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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과 OTT

by 소소

한동안 기분이 침체되고 무기력했다. 무기력함은 아직 진행 중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OTT로 일련의 일드를 보기 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재미있다. 재미있고 마음도 따듯해지고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지적 충족도 있고 카메라 감독이 심혈을 기울여 찍었을 화면을 보며 느끼는 심미적 만족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잘 간다. 하루 종일 드라마를 보다 지나간다. 한 주, 한 달이 뭐 했는지 모르게 사라진다. 영상 예술도 예술이고 다양한 삶을 보며 배우는 것도 많지만, 주체적인 활동을 하지 않고 살게 되어버리는 게 문제다. 직장인일 때야 물리적 제약으로 강제로 중단되는데 백수라서 시간이 너무 많으니 해롭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기쁨을 찾지 못해 즐거움마저 외주 주느니 차라리 무료한 채 있는 것이 낫지 않을까

역시,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은 TV와 OTT를 거의 보지 않고 살아왔다는 걸 꼽아야겠다. 퇴근 후나 주말에 맥주 마시며 넷플릭스 보는 것이 힐링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런가 나도 한번 해볼까 싶어 여러 번 시도해 보았지만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소파에 몇 시간 앉아있으니 허리가 아플 뿐이고, 실내 형광등 아래에서 화면만 들여다보는 나 자신이 한심해질 뿐이었다.


그럼에도 재미있고 나름 유익하니 당장 중단할 생각은 없고, 하루 한두 시간 해가 진 저녁에만 보며 점차 줄여야겠다. 일드나 애니메이션을 무척 좋아하긴 하는데 그러면서도 중독되지는 않는 건 타고난 성정 탓인 듯, 무언가를 열렬하게 좋아하지 못해 사람관계도 흐지부지하고 한 분야에서 일류가 되지도 못하지만, 이럴 땐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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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딸기 가격이 비싸서 사 먹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번 겨울은 못 먹고 지나가겠다 싶던 차에 어제 마트 할인매대에서 40% 할인하는 것을 발견했다. 상태를 보아하니 무른 것 없이 멀쩡하다. 8천 원 대라 저렴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40%라는 할인률에 솔깃하여 한 팩 집었다. 옆에 멀쩡해 보이는 귤도 40% 세일이다. 1.4kg에 7천 원대로 근래 보지 못하던 가격대인지라 함께 샀다.


오늘 아침 팬케이크를 굽고 리코타 치즈에 딸기와 귤을 얹어 먹으니 웃음이 났다. 와아 딸기다 딸기, 달고 신선해! 고작 딸기의 상큼한 맛에 이렇게 행복해지다니. 내 얄팍함에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기분이 들뜨고 날씨는 온화하고 미세먼지도 조금 좋아졌기에 오래간만에 멀리 산책을 나섰다. 내친김에 물가시찰 차 재래시장에 들렀는데, 이럴 수가, 딸기가 비록 알이 작기는 해도 5천 원부터 시작이다. 설향은 한 팩에 7천 원이 시세, 귤 5개에 2천 원, 단감 5개 2천 원. 붕어빵 3개 천 원? 어제 심봤다고 좋아하던 내가 조금 허탈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래, 아직은 딸기를 먹을만하구나, 다행이야. 5천 원일 때 종종 사다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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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도 없고 취업은 요원하고 비싸서 과일도 사 먹지 못하는 내 모습에 공감대를 형성했다가 배신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산이 훨씬 적은 사람도 있고 빚을 갚느라 허덕이는 사람도 있을 테니. 빚이라 하면 내 주위에서는 보통 집을 사기 위한 10억, 20억 원대의 대출인데, 어떤 사람들은 몇 천만 원에서 1억 원가량의 대출에도 짓눌려 허덕인다는 것을 알게 되면 기분이 묘하고 씁쓸하다.

마이너스 통장으로 살면서도 새로운 스마트폰을 사고 가족 여행을 가고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는 사람이 있다. 역시 기분이 묘하다. 그들이 잘 못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대단하다고 느낀다. 어떻게든 매일매일을 꾸려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그 능력이 부럽다. 나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며 돌다리도 열 번씩 두들겨보고야 건너는 사람이고, 억척같이 살아내는 능력도 없어서, 금융자산이 적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조금 주눅 들어 산다. 만나자는 사람들은 왜 다들 인 당 몇 만 원씩 하는 식당을 예약하고 만원씩 하는 찻집을 가자는 건지.

한 팩에 2만 원하는 딸기를 사 먹는다고 당장 내게 문제가 될 것은 없지만 월 60만 원으로 책정한 생활비는 고수해야 한다. 집이 낡고 해가 들지 않아 이사를 가고 싶지만, 그로 인해 증가하는 세금과 비용을 확인하고는 마음을 접었다. 고정비를 포함하여 1년에 2천만 원이라는 지출 상한선을 지켜야 한다는 무언의 강박이 있다. 최악의 상황으로 1% 수익률을 가정하면 20억으로도 고작 세후 1,690만 원을 얻기 때문이다. 예금 이자로 0.8%를 받아본 적이 있고 특정 주식이 -90%까지도 하락한 경험이 있으니 있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렇게 아끼기만 하면, 문득 비필수 소비재를 만드는 사람들, 문화예술계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사나 싶기도 하다. 내가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면 내가 좋아하는 작가는 어떻게 돈을 벌까. 창작을 업으로 하는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젊은 사람들이 오히려 돈을 잘 쓰는 것 같아 놀란 적이 있다. 양질의 커피와 음식과 책과 그림과 공연과 디자인 제품에 돈을 턱턱 쓰는 걸 보고 처음에는 어떻게 충당하나 의아했는데, 생각해 보니 누구보다도 사람의 수고가 들어간 제품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필수재를 대하듯 바라보기 때문이겠지. 그러니 이러니 저러니 나는 어디에도 기여하지 못하고 나보다 경제력이 없는 사람들의 지출에 힘입어서 그 문화적 수혜를 누리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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