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어나 소변을 보러갔다 극심한 복통과 함께 방에 돌아왔다. 복통은 심한 생리통과 비슷하게 망치로 내 배를 후려치는 느낌이었는데 신기하게도 등도 아파왔다. 나는 제대로 눕지도 앉지도 못하고 아이를 낳기 전 생리통이 심할 때 해왔던 고양이자세를 하고 신속하게 검색에 임했다. "소변 후 통증"을 검색하니 '배뇨통'이라는 전문용어가 검색되어 나온다. 하지만 "배뇨통"은 소변 볼 때마다의 통증이었기에 다시 비전문적 용어로 돌아간다. '간질성 방광염'이니 하는 말들이 스쳐가고 '방광염이 왜 걸리지', '알러지 시즌인가' 생각들과 함께, 날이 밝으면 산부인과에 가봐야겠다는 의지를 다지며 그대로 엎드려 잠을 청했다. 갱년기가 오니까 별일이 다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 등교는 아빠가 함께 하고 나는 잠과 복통 사이를 오가며 우리의 삼각관계에서 잠을 선택하려 애썼다. 잠은 너무 달콤하고 복통은 끊이지 않는 중독과도 같은 나쁜 xx 였다. 하지만 오래 리뷰를 쓰고 있는 <챌린저스>의 '타시'처럼 나는 잠과의 결혼 상태에서 끊임없이 복통으로 돌아갔다. 복통은 나에게 그만 자고 일어나 병원에 가야하는 현실을 내 감은 눈 안에 밀어넣었다. 더이상 자기는 글렀다. 좀 더 잔다고 영원한 수면에 이를 만큼 심각한 병은 아닌 것 같지만 아이 낳고는 한번도 겪은 적 없는 수위의 복통이 끊임없이 뇌에 비상벨을 울렸다.
그럴 리는 없지만 화장실에 가 앉아 복통이 장염일 거라고 회피의 힘을 줘봤다. 어림도 없었다. 회피의 ㅎ에도 갈 수 없었다. 후, 가자, 산부인과. 보통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갈 기력이 나지 않기도 하지만 산부인과는 유독 내게 기력을 더 주지 않는 곳이었다. 모든 곳이 굴욕의자를 동반한다는 정도는 출산 이후엔 기분 나쁜 축에도 끼지 못한다. 평소에는 '소중'하니 '청결'이니 그늘 속에 두어야 할 것처럼 세뇌시켜놓고는 출산할 때는 내 질구에 정말 많은 것들이 공적으로 드나든다. 손과 칼 등이 분주하게 오가는 사이 나는 누구에게나 내 질구를 보여줄 수 있는 자세로 고통을 맞이한다. 그런데 10분 정도 초음파 기구가 드나드는 굴욕의자 쯤이야.
하지만 산부인과 의사들의 태도는 시간이 지나도 적응이 안된다. 왜 그렇게 다 차가운지도 모르겠고 왜 그렇게 내 말을 끊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야기를 길게하는 것도 아니고 '생리기간이 아닌데 피가 비쳐서' 라는 말을 '생리기간이 아닌데 피'까지만 듣고 말을 끊는다. 이미 초음파에서 모든 것을 봤다는듯. 그리고 그 의사가 강조하는 무언가를 듣는 것으로 진료시간은 끝난다. 아이를 낳기전 생리통으로 간 산부인과는 '임신하세요'로 진료가 끝났고 아이를 낳은 산부인과는 '살을 빼세요'로 진료가 끝났다. 심한 생리통으로 처음 간 산부인과는 생리통이 심해서요, 말고는 아무 말도 듣지도 하지도 않은 채로 끝나기도 했다. 나의 어둠 속의 질구를 꺼내놓았는데 왜 나의 어둠 속의 불안은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나.
이게 불친절한 진료라는 것을 나는 비뇨기과와 유명한 소아과를 가보고 알았다. 방광염으로 비뇨기과를 갔더니 굴욕의자에 앉지도 않았는데도 나의 증상을 길게 듣는 것은 물론, 소변검사한 결과를 보면서 균의 모양에 따라 어디서 왔는지를 하나하나 설명해주기까지 했다. 유명한 소아과에서는 난생 처음으로 '난 소아과지만 엄마들이 더 신경쓰여'라는 말을 들었다. 맞아, 나도 관심받고 싶어요, 엉엉. 이 소아과에서 그동안 하지 못한 질문을 하고 관련 과를 소개받고, 진료의뢰서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친절한 비뇨기과도, 친절한 소아과도, 나의 오랜 증상-낮의 피로감, 잦은 오한과 높은 체온, 안먹어도 살이 빠지지 않음, 부종과 관절통-의 답은 찾지 못했다. 그것이 아마도 그들의 전문분야는 아니었을 것이므로. 나는 이제 또 복통까지 더해서 나를 제대로 돌봐줄 병원을 찾아야 하는 임무가 생긴 것이다.
