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힘을 기르고 있습니다

by 소소

2024년 3월부터 역도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이제 일 년이 조금 넘었다. 처음엔 주말에만 가다가 작년 가을부터는 주 4회 반을 수강하고 있다. 매 4회를 다 출석하지는 못하지만, 어쨌거나 회사 다음으로 가장 많이 가는 장소다. 이곳에서 나는 온전히 몸에 집중하고, 과정을 견디는 법을 익힌다.

내가 다니는 역도장은 지하 1층에 있다. 허름한 계단을 내려가면 어쩐지 서늘해진 듯한 공기에 몸이 살짝 움츠러든다. 역도장 공간은 큰 방 두 개를 복도가 연결하고 있는 아령 모양이다. 전면의 벽 전체가 전신거울로 되어 있고, 거울을 따라 바벨 랙이 전투 준비를 마친 병사처럼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다. 복도 왼편은 요가 매트가 여러 개 늘어놓아져 있는 스트레칭 존이다. 역도 수업은 스트레칭 존의 반대편에서 진행된다. 저쪽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기합 소리, 바벨이 텅 하고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본격적으로 운동을 할 준비를 시작한다.

역도 수업이 진행되는 공간은, 네 벽을 따라 역도 플랫폼이 세 개씩 늘어서 있고, 가운데엔 색도 크기도 다양한 플레이트들이 정리되어 있다. 쇠붙이라는 차가운 물성을 숨기기라도 하려는 듯, 플레이트는 빨강, 노랑, 초록 같은 원색의 조합이다. 덕분에 어쩐지 경쾌하게 느껴진다. 플랫폼은 말하자면 역도를 할 수 있는 자리인데, 가운데에 나무판자를 두고 양쪽에 고무판이 깔려 있다. 고무판은 바벨을 떨어뜨릴 때의 충격을 흡수해 주는 역할이고, 사람은 나무판 위에서 운동하게 된다. 발을 구를 때 역도화와 나무판이 부딪혀 나는 경쾌한 쾅! 소리는 묘하게 자신감을 북돋아 준다. 소리가 크게 날수록 무게도 더 잘 들리는 듯하다.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수없이 많은 운동을 시도해 왔다. 요가부터 시작해 크로스핏, 클라이밍, 복싱, 주짓수 등등. 하나를 꾸준히 하지 못한 건, 늘 성장에 필요한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고 쉽게 질려했던 탓이다. 실력이 에스컬레이터처럼 예쁘게 우상향하기만 하면 좋을 텐데, 성장은 언제나 계단식으로 이루어진다. 운동 신경이 나쁘지 않은 덕에 첫 한 칸은 늘 수월하게 올라갔다. 그러나 다음 계단을 오를 때까지 지루한 수평의 시간을 나는 버티지 못했다. 하나라도 꾸준히 했더라면 지금쯤 선수가 되고도 남았을 텐데. 아쉬움에 이번에는 최소한 3년은 채워 보자고 다짐했다. 다행히 역도는 재미있다. 기술과 힘으로 무거운 바벨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을 때의 쾌감은 중독적이다. 전보다 1kg이라도 더 든 다음엔 바벨을 바닥에 내던지면서 종일 쌓인 스트레스까지 시원하게 날리는 기분이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위기가 찾아왔다. 지난 2월, 바벨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용상 동작을 하다가 손목을 다친 것이다. 역도장에 가긴 했지만 역도는 전혀 하지 못하니, 백 스쾃 훈련밖에 할 수 없었다. 모두가 역도를 하는 사이 나 혼자 스쾃만 하려니 외롭고 지루했다. 오며 가며 사람들이 던지는 "힘이 좋아지겠는데요.", "언제 복귀해요?" 같은 인사치레를 붙잡고 버텼다. 한 달간 치료를 받은 끝에 드디어 지난 주부터 겨우 다시 역도를 하고 있다. 당분간 무게 욕심은 사치다. 예전 무게를 다시 들 수 있을 때까지, 천천히 훈련해야 한다. 빠르게 좋아지지 않는 실력에 조급해질 때마다, 나는 느려도 묵묵히 성장해 나가는 이들을 떠올린다.

역도장에는 매달 신입 회원들이 들어온다. 대부분 크로스핏을 해서 이미 역도 동작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개중에는 전혀 운동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있다. 주로 마르고 왜소한 남성들로, 바벨을 잡는 것조차 어색해 보이고 몸을 잘 쓸 줄 몰라 흐느적댄다. 작년에도 그런 회원이 하나 들어왔다. 나보다 다리가 가늘었고, 바벨을 들 때마다 깔릴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부터 그가 보이지 않았다. 역시, 포기했구나. 그런데 몇 달쯤 지났을까, 휴가를 내고 처음으로 오전 수업에 들어갔던 날 그를 다시 만났다. 시간대를 바꿨을 뿐 꾸준히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놀라울 만큼 달라져 있었다. 여전히 마른 몸이었지만, 나보다 무거운 무게를 절도있게 척척 들어 올리고 있었다. 실력이 늘긴 힘들 거라고 단정 짓고, 포기했을 거라고 지레짐작했던 게 미안해졌다. 동시에, 나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작은 기대가 생겼다.

역도장에 나간 지 1년이 조금 넘은 지금, 드디어 계단 한 칸을 더 올랐고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고 말할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내 실력은 제자리다. 그렇지만 예전만큼 조급하지는 않다. 절대 나아지지 않을 것 같던 한 사람의 변화한 모습을 보고, 중요한 건 꾸준함이라는 뻔한 사실을 새삼 실감했기 때문이다. 부상 후 처음 복귀한 지난주, 코치님은 내 자세를 보더니 한 말씀 하셨다. "잘 쉬었네." 그 말에 위로를 얻었다. 천천히, 길게 보고, 과정 자체를 즐겨도 괜찮을 것 같다. 빠르지 않아도 좋다는 새로운 자세를 배우며, 이 공간에서 나는 안정감을 느낀다. 이렇게 느림을 버티는 힘이야말로 나를 멀리 데려가 줄 것이라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