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노동르포
운 좋게 한 문화단체의 공모에 당선되어 관내 결혼이주여성 간 문화교류를 위한 행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행사는 성공적이었다. 이주여성들이 관내 여기저기를 구경하며 마을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되었고, 무엇보다 이주여성과 그 가족들이 친해진 덕에 서로 돕고 연대하는 하나의 커뮤니티를 만들게 되었다. 행사의 리더역할을 하던 활동가 덕분이었다. 결혼이주여성의 안정적인 정착을 돕기 위해 지역에 활동하고 계시던 분이었다. 행사가 모두 종료된 후 참여자와의 면담자리에서 그는 아주 조심스레 말했다.
“1년에 한 번 하는 체육행사, 그거 물어보면 다 가기 싫다고 하더라구요. 공무원 선생님들이 이주여성들이 뭘 원하는지 깊게 고민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1년에 한 번 하는 체육행사’가 뭔지 알고 있었다. 시에서 주최하는 다문화가정을 위한 체육대회였고 각 구군의 여성단체를 동원하고 있었다. 여성단체들은 경쟁적으로 다문화가정을 데리고 왔고 그 해에 어느 구에서 몇 명의 다문화가정을 데리고 왔는지가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우리 구 여성단체는 매해 우리 구가 상위권을 차지하는 것에 매우 흡족해 했다. 참여자들이 얼마나 만족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행사였다. 물론 나도 궁금해 했던 적은 없었다. 그러니 활동가의 말을 듣고 그제야 참여자들이 만족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것이었다.
전에 청소년복지에 관한 업무를 잠깐 맡은 적이 있다. 나는 (아무도 관심갖지 않고 그 누구도 신경쓰진 않지만) 매해 두 번 조사하는 ‘차기희망보직조사’에 항상 1순위 희망보직으로 청소년복지 업무를 적었을 만큼 해당 업무에 관심이 많았다. 실제 청소년복지 업무를 맡게 되었을 때에는 상당히 고무되어 있었다. 교육청의 관리 바깥에 있는 학교밖청소년을 위해 이런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당시 우리 구에 있던 청소년수련관과 협업하여 저런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실행에 옮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첫째, 예산이 없었다. 모든 일에는 돈이 필요했다. 하다못해 뭔가를 하려면 홍보를 위해 현수막이라도 하나 붙여야 했고 사람을 초대하면 음료수라도 하나 대접해야했다. 그러나 우리 구는 노인인구가 압도적인 곳이었고 막 ‘힙한 관광지’로 주목받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구청장의 관심은 당연히 노인복지 사업과 관광인프라 확충에 집중되어 있었고 변방의 청소년 복지 업무에까지 예산이 떨어질 여력이 없었다.
둘째, 내가 일하는 걸 아무도 반기지 않았다. 없는 돈을 쥐어짜내서 뭔가를 해보려 하면 팀장과 부서장과 국장과 부구청장과 구청장의 결재를 득해야 했다. 돈도 없는데 굳이?라는 물음이 따라 붙을 것이었고 어찌어찌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한다해도(구청장의 관심은 노인복지와 관광진흥에 집중되어 있었으므로) 누구도 반기지 않을 것이었다. 이리저리 아이디어를 궁리해 사업계획서를 올려봤자 나는 유난스러운 직원으로 낙인찍힐 것이었다.
셋째, 생각보다 해야할 일이 많았다. 돈도 없어서 사업도 하나 못한다면서 무슨 일이 많냐고? 구청장의 애정이 미치지 않아 공무원들이 업무를 해태할까봐, 보건복지부에서는 착실하게 ‘청소년업무 가이드라인’을 만들었고 매해 성적을 매기고 있었다. 그 평가 기준이란 이런 식이었다.
