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선물

by 소소

"당신, 봄도 되었는데 제대로 된 옷 한 벌 사."

4월에 세금환급도 들어오고, 결혼기념일도 있어 그런지 해마다 4월이면 같은 말을 한다.


몇 번은 하도 권해서 날도 따뜻하고 하니 나들이 삼아 파주로 쇼핑을 가기도 했다. 그러나 쇼핑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아웃렛을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이미 지친다. 그렇게 권하고 권해서 산 트렌치코트는 몇 해가 지나도 잘 입고 있기는 하지만.....


내가 즐겨 입는 옷은 흰 티에 청바지다.

날씨에 따라 그 위에 카디건이나 후드 혹은 트렌치코트를 입고, 더 추우면 스웨터에 코트나 잠바를 입는다. 경조사를 제외하면 여름 동안 입는 원피스 정도가 내 옷의 변조다.


남편이 생각하는 제대로 된 옷은 무엇일까?

남편이 권하는 옷들은 예쁘기는 하지만 그 옷들을 입고 갈 곳이 없다. 그리고 남자들은 모른다. 옷 하나를 사면 그 옷에 맞는 구두와 백까지 다 갖춰야 한다는 걸. 그러니까 옷 한 벌로 끝나지 않는다. 어느 정도 비슷한 스타일을 늘 입으면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을 아이템들이지만 거의 차려입고 갈 곳이 없는 나로서는 뭐 어느 날 갑자기 하루 입을 옷에 그렇게 공을 들이고 돈을 쓰고 싶지 않은 거다. 남편이 생각해서 옷을 사라고 하는 마음만으로 충분히 기분은 좋다.


옷을 안 산다고 해서 엄청 절약하며 사는 것은 아니다. 결국 나는 내가 편하게 늘 입을 수 있는 옷을 야금야금 산다. 그리고 옷보다 더 돈을 쓰는 건 책이다. 읽든 안 읽든, 읽고 싶은 책은 끊임없이 사들인다. 남편은 나에게 전생에 출판사에 빚진 게 있는 건 아니냐고 말한다.


사실 옷을 살 때보다 책을 주문해 놓고 기다리는 마음이 더 설렌다. 제목에 꽂혔든, 작가에 꽂혔든 주문을 하고 배달되어 오는 기다림도 좋고, 책을 받고 어서 읽어보고 싶은 설레임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는 마음이다.


가방을 좋아한다든가, 구두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물건을 사서 언박싱하는 마음과 같지 않을까.


책 좀 그만 사라고 할 법도 하지만 그만 사라고 안 하는 것도 고맙다. 적어도 내 취향과 취미를 존중해 주는 것이니까.


남편은 시간이 되면 도서관을 함께 가준다.

도서관이라도 안 가면 책값이 더 들까싶은 마음에 냉큼 따라나서주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4월은 도서관 나들이가 더욱 즐거워지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차가운 날씨는 따뜻한 햇살이 되어 비추어주고, 메마른 가지에는 조금씩 색이 입혀진다.


산수유, 개나리, 목련, 벚꽃, 진달래,민들레, 제비꽃 그리고 이름모르는 앙증맞은 들꽃까지 언제 이렇게 꽃망울을 터뜨렸는지 알록달록 예쁘기만 하다. 연한 초록색이 조금씩 나무에 돋아 집 뒤 메타 쉐콰이어 산책길은 싱그러워진다.


여기 봐! 저기 봐!

둘레둘레 요리조리 구경하며 걷다보면, 어느새 도서관이다.


내가 빌린 무거운 책을 남편은 기꺼이 들어주며 나와 함께 도서관까지 오고가는 길은 고맙고 따뜻하다.


겨울 동안 아옹다옹 싸웠어도, 마음이 밝아지고 여유로워지는 봄이 되면 싸움도 덜한다. 봄에 핀 꽃들을 보면 자연스레 미소가 나온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4월, 우리는 여의도에서 결혼을 했다. 윤중로 벚꽃 덕분에 길이 엄청 막혔었지.

벚꽃은, 우리가 함께 시작한 시간을 자연스럽게 되새기게 해준다.


제대로 된 옷 한 벌 사라는 말도 기분 좋지만,

4월의 예쁜 꽃길 함께 산책하는 것만 하랴.

가장 멋진 4월의 결혼기념일 선물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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