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성은 개나줘라

지자체 노동르포

by 소소진

행정복지센터로 발령난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점심시간이라 직원의 반절 정도는 자리를 비운 평화로운 오후시간. 조용하던 민원창구에서 큰소리가 났다.


"팩스도 하나 못 보내는 게 공무원일고 앉아있어?"


맹세코 나는 과장하지 않았다. 그 분은 정확히 이런 문장을 사용했다. 팩스도 하나 못 보내는 게 공무원이라고, 하는 문장. 아직도 토씨하나 잊히지 않는다.


나는 당시 행정복지센터의 회계 업무를 보고 있는, 민원실 직원들보다 연차가 조금 높은, 말하자면 '고참'이었다. 아직 발령받은 지 얼마 안된 시점이라 내가 일어나서 개입해도 되는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충분히 본인이 해결할 수 있는데 내가 괜스레 간섭했다간 오히려 민원담당 직원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힐 수도 있었다. 그 사이 민원인의 입은 험악해졌다. 어느새 쌍시옷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누군가가 나서지 않으면 멈출 수 없을 것 같았다.


"다시 보내드릴 테니까 앉으세요. 소리 지르지 마세요."


다소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가지 생각이 스쳤다. 팩스를 보내는 것이 우리의 일이었던가? 민원인 전용 팩스를 구비한 곳도 있었지만 우리는 아니었다.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팩스를 민원편의를 위해 제공하고 있는 것이었다. 민원실 직원은 정말 팩스를 보낼 줄 몰랐던 걸까? 그럴 리 없다. 민원실 직원은 팩스를 하루에 한두 건 보내는 게 아니었다. 오늘 오전 동안 팩스를 잘못 보냈다고 찾아온 민원인은 그 분이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수신인의 팩스가 잘못됐을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설사 우리 직원이 잘못 보냈다고 해도 이렇게 모욕적인 말을 들을 일이 아니었다.


민원인은 내 목소리에 잠깐 당황한 듯 보였지만 자리에 앉고서도 다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공무원이 주민한테 이렇게 호통을 쳐도 되나며. 혼잣말 같은 말에 한 마디 더 붙이면 감정싸움밖에 더 될 것 같지 않아 관뒀다. 그 사이 옆에 앉은 다른 주민이 소리쳤다. 거 조용히 좀 합시다. 여기 앉은 사람들이 당신 고함소리 듣고 있어야 됩니까? 민원인이 순식간에 수그러 들었다. 왜 내가 말하면 '호통'이 되고, 다른 주민이 말하면 그게 아닌 게 되는 걸까. 내가 자신의 세금으로 벌어먹고 사는 공무원이어서? 자신보다 어린 여직원이어서?


내가 신규직원일 때의 일이다. 주민등록 담당자는 1년에 한 번씩 주민등록자 전수조사를 하도록 되어있다. 해당 지역에 주민등록 된 사람을 통장님을 통해 전수조사를 한 뒤, 통장님을 통해 확인이 되지 않은 사람은 담당자가 직접 확인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일이었다.


그 해에는 특히 고독사 이슈가 있어서 주민등록 조사를 더 철저하게 해야했다. 통장님이 확인 못한 명단을 받아들고, 나는 일일이 전화를 돌리다 통화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문자를 남겼다. 행정복지센터라고, 이런 일이 있어 연락을 드렸다고, 전화 통화를 해야만 합니다, 라고.


퇴근시간이 지나고도 전화를 다 돌리지 못해 문자를 보냈던 게 6시 10분쯤이었다. 문자를 발송하자마자 전화가 울렸다. 문자 수신인 중 한 명의 전화가 분명해서, 퇴근시간이 지났음에도 얼른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는 젊은 남자가 세상 나른한 목소리로 문자 보내신 분이냐고 물었다. 나는 여기는 OO동 행정복지센터이고, 이러한 일이 있어 문자를 드렸다고 사유를 간략히 설명했다. 그는 대꾸했다. 네, 근데요, 지금 여섯시 지났잖아요? 나의 퇴근을 걱정해주시는 걸까? 아니면 이 시간에 행정복지센터라면서 문자를 보낸 나를 보이스피싱 같은 걸로 오해하신 걸까? 아무 대답도 못하고 어물거리는 사이 그가 다시 말했다.


"제가 낮에 힘들게 일하고 겨우 퇴근했는데요. 퇴근시간이 지난 이 시간까지, 이런 일로 피곤하게 문자를 받아야 하나요?"


그러니까 요지는,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겨우 퇴근했는데 한가로운 저녁 휴식을 방해한 내가 괘씸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대단히 귀찮은 걸 요구한 게 아니었다. 본론은 말하지도 못하고 그저 내가 문자를 보낸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한 번 더 말했다.


"낮에 전화를 드렸으나 통화가 되지 않아 문자를 남겼습니다."


그는 갑자기 내가 본인의 휴식시간을 방해한 것도 모자라 내가 모든 것을 자기탓으로 돌리고 있다며 길길이 날뛰었다. 나의 사과를 요구했다. 나는 도무지 죄송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죄송하다는 말 한 마디면 끝날 것을, 그러지 못했다. 내가 아무 말 하지 않자 그는 문자로 나의 소속과 직급, 이름을 남기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남기지 않으면 내일 내가 일하는 곳으로 찾아오겠다며. 각오하라며. 얼굴 볼 일 없도록 조심하라며.


전화를 끊자마자 오열했다. 터지는 숨을 다 참지 못해 끅끅거리며 목놓아 울었으니, 오열했다는 표현이 딱 들어 맞았다. 서럽고 무서웠다. 쉽게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어느 해에 글쓰기로 상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때 작품을 심사했던 작가가 그랬다. 글에는 그 사람의 성품이 드러나죠. 글쓰는 사람은 이타적이어야 해요. 그래야 글에서 따뜻한 시선들이 느껴지거든요.


이타적이어야 한다고?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나는 아직도 밉다. 팩스가 잘못 발송됐다고 쌍욕을 하던 그 사람, 저녁 여섯시 넘어 문자를 보낸 일로 나를 협박하던 그 사람, 그 사람, 그 사람, 그 사람들. 숱하게 떠오르는 나를 모욕했던 많은 얼굴들. 내가 살려면 그들을 미워할 수밖에 없는데 어찌하겠는가.


이타성이라니, 개나줘버려라.

나는 살 테다. 살기 위해 이기적인 사람이 될 테다.

작가의 이전글당신의 공무원이 복지부동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