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소송의 고질적 지연,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필요

by 평택변호사 오광균

이혼 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당사자들은 감정적인 소모 못지않게 '기약 없이 늘어지는 시간'에 큰 지치곤 한다.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은 모든 소송 당사자의 권리지만, 현재 우리 가사재판의 현실은 이와 거리가 멀다. 이혼 사건에서야말로 영미법계의 '디스커버리(Discovery, 증거개시)' 제도의 도입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때다.


현재 이혼 재판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답답할 때가 많다. 법정에 출석해 보면 실질적인 공방이 오가기보다는 그저 다음 일정을 정하고 허무하게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에는 영상재판 제도가 마련되어 활용되고 있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보수적으로 영상재판을 불허하는 재판부도 여전히 많다. 결국 당사자나 대리인인 변호사가 수 시간을 길에서 허비하며 법원에 가고, 또 법정 밖에서 수십 분을 대기한 끝에 고작 2~3분 남짓 다음 기일만 잡고 돌아오는 촌극이 매일같이 벌어진다.


더 큰 문제는 '고의적인 재판 지연'이다. 유리한 증거를 처음부터 내지 않고 숨기고 있다가 기일이 임박해서야 기습적으로 제출하거나, 증거 신청을 고의로 늦추며 시간을 끄는 꼼수가 비일비재하다. 현재 대한민국 법원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가 법관의 수에 비해 처리해야 할 사건이 너무 많다는 것인데, 이러한 소송 지연 전략까지 겹치면서 재판은 하염없이 길어지고 법원의 업무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이러한 비효율을 타파하기 위한 해법이 바로 '디스커버리(Discovery) 제도'다. 디스커버리 제도는 주로 미국 등 영미법계 국가에서 활발히 활용되는 민사소송 절차로, 본격적인 재판이 열리기 전에 양 당사자가 소송과 관련된 모든 증거와 서류를 의무적으로 상호 공개하고 수집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상대방이 가진 재산 내역, 이메일, 메신저 기록 등 핵심 증거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으며, 만약 정당한 이유 없이 증거를 숨기거나 훼손하면 법원으로부터 패소 판결이나 형사 처벌 등 무거운 제재를 받게 된다. 재판 초반에 서로의 패를 강제로 모두 까놓고 시작하게 함으로써, 불필요한 숨바꼭질로 재판이 지연되는 것을 원천 차단하고 신속하게 핵심 쟁점만을 다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소송 비용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재판 전에 합의를 도출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새로운 제도를 바닥부터 만들 필요도 없다. 우리 가사소송에는 이미 '가사조사'와 '재산명시'라는 훌륭한 제도가 폭넓게 활용되고 있어, 사실상 디스커버리 절차를 도입하기에 매우 좋은 환경이다. 현재 가사조사는 혼인 파탄의 경위나 양육 환경 등을 면담하여 사건을 파악하고, 재산명시 제도는 당사자의 재산 상태를 공개하도록 하는 데 쓰이고 있다. 이러한 절차들을 단순한 '사건 및 재산 파악용'에 머물게 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디스커버리 절차처럼 통합·확대하여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본격적인 재판 전에 양측의 재산 내역, 귀책사유 관련 증거 등을 포괄적으로 개시하게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쟁점을 명확히 정리한 뒤에야 판사 앞에서의 본 재판이 열리도록 하는 것이다.


수 시간을 달려가 다음 기일만 잡고 오는 무의미한 재판 출석, 찔끔찔끔 증거를 내며 상대방을 괴롭히는 소모전은 이제 끝내야 한다. 법관의 과로를 줄이고, 당사자의 고통받는 시간을 단축하며, 변호사들이 진정으로 법리적 조력에 집중할 수 있도록 가사소송법상 실질적인 증거개시 절차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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