퇴근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생각보다 일은 바쁘고 힘들었고, 청소는 고되었고, 고양이들은 제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답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첫 휴일이 되었을 때, 정말정말 맛있는 식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정말 맛있는 식사. 저는 항상 그래왔어요. 아주 힘든 날이 지나고 나면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배달음식 대신에 천천히 요리해서 나를 위한 완벽하지만 서툰 한 끼를 만드는 걸 좋아했습니다. 뭐가 됐든 만들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만들어 예쁘게 담아내는 일을 했습니다. 그게 오늘 고생한 나를 위한 최대한의 정성과 사랑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KakaoTalk_20250620_010148579.jpg 평범한 어느 초여름의 식탁

엄청나게 특별한 것을 해먹고 싶었다기보다는, 평범하고 조용히 지나가는 식사를 정성스레 준비해서 시간에 쫓기지 않고 아주 천천히 먹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첫 휴무에는 엄마와 장을 보고, 쭈꾸미를 사서 오이 두부 비빔밥을 해 먹었습니다. 오이를 작게 조각내면서 한 주가 너무 힘들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천천히 힘든 기억들도 깍둑깍둑 썰어서 밥그릇에 투두둑 덜어냈어요. 다음으로는 나의 강아지가 아프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덧없는 생각을 하며 두부를 잘랐습니다. 뭉덩뭉덩 잘리는 두부의 감각이 손끝에 저릿하게 전해지니 폭력적이거나 자극적인 느낌이 아닌데도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양념장을 곁들여 먹은 초여름 식탁의 맛은 평볌했습니다. 눈이 휘둥그레 해질 만큼 맛있었던 것도 아니고, 아주 간이 안 맞아 토할 정도도 아니었고요. 정말 평범했습니다. 그냥 그 시간이 좋았어요. 느긋하게 쉬면서 아주 천천히 밥을 꼭꼭 씹어 넘기는 순간이요.


저는 여전히 친한 친구들의 안부를 물을 때 "밥은 먹었어?"라고 물어봅니다. 매사 무디고 느릿한 저마저 아주 힘든 날에는 천천히 밥을 먹으며 기운을 얻으니까요. 전혀 배고프지 않다고 하더라도 나중에라도 꼭 챙겨먹으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때로 나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비슷한 척도로 다같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합니다. 한번에 다같이 우리가 행복해질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하는 거죠. 근데 식사를 챙겨먹고 혼자라도 번거로운 일을 해내는 것이 이 행복으로 가는 첫 번째 단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일단 밥을 먹고 나면 행복해지기는 하니까요. 그러니 부디 쉬는 날에는, 시간이 많고 여유가 있는 날에는 누구든 붙잡고 식사를 하세요. 천천히 아주 오랫동안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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