- 무슨무슨위원회를 1년에 네 번 이상 개최하였는가? (4번 이상 개최 5점, 4번 미만 개최 3점, 미개최 0점)
덕분에 무슨무슨 위원회를 분기별로 개최해야 했다. 그 위원회에 참석한 경찰과 학교와 교육청과 관련 전문가들을 모셨지만 나는 그들이 모여야 할 때마다 매번 난처했다. 안건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결국 그 분들을 모실 이유를 만들기 위해 ‘보여 드릴 만한 것’을 짜냈다. 법에 정해진 뻔한 업무처리절차를 프레젠테이션하거나 그 분들이 전혀 궁금해하지 않을 무슨무슨 업무 계획을 설명하는 식이었다.
위원들은 모두 의욕적이었고 진심으로 청소년을 사랑하는 분들이었으므로 모일 때마다 토론의 장이 펼쳐졌다. 그러나 그들이 얘기하는 것의 대부분은 법률을 고치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거나 기초지자체선에서 실행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청소년에게 담배를 판매한 편의점 사장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 정도의 법에 정해진 뻔한 업무들 뿐이었다.
그래서 그 ‘다문화 체육행사’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대강 감이 잡혔다. 아마도 이런 평가표가 있지 않았을까? 참여자 몇 명 이상 행사 몇 점, 몇 점, 몇 점. 평가표의 점수에 맞춰 사업을 진행했을 것이고 그래서 인원을 동원할 단체가 필요했을 것이다. 평가표에는 참여자들의 만족도를 조사하라는 항목이 없었을 것이고 있다 해도 객관적으로 조사될 리 없다.
아마도 그 활동가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테다. 공무원은 왜 이렇게 복지부동이냐고, 왜 작년에 한 걸 그대로 복붙하기만 하냐고. 이에 대해 이렇게 변명하고 싶다.
일단 예산이 지자체장의 관심이 쏠리는 곳으로 갈 수밖에 없게 되어있다. 주민의 의사를 대표하기 위해 투표로 지자체장을 뽑도록 되어있고, 지자체장 한 명의 독단을 방지하기 위해 지방의회가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치 않다. 의회의 다수당에서 지자체장 또한 선출되는 상황에서 지방의원이 지자체장을 경계할 능력과 의지가 충분히 있는지 의문스럽다. 한 사람의 의사에 따라 돈이 흘러갈 수밖에 없는 구조, 분명히 개선되어야 한다. 주민참여예산 등 주민이 직접적으로 지방정치에 참여하고 예산의 흐름을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토양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누구나 공감할 만한 정책에 예산이 흘러간다면, 그리고 예산의 계획과 집행이 지금보다 더 주민에게 개방적으로 운용된다면 상황이 조금 달라지리라 본다. 예산의 집행에 그 효과성 평가까지 뒷받침 된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기 때문에, 지금으로썬 이것이 최선의 방식이므로 매뉴얼과 평가표가 있겠지만 그게 오히려 발목을 잡는다. 지역 저마다의 사정이 다르나 평가표는 그걸 고려하지 않는다. 인구구조와 지리환경과 거주여건이 다른데 일률적인 평가표로 전국 지자체를 줄세우겠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실제 안건이 없는데도 위원회를 개최해야 하는 상황이 이를 방증한다.
평가 자체가 나쁘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그게 너무나도 경직되어 있다는 게 문제다. 이것저것 해보고 싶어도 평가표에 없는 사업이라 반려되는 게 부지기수다. 평가표에 없는 정책이라도 그 정책이 효과적이고 모범적인 것이라면 누구든지 도전해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각 지자체의 사정을 고려하여 조금 더 유연하게 평가하는 방식도 고려해볼 만하다.
지자체에 자율성을 주는 것으로 이 상황이 단번에 변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오히려 자율성을 주는 쪽이 폐해가 더 클지도 모른다. 단지 나는 좀 설명하고 싶었을 뿐이다. 참여자들의 만족도에 관심을 갖지 않는 공무원의 업무태도에 대해. 씹기 좋은 화젯거리가 되는 공무원의 복지부동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