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여름의 초록을 언제나 기억하는 이들에게

by 디디

여름이라는 단어가 언젠가부터 청춘이라는 말과 대체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초록색의 푸르른, 이마에 송골맺은 땀을 닦지도 않고 뛰놀며 웃음을 터뜨리는, 길게 자란 풀밭 가운데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숨을 고르는. 그런 이미지가 여름이라는 단어에 붙어있는 듯 합니다. 청춘이 진짜 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듯 낭만도 제 뜻 대신 "여름이었다"는 말로 대신하게 된 것 같아요.


저는 여름을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덥기도 하고, 습하기도 하고. 하지만 여름이 찾아올 즈음 보이는 풍경들은 꽤 좋아합니다. 그마저도 버스 안에서 에어컨을 쐬며 마음이 너그러울 순간의 이야기이긴 하지만요. 저는 특히 오랫동안 살아온 이 동네 아파트 가로수 사이로 새어들어오는 저녁의 따듯한 순간을 좋아합니다. 일을 마치고 나면 부러 한 정거장에서 두 정거장정도 먼저 내려 걸어가곤 합니다. 특별히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걷는 게 좋아서요. 당연히 매일 좋은 것은 아니고, 어쩌다가 한 번은 좋아서.

어쩌다 한 번 좋은 날 내려서 걷다보면 다음 날도 습관처럼 내리게 되니 건강에는 좋은 길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조용히 걸을 때는 하루 종일 끼고 있던 에어팟도 귀에서 빼어 놓습니다. 그러고는 웃는 아이들 소리, 조용히 떠드는 행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어제는 뭘 하고 살았던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중얼거리기도 하고, 여전히 공사중인 동네에 하나뿐인 공원 다리를 보며 고민에 잠기기도 합니다. 그렇게 걷다보면 벚나무가 쭉 이어져있는 길에 도착합니다. 그 길 속으로 들어가 걷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면서 매번 올해도 참 예뻤었지, 하는 생각을 하고요.

그리고 좀 더 걸어가면 은행나무가 촘촘히 서 있는 공터가 있습니다. 그 공터에 제가 퇴근해 걸어올 즘이면 항상 웃고 떠들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는 아기들이 있습니다. 네 다섯명 정도 되는 아이들은 하루를 빼놓지 않고 깔깔 웃으며 그곳에서 놀고 있습니다. 날이 조금 풀리기 시작했던 4월 말부터, 지금까지 하루를 빼놓지 않고요.

그 즈음 고개를 들어 은행나무 쪽을 바라보면, 빛이 얼룩덜룩하게 스며 들어옵니다. 겨울이나 봄에는 볼 수 없고, 해가 뜨겁게 소리지르는 여름에만 볼 수 있는 풍경이지요. 얼룩지게 스며오는 빛이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해가 저물어가면서 "나 오늘도 꽤 뜨겁게 타올랐다"하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해 그림자 아래 서서 한참을 바라봅니다. 몇십년을 보았는데도 여전히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게 됩니다.

아, 그리고 여름이면 피어나는 이름 모를 장미들도 좋아합니다. 장미가 장미지 무슨 이름 모를 것이냐, 하실 수는 있지만 그래도 매년 여름만 되면 분홍색부터 노란색까지 화려한 장미가 피니까요. 이 모든 장미가 그냥 장미일 것 같지는 않기도 하고요. 프랑소와 리저드 장미, 이런 이름은 아니어도. 학명이 전부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름이 올 즈음이면 특히 잘 보이는 초록도 좋아합니다. 괜히 식물이라도 하나 키워보고 싶어지는 계절입니다.

이 즈음 되면 다른 사람들의 여름도 궁금해집니다. 누구는 여름이 찐득하고 기분 나쁜 계절이라 이야기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고, 여름이 오는 게 너무 싫어서 기절할 것 같다는 이도 있습니다.

저는 청춘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후로 여름이 좀 좋은 것 같아요. 기대가 됩니다. 특별히 정해진 일정이 없어도, 약속이 없어도. 찜통 같은 더위에 옷을 대충 훌러덩 벗어던지고 터벅터벅 걸어다닐 날들이 좋은 듯 합니다. 왠지 여름에는 제가 아무리 철없는 행동을 해도 "청춘이네"하고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이왕 청춘일 것을, 광화문 갓길에 있는 분수대에 첨벙첨벙 발을 담구고 큰 소리로 깔깔깔 웃으면서 물장구나 치고 싶어요. 뭘 해도 "청춘이구나"하고 넘어가 준다면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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