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보고 한 생각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에서 양자경이 분한 주인공 에블린은 어느 날 멀티버스를 오가는 능력을 얻게 되고, 여러 우주에 존재하는 수많은 버전의 자신을 만난다. 그리고 그 중 지금의 자신이 가장 보잘것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영화의 메시지와는 별개로, 이 부분이 아프게 와닿았다. 지금의 내가 어쩌면 가장 후진 버전의 나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상황이 달랐다면 더 나았을' 에블린의 모습을 보여준다. 현재의 남편인 웨이먼드와 결혼하지 않은 평행우주에선 에블린이 액션배우로 성공해 있는 식이다. 반면 나는 늘 '내가 아니었다면' 더 나았을 삶을 생각했다. 다리 길이나 머리 크기 같은 외모의 특징에서부터 타고난 기질이나 성향에 이르기까지, 고정불변인 요소들에 대해 수많은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며 괴로워했다.
자학으로 점철된 20대를 보냈다. 한창 예민할 10대 때는 대학이라는 목표 덕분에 증상이 그나마 덜했다. 충분히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채로 대학생이 되고 보니, 갑자기 넓어진 세상에는 비교 대상이 참 다양하게도 많았다. 내가 단단하지 못하니 작은 바람에도 크게 휘청거렸다. 누구든 나보다 나은 요소를 가지고 있으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성격이 밝아 누구든 쉽게 친구로 만드는 사람, 발표를 잘하는 사람, 센스가 좋은 사람, 등등. 부러움은 곧 자기 비하의 재료가 되었다. 상대는 그저 존재할 뿐인데, 나는 나와 상대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이 일은 묘하게 중독적이었다. 자기 비하는 금세 내게 익숙한 스포츠가 되어갔다. 키나 외모처럼 바꿀 수 없는 요소에 대해서는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고 내 감정에 책임을 질 필요도 없었다. 줄을 매달고 뛰어내리는 번지점프처럼, 내게 안전한 낙하감을 주는 일종의 루틴이었다. 어쩔 수 없다는 체념 속에서 우울해하며 스스로를 동정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면 잠시나마 삶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주인공이 된 기분을 느끼기에는, 영웅 이야기보다는 삼류 비극이 좀 더 손쉬운 방법이었다.
하지만 반복되는 자기 비하는 습기 찬 방에 서서히 퍼지는 곰팡이처럼 조용히 나를 망가뜨렸다. 나는 바꿀 수도 없는 일로 스스로를 미워하는 것에 점차 질렸다. 계속해서 비극의 주인공인 것도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었다. 좀 더 마음이 편안해지고 싶었다. 행복해지고 싶었다. 스멀스멀 그런 생각이 피어올랐다. 그러던 와중에 소개팅으로 남편을 만났다. 처음 만난 날, 그는 저녁을 먹으며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작년 연말에, 나는 어떤 사람이랑 살아야 할까를 엄청 고민했거든요. 근데 결국, 나를 바꾸려는 사람 말고, 나를 나답게 만드는 사람하고 살아야겠더라고요."
이 말에 내 안에서 작은 문이 달칵, 하고 열린 것 같았다. 잠시 숨을 고르고, 들고 있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나는 늘 내가 충분하지 않다고만 생각했었다. 만족이란 불가능한 얘기였다. 그런데 그가 '나다움'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한 순간, 어쩌면 이 모양인 나도 괜찮을지 모른다는 내 인생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예전엔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이 추상적으로만 들렸다. 도무지 어떻게 나 자신을 사랑하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서로를 서로답게' 해주기로 약속한 사람과 만나면서, 나다운 게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알게 되었다. 나와 친해지는 일은, 나에게 계속해서 말을 거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걸. 가령 이런 식이었다. 명확한 이유 없이 기분이 우울한 날에는 블로그를 켜고 비밀글을 쓰기 시작했다. "기분이 너무 별로다." 막 떠오르는 생각을 적어두고,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세세하게 적어 나갔다. 그러고 나면 한 걸음 떨어져서 나의 감정을 인정해 줄 수 있었다. 너 지금 그런 기분이구나. 이제 알겠어. 그럼 털고 일어서기가 한결 수월했다.
이렇게 나는 생각을 글로 옮기고,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이유 없이 울컥한 마음을 잠시 붙잡아본다. 내가 왜 화났는지, 무엇을 부러워했는지, 그 순간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심스레 들여다본다. 더는 나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의지로, 한 걸음씩 나에게 다가가는 중이다. 천천히 매일 조금씩, 이런 식으로 나와 친해지고 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결말에서, 에블린은 결국 지금의 우주에서 존재하기를 선택한다. 에블린처럼 멀티버스를 넘나들 능력이 없는 나에게는, 오로지 여기 이곳의 나만이 존재한다. 못나고 부족해도, 이 삶에서 허락된 단 하나의 가능성인 나. 그런 유일한 자신과 친해지는 일. 이것이 앞으로도 계속될 나의 과제이자,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