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의 '해피엔드'를 향해

네오 소라 <해피엔드> 리뷰

by 소소

근미래의 도쿄. 고등학생인 유타와 코우는 음악연구회 동아리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자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유타는 현재를 사는 사람이다. 입장이 막힌 파티의 뒷문을 찾아내고, 경찰이 와도 일단 춤부터 추고, 말도 안 되는 장난을 생각해 내는 것도 모두 유타다. 그는 지금 이 친구들과의 관계가 행복하다. 피터팬처럼 이 상태에서 깨어나지 않길 바라기에, 친구들과 자신 사이의 차이를 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타와 친구들은 같을 수 없다. 재일한국인 후손인 코우를 비롯하여, 외국인이거나 혼혈인 이들이 살아갈 학교 밖 사회는 유타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고, 친구들은 점차 그 사실을 깨닫는다. 영화 속 일본은, 정부가 100년 만에 찾아온다는 대지진을 핑계로 국가 감시 체계를 강화한 상황이다. 외국인에 대한 혐오는 심해지고, 사회는 분열된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심상찮은 정치적 위기가 다가오는 가운데 어느 날 밤, 학교에 잠입한 그들은 장난삼아 교장의 스포츠카를 세로로 세운다. 하필 다음날 발생한 지진으로 차는 망가지고, 이 사건을 계기로 학교에는 파놉티콘을 연상시키는 AI 감시 시스템 '파노피'가 도입된다. 지진은 두 사람의 정치적 입장을 흔들고 정립했고, 그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코우는 점차 정치적으로 각성하며 이 현실에 맞서기를 선택하고, 흑인인 톰은 자신이 좀 더 기꺼이 받아들여질 미국으로 돌아가기를 선택한다. 그러나 유타는 톰이 미국으로 간다고 말해도 못 들은 척 대꾸하지 않고, 코우에게는 '길거리에서 소리친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라고 핀잔을 준다. 그러고는 혼자서라도 동아리방에 있던 음악 장비를 교각 밑으로 옮겨 자기들만의 야외 클럽을 만들려고 하지만, 버려진 교각은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고 장비는 치워진다. 사실 유타만 제외하고 세상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유타도 안다. 모든 것은 변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관계가 어떤 분기점을 향해 가고 있다는 걸 애써 외면하던 유타는, 코우의 ‘어릴 때랑 똑같아’라는 말에 현실을 자각한다. 그리고 코우에게 자신이 달라졌음을 보여주듯, 교장의 차를 세운 게 자신임을 고백하고 자신에게 내려진 퇴학 처분을 순순히 수긍한다. 자신과 코우가 처한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어떤 면에서 둘은 결코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끝내 받아들인 것이다.

이러한 유타의 성장은 '일시 정지' 기법을 활용한 타이틀 시퀀스와 엔딩의 수미상관 구조에서 잘 드러난다. 영화는 오프닝에서 동아리방으로 뛰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다가 화면을 잠시 멈추고 '해피엔드'라는 타이틀을 띄운다. 엔딩 장면에서는 갈림길 위에서 유타와 코우가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다. 머뭇거리며 선뜻 자리를 뜨지 못하는 둘. 그러다 갑자기, 늘 그랬던 것처럼 유타가 코우에게 장난을 거는 순간 화면이 일시 정지되고, 멈춘 두 주인공을 배경으로 영화의 테마곡이 흐른다.

화면은 곧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고, 두 사람은 각각 정반대 방향으로 향한다. 함께 한 방향으로 달리던 오프닝과 달리, 이제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간다. 그러나 돌아서는 사람의 등을 끝까지 바라보고 선 것은 유타다. 영화 초반에서도, 가려는 코우의 등 뒤에 먼저 사랑한다고 외친 것은 유타였다.

유타를 보며, 떠나는 사람과 남겨지는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한 시기를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가지만, 그 방향과 마음은 다 다르기 마련이다. 그 차이를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는 일, 그것이 어른이 되는 과정일 것이다. 영화의 제목 <해피엔드>는 그래서 역설적이다. 지금의 행복과 나중의 행복은 다르겠지만, 지금의 행복이 끝난다고 해서 그것이 행복의 끝은 아닌 것이다. 한 시기를 함께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모두가 각자의 ‘해피엔드’를 향해 걸어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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