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소 Jun 13. 2024

손글씨

어느 순간부터 손글씨를 쓰는 게 너무 어려워졌다. 국민학교 시절에는 경필대회에서 상도 받았는데. 대학을 가고나서부터 손글씨를 쓸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수학 문제풀이야 어쩔 수 없이 손으로 했지만 여타 리포트는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하여 제출했으니. 그러다가 취업하여 컴퓨터만 끼고 살아온 지 20년, 몸으로 배운 것은 잘 잊지 않는다지만 글씨 쓰는 법은 완전히 잊어버렸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리듬이 달라져서 그런 것 같다. 자판으로 칠 때는 모든 모음과 자음이 균일한 시간에 작성된다. 그런데 손으로 글씨를 쓰면 ㄱ, ㅂ, ㄹ, 모두 다른 획수를 가지고 있는 데다 방향 전환까지 해야 해 시간차가 크게 벌어진다. 그러니 평소에 글을 써나가던 익숙한 리듬에 균열이 생긴다. 엇박이 발생하고 지연된다. 마음이 급해져서 복잡한 글씨를 휘갈겨보지만 그래도 머릿속을 쫓아갈 수가 없다. 글씨는 알아볼 수 없을 지경으로 뭉개지고 과도하게 힘을 준 손가락에 쥐가 오른다.


근처 상가에 서예학원이 있길래 이거라도 등록해 볼까 기웃대던 와중, 문득 엉킨 실타래 같은 리듬이 풀렸다. 비결은 한 번에 한 글자에만 집중하는 것이었다. 모든 글자를 일정한 속도로 쓰려하지 말고 한 글자 한 글자를 독립적으로 완성시키는 것.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 개별 글자에 집중하다가도 금세 정신이 흐트러진다. 단어와 문장 단위로 의미를 인지하면서도 글을 쓸 때는 개별 글자만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 마치 왼손과 오른손의 박자가 다른 쇼핑 즉흥환상곡을 연주하듯 묘기를 부려야 한다.

확실한 건 이거 치매 방지에 좋겠다. 열심히 연습해야겠다. 과거에는 인지할 필요도 없이 자연스럽게 하던 행동이 이제는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게 미묘하다. 인간의 뇌는 참 짧은 시간에도 바뀌는구나.


매거진의 이전글 알라딘 중고매장 시디 판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