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시장이 많이 혼탁합니다. 예전에는 브로커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알음알음으로 변호사를 찾기보다는 인터넷으로 많이 찾다 보니 오히려 거짓, 과장 광고들이 더 늘어난 것 같습니다. 제 주변 변호사님들은 차마 양심적으로 그런 광고를 하지 않고 있지만, 일부 소수의 로펌들이 하는 거짓 광고로 인해 많은 소비자들이 많은 비용을 쓰고도 성실한 변호사를 만날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거짓말로 고객을 유인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진정한 실력으로만 광고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거짓 광고 유형들을 소개하는 글을 연재하려고 합니다.
바람을 피웠는데 위자료를 주지 않았다?
한 대형 로펌의 광고를 보고 저도 궁금했습니다.
바람을 피웠는데도 이혼을 하면서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오지 않는다면 셋 중 하나인 때가 많습니다.
1. 상대방도 외도를 한 경우
2. 가정폭력 등 상대방도 만만치 않게 잘못이 있었던 경우
3. 서류가 정리가 되지 않았을 뿐 사실상 남남으로 지내온 경우
바람을 피운 사람들이 흔히 3.번을 주장하지만 이게 만만치 않습니다. 3.번의 경우를 주장하려면 적어도 이혼 소송 중이라거나, 별거하고 서로 연락을 끊은 지 몇 년이 지난 경우는 되어야 합니다. 협의이혼을 하려고 법원까지 갔었다는 정도로는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부부들이 협의이혼을 결심했다가 재결합을 하는 때가 많으니까요.
과연 이 국내 굴지의 대형 로펌이 광고하는 케이스는 어디에 해당할까요?
참 궁금했던 사안이었는데 결과는 아주 싱거웠습니다. 그 로펌에서 증거처럼 올린 판결문을 보니 어떤 상황인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사실 판결문도 아니라 조정조서였습니다.
조정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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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조항
1. 원고와 피고는 이혼한다.
2. 원고는 피고에게 재산분할금으로 금 1억 원을.... 까지 지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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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나 법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판결문과 조정조서의 차이점을 모를 것 같습니다. 서로 비슷하게 생겼으니까요.
조정조서는 조정이 성립하였을 때 판사가 작성하는 문서입니다. 확정된 판결문과 같은 효력이 있죠. 그래서 서로 항소도 할 수 없습니다. 조정은 법원 내에서 하는 일종의 합의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양 당사자가 적당히 양보하고 타협해서 합의가 되면 그 내용을 확정된 판결문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는 조정조서로 작성하게 됩니다.
다시 위 사건으로 돌아가서 보면, 조정조서를 보니 과연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의뢰인인 피고가 정말로 위자료를 주지 않은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실질적으로는 위자료를 준 것이나 다름없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제가 피고 측 변호사라면 저렇게 합의를 하지는 않았겠죠.
그 이유를 설명드리겠습니다.
피고가 바람이 나서 원고가 피고에게 이혼과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런데 만약 재산의 대부분을 원고가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할까요? 원고는 당연히 재산분할을 청구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피고에게 돈을 받아가라고 청구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이때 피고가 재산분할을 받고 싶으면 원고를 상대로 반소로 재산분할을 청구해야 합니다. 정리하자면 원고는 피고에게 위자료를 달라고 하고, 피고는 원고에게 재산분할금을 달라고 청구를 한 것입니다. 그러니 서로 주고받을 돈이 있는 것이죠.
이 상황에서 합의를 한다면 원고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제가 원고 측이라면 위자료를 별도로 표시하지 않고 피고에게 줘야 할 재산분할금에서 위자료만큼을 빼고 그냥 다 '재산분할금'이라고 표시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합의하는 것이 원고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니까요. 이렇게 합의를 하면 원고는 피고의 외도 상대방, 즉 상간자에게 별도로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원고는 피해자이고 가해자는 피고와 상간자의 두 명인데 어쨌든 위자료를 받지 못했으니까요.
반대로, 제가 피고 측이라면 위자료를 표시해 달라고 하였을 겁니다. 조금 어려운 말인데 피고와 상간자는 부진정연대채무 관계에 있습니다. 가령, 받아야 할 위자료가 3,000만 원인데 피고가 2,000만 원을 지급했다면 상간자로부터는 나머지 1,000만 원만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항상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혼의 원인이 반드시 외도 한 가지만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니까요. 이 문제는 좀 복잡하니까 논외로 합니다. 어쨌든 만약 위자료를 표시하였다면 원고는 실익이 적어 상간자에게 위자료를 달라는 소송을 추가로 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사건이 한 번에 끝나게 될 수 있죠.
정리하자면, 합의를 할 때 원고는 위자료를 표시하지 않는 쪽이, 피고는 위자료를 표시하는 쪽이 유리합니다. 그래서 양 쪽 모두에게 경험이 많은 변호사가 선임되었다면 서로 이러한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냥 돈의 성격이 위자료인지 재산분할금인지 표시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야 합의가 잘 되니까요.
이제 다시 위 조정조서를 봅시다. 광고의 내용대로 정말로 위자료는 표시되어 있지 않고 2.항에 재산분할금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굳이 이렇게 합의한 것은 원고가 상간자에게 별도로 위자료를 청구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그러면 위자료를 표시하지 않았다고 이 대형 로펌의 의뢰인인 피고가 이긴 걸까요?
사건의 내용을 모르니 확언을 할 수는 없지만, 아마 원고에게 유리한 합의인 것 같습니다. 원고는 재산분할금에서 위자료를 빼고 금액을 제시해 피고와 합의한 후, 곧바로 상간자에게 위자료를 청구하였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원고는 실질적으로는 위자료를 두 번 받을 수 있으니까요.
이런 광고, 이제는 제발 하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