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의 시를 읽으며

한 여인의 삶, 그리고 결혼에 대한 사유

by 소소

옛사람을 정하여 관련된 책을 조금씩 읽어보니 그 즐거움도 꽤 깊더라. 지지난해에는《열하일기》의 재미에 빠져 박지원 관련책을 몇 권 읽어보니 마치 박지원이 가깝게 아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올해는 시간이 날 때마다

허난설헌에 관한 책을 읽어보려 한다.



조선은 원래 남편이 처가로 오는 형태에서 중국을 본떠 시집살이를 권장하기 시작했는데 허난설헌은 시집살이의 첫 세대라 볼 수 있다.


같은 강릉 땅에서 50여 년 먼저 태어난 신사임당은 친정에서 여생을 보낸 것과 대비된다.

허난설헌은 시집살이를 하며 자신의 기량을 펼치기에는 참으로 좁은 세상이었던 것 같다.


두 남매를 먼저 떠나보내고,

자신도 27세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니 참 아까운 여인이다.


허난설헌이 죽고 난 후 작품 대부분은 불태우고, 누이의 작품을 보관하고 있던 동생 허균이 중국 사신 주지번에게 보여주게 되었다. 그는 허난설헌의 작품에 감탄하고 몇 편을 중국에 가져가 시집을 편찬하여 세상에 퍼지게 되었다.


강릉에서 허난설헌의 생가를 가본 적이 있다.

호수와 멀지 않은 고즈넉한 집에서 결혼 후에도 계속 살며 작품을 썼더라면 그녀의 삶이 좀 덜 슬프고 아련했겠지.


허난설헌의 기록집에 있는 시 몇 편을 읽자니, 안타까움이 절로 묻어난다.




창가에 하늘거리는 아름다운 난,

잎과 줄기 어찌 그리 향기로울까.

가을 서풍 한바탕 스치고나면,

찬 서리에 그만 시들어버리네.

빼어난 그 모습 초췌해져도,

맑은 향기 끝내 그치질 않네.

이것이 내 마음 아프게 하여,

자꾸만 옷깃에 눈물을 적신다오.




곡자


지난해 사랑하는 딸을 잃고,

올해는 사랑하는 아들 잃었소.

서럽고도 서러운 광릉 땅이여,

두 무덤 마주보고 나란히 솟았구려.

백양나무 가지 위 바람 쓸쓸히 불고,

도깨비 불빛만 무덤위에 번뜩인다.

지전을 살라 너희들 혼백 부르고,

무덤앞에 물 부어 제사지내네.

가엾은 남매의 외로운 영혼,

밤마다 서로 어울려 노닐겠구려.

뱃속에는 어린애 들었지만,

어떻게 무사히 기를 수 있을까.

하염없이 황대사를 읊조리다보니,

통곡과 피눈물로 목이 메이네.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 어울렸구나

연꽃 스물일곱 송이 붉게 떨어져

달밤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

스물일곱 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녀는 결혼 이후에 행복은 무엇이었을까. 그녀의 재능을 이미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가르치고 책을 선물하며 공부를 독려했던 친정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자식이라도 건강하게 자라주었다면, 남편이라도 좀 따뜻한 사람이었다면, 뛰어난 한 여인이 꽃을 만개하기도 전에 떠나지는 않았을 텐데...


허난설헌은,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 했어!

결혼이 허난설헌이란 한 여인으로서, 작가로서의 삶을 베어버린 칼날 같다. 시집살이가 아니었다면, 적어도 남편이 부인의 동반자로서 든든하게 버텨주었다면 연꽃이 달밤 서리 위에 차갑게 떨어져 외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혼이 무엇인가를 베어내지 않고,
단단하게 엮어줄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줄 수는 없을까?




남편과 아들과 함께, 결혼기념일 저녁식사를 했다.

마시지도 못하는 와인 두 잔을 모셔놓고 해넘이를 기다리며 사진을 찍는다.


결혼한 지 18년이라니....


결혼은 자유를 어느 정도 포기하고 책임을 받아들이겠노라 선택하는 것이다. 그 책임을 다하려면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많다.


자식이 성인이 되고 나면, 조금은 책임감과 의무감을 내려놓고 마음속에 품은 꿈을 다시 꺼내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부부는 서로에게 격려자로 남는다면, 결혼은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떨어지는 해까지 지켜보며 식사를 마무리했다.


해는 넘어갈 때, 붉은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아쉽기에 더욱 아름다울 수도 있다.

결혼도 삶도 아쉬움마저도 붉게, 적어도 달밤의 서리 위에 차갑게 떨어진 연꽃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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