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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현 Feb 21. 2018

달 아래의 교토산책

하루의 여행을 마무리하는 방법

여행을 떠나서 사람들이 좋다고 말하는 곳을 아무리 둘러 보아도, 기억속에 깊이 남는것은 결국 하루 끝에서 여유롭게 거닐었던 낯선 산책길이었다.


가와라마치에서 버스를 내렸을 땐 어느덧 노을도 저물고 밤이 몰려오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는길에 올려다본 저녁하늘은, 시끌벅적한 번화가가 가진 분위기와 다르게 눈을 감은 달 하나만이 고요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낮과 밤의 경계에서 올려다 본 하늘은 무지개보다도 많은 색을 가지고 있다.

숙소 근처의 니시키 시장에서 저녁을 먹은 후, 벌써 하루를 마무리하고 숙소로 들어가기엔 아쉽다는 생각에 무작정 숙소 앞의 카모강변으로 내려왔다.

높은 빌딩들도 많이 자리잡은 도심의 근처에서 카모강을 따라 늘어선 건물들은 의외로 조신한 모습을 하고 있다. 강가로 스며드는 도시의 은은한 빛을 받으며, 가로등 하나 없는 강가의 산책로에서 오늘도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강을 따라 걷는동안, 빛이 새어나오는 건물의 유리창 하나하나가 별개의 스크린이 되어 각자의 저녁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비추었다. 식탁에 둘러 앉아 이야길 나누며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가족과 창가의 테이블에 마주앉아 웃고있는 연인, 저녁식사를 하며 업무 이야기를 하고있는 듯한 정장차림의 샐러리맨들. 많은 사람들의 서로 다른 일상들을 들여다보는게 영화를 보고 있는 듯 신기하게 느껴져, 걷는 내내 강보다는 사람들의 일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늘 그 시간, 그 자리를 변함없이 지키고 있는 평범한 일상이지만, 이렇게 바라보면 일상 하 모두 영화가 된다.

다리를 두어개 쯤 지나치고서 강변을 벗어나 거리로 올라왔다. 그러자 바로 옆으로 생각보다 이르게 기온거리가 나타났다. '왔던 만큼만 더 가면 내일 가려던 청수사 근처일텐데'. 잠시 멈춰서 고민하다가, 이왕 여기까지 온김에 청수사 거리의 야경을 보고 돌아가자는 생각에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평일에 와도 사람이 미어터지도록 북적인다는 청수사의 주변 거리는,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은 탓인지 오히려 평범한 거리보다도 더욱 한산했다. 주변 어디선가 두런두런 이야기나누는 관광객들의 대화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불 꺼진 상점들 사이로 한적한 거리를 걷고 있으니, 일본가옥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흘림없이 그대로 느껴진다. 이 거리 또한 나름대로 북적북적 시끄러운 하루를 보내고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있을거란 생각이 들어, 조그맣게 틀어뒀던 음악을 끄고 거리의 고요에 귀를 기울였다.

(위)니넨자카와 산넨자카(아래)


다시 카모강변을 따라 되돌아 걸어, 밤 10시쯤이 되어서야 숙소 근처의 거리로 돌아왔다. 하루종일 많이 걸었던 탓에 다리가 저려왔는데, 어쩐지 숙소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다. 조금 더 사람들 사이를 걷고싶은 기분이었다.


첫 해외여행을 시작했던 오늘 아침은, 엄청나게 설레고 두근대는 마음을 갖고서 숙소를 나섰다. 그렇지만 오늘이 조금씩 지나갈수록 설레고 두근대던 마음에는 점차 묘한 우울감이 드리웠다. 한국에서도 숱하게 많은 여행을 혼자 떠났지만, 그동안과는 조금 다른 외로움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아닌 이곳의 사람들은 다른 문화와 다른 언어를 갖고서 살아간다. 그것은 즉, 이곳에서의 나는 완전한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타지에서라면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이방인으로써의 외로움. 하지만 나에게  이런 종류의 외로움을 건네 준것은 어쩌면 일본인보다도 한국인이었다. 내가 완전한 이방인이 되는 타국에서 친구나 가족,연인과 함께 여행을 떠나와  즐겁게 웃고있는 한국인 여행자들을 보고있으면, 나는 '일본인도 일본인이지만, 나는 지금 한국인들에게도 철저하게 이방인이구나'하는 생각에 사로잡혀야 했다. 최근 몇년간 홀로 여행을 다니며 무뎌졌던 외로움이, 이렇게 해외에서 다시 살아난 듯 했다.

 

그렇게 숙소 앞 거리를 한참을 서성이다가, 괜히 친구들에게 평소에는 잘 하지도 않던 전화를 걸었다. 생애 첫 해외에서 내가 만난 새로움을 그저 누군가와 나누고싶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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