그래도 어쨌든 산부인과였다. 지난번에 방광염으로 찾은 산부인과가 가장 가깝고 '산'과가 아닌 '부인'과를 전문으로 다루는 병원으로는 지근거리에서 유일했던 것 같기에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시 거기를 향했다. 지난번에는 방광염같은데요, 에서 말이 끊어졌기에 이번에는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가는 길에 새로 생긴 산부인과를 우연히 보았다. 어느 정도 충동적인 마음으로 그 병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검색으로 나온 '간질 어쩌구 방광염'이라면 또 말이 잘릴 것 같다는 공포감이 새로운 병원에 후광을 더했다. 급하게 그 병원의 후기를 검색한다. '후기가 안좋아 걱정했는데 친절하세요' '다른 걸 자꾸 권하네요' 다른 걸 권하면 나 가난한 걸 어필하면 돼, 내 후기도 안좋으면 또 다른 데를 가면돼, 했다. 그렇다, 사실 어떤 나쁜 후기가 나와도 난 거길 가야만 했다. 지난번에 간 산부인과는 이미 내 정신에 휘두르는 공포의 칼날이 된 터였다.
-
새로 간 병원은 신기한 곳이었다. 내 증상을 오래 설명을 듣고 질초음파를 보러 갔는데, 질 초음파로 내 증상이 설명이 안되자 갑자기 배위로 초음파를 보기시작했다. 두 초음파들이 영 신통한 점괘를 내놓지 못하자 의사는 내 배를 촉진하기 시작했다. 여기가 자궁이에요, - 아팠다! 여기는? 아팠다! 여기는요? 아프다고요, 엉엉. 삶의 모든 곳이 고통이어라.
옷을 챙겨입고 돌아간 진료실에서 의사는 컴퓨터를 보고 갸우뚱, 한 번 하더니 이내 나를 보고 골반염이에요, 한다. 골반염도 오래된 것 같다고. 아마 근종수술이나 제왕절개하면서 걸렸을 수 있다고, 그동안 여기저기 많이 아팠을텐데 어떻게 참았지, 한다. 그리고는
여자로 살기 힘들죠
네, 아무도 내가 아프다는 얘기를 안들어줬어요, 엉엉.
골반염이라고, 아마 주사를 맞고 약을 먹어도 통증만 10에서 2정도로 줄인 채로 사는 게 목표일 뿐 다 낫지는 못한다고, 얘기를 듣고 나오는데 내 눈 앞에 미래로 향하는 빛같은게 번쩍였다. 평생 못 낫는다는데 뭐 그리 기쁘겠냐마는, 나는 내 복통과 피로감, 살, 오한과 자주 걸리는 몸살 같은 것에 처음으로 원인을 찾은 느낌이었으니까. 비타민을 먹고 운동을 하고 식단관리를 해도 건강과는 자꾸만 멀어지던 삶에, 처음으로 길 같은 것이 보인 것이다. 원인 찾으러 병원가서 자꾸 a니까 가시오, 소리만 듣고 a를 고쳐도 다시 돌아오던 내 삶의 고통들이. b니까 가시오, 해서 b를 고쳐도 다시 함께 하던 내 삶의 고통들이.
원인을 알았으니 이제 노력하면 된다.
-
주사를 맞고 약을 받아 집에 왔다. 주사를 맞으니 심한 복통이 누그러들었다. 처음으로 내가 겪던 몸살 - 여기저기 쑤시던 감각과 근육통-이 관절과 허벅지, 등에 집중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손가락이 부어 잘 구부릴 수 없었던 증상들이 사라졌다. 가슴에 알 수 없는 통증이 있었는데 그것도 사라졌다. 몸이 가벼워지고 소화가 좀 나아졌다. 무엇보다 오전과 오후를 잡아먹었던 브레인포그가 사라졌다.
갱년기가 이르게 찾아왔나 싶던 증상들이 항생제 하루만에 사라진다니 살짝 허탈하기도 하다. 그 기전은 알 수 없지만 모든 게 골반염과 연관된 것이었구나 싶은데, 왜 이전에 다닌 산부인과에서는 내 골반염을 발견해주지 않아서 40대 중반에서야 머리가 맑아지는 걸 느끼냔 말이다.
또 한편으로는 아직 내가 꿈을 꾸는 나이에 나아져서 얼마나 다행인가도 싶다. 아침에 읽어나서 맑은 머리로 하루를 계획할 수 있음에 즐겁다. 체력이 왜이렇게 없지, 한탄하며 아이에게 짜증내는 오후를 맞이하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다. 내 가족에게 최선을 다하고, 책을 읽는데 집중할 수 있고, 쉽게 단어를 떠올리고 글을 쓸 수 있음에, 참 많은 것들이, 감사하다.
2025.12.10
제대로된 진단은 기쁜 일이 될 수도 있네요
- 아이 구내염 수발, 아이 독감 수발, 제 독감에 이어 골반염까지 근래 업데이트를 오래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마저 몸 좀 더 추스르고 책도 좀 더 읽고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