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구아다니노 <챌린저스> 리뷰
대부분의 삼각관계는 누군가가 떠나면서 끝난다. 2024년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였던 셀린 송의 <패스트 라이브즈>도 그런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한 명은 선택받고, 다른 한 명이 떠남으로써 관계는 ‘정상’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셀린 송의 남편 저스틴 커리츠케스가 각본을 쓴 영화 <챌린저스>는 정반대로 간다. <챌린저스>에서 관계는 둘이 남을 때 무너지고 셋이 모여야 비로소 완성된다.
공을 주고받는 두 선수 사이를 카메라가 가로지른다. 네트 위를 타고 흐르는 시선 끝에는 아트의 부인인 타시가 앉아 있다. 관중석의 타시, 코트 위의 아트와 패트릭이 삼각형을 이룬다. <챌린저스>는 테니스 토너먼트 결승전이라는 클라이막스를 향해 질주하는 스포츠 영화이면서, 이 세 인물의 역학관계를 완성하기 위해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랠리를 펼치는 사랑 영화다. 그리하여 관객은 이 첫 장면에서부터 한 가지 질문을 품게 된다. 과연 이 테니스 경기와 러브 게임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삼각형의 탄생 시점으로 돌아가보자. 아트와 패트릭은 어렸을 때부터 기숙학교 룸메이트로 지내며 함께 테니스를 배운 사이다. 둘도 없이 절친하지만, Fire and Ice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 둘의 성격과 테니스 스타일은 판이하게 다르다. 패트릭은 야생이다. 변칙적이고 동물적이다. 정석에 얽매이지 않는, 조금 이상하기까지 한 서브 자세만 봐도 그렇다. 그의 시그니처는 뒤돌아서서 다리 사이로 공을 치는 끝내기 샷. 과연 Fire답게 외모도 자유분방하고 성질도 불 같아서, 마음에 안 들면 거침없이 욕설을 하거나 라켓을 던진다. 반면 아트는 외모도 플레이도 늘 깔끔하고 단정하다. 패트릭과는 다르게 계산적인 확률게임을 하고, 성질을 부리는 일도 거의 없다. 그런 둘 사이에, 타시가 나타난다.
타시는 아트와 패트릭을 섞어 놓은 듯한 인물이다. 아트처럼 군더더기 없는 플레이를 선보이지만 한편으론 테니스를 관계라고 말할 정도로 감각적이고 직관적이며, 승부욕도 강하다. 장래를 촉망받는 선수인 타시에게 아트와 패트릭은 동시에 반해 버린다. 권력의 추가 기운다. 공은 이제 타시의 손에 있고, 그녀는 이 둘을 바라보는 감독이자 관중이 된다. 타시가 원하는 건 단 하나, 기똥찬 테니스 경기를 보는 것. 그녀는 아트와 패트릭에게 공을 던진다. 한 번 제대로 놀아봐.
영화에서 가장 관능적이라 할 수 있는 모텔에서의 삼자 키스신에서, 타시는 참여하는 듯하다가 슬그머니 뒤로 빠져 아트와 패트릭을 관찰한다. 타시를 탐했던 아트와 패트릭은 타시가 빠진 후에도 키스를 이어간다. 둘만의 플레이. 복식경기 우승 세레머니에서 트로피를 사이에 두고 키스를 나누던 아트와 패트릭은, 타시의 설계 하에 비로소 서로를 가로막는 트로피 없이 진짜 관계를 맺는다. 이렇게 타시가 아트와 패트릭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의 삼각형이 완성된다.
그러나 세상의 규칙은 엄연하다. 경기의 승자는 한 명 뿐이고, 타시는 번호를 한 명에게밖에 줄 수 없다. 패트릭의 승리로 타시와 패트릭은 연인이 되지만, 불과 불이 만나면 서로를 태울 뿐이다. 싸움 끝에 패트릭은 떠나고, 삼각형은 무너진다. 아트만이 자리를 지킨 경기에서 타시는 큰 부상을 입고, 선수 생활을 그만둔다. 시간이 흘러 타시는 아트의 코치이자 아내로 함께하게 되지만, 둘의 결혼 생활에는 무언가가 빠져 있다. 아트는 지쳐 있고 타시는 야심이 부족한 아트가 아쉽다. 타시는 선수로서의 자신을 잃었고, 아트는 패트릭이라는 라이벌을 잃었다. 둘 다 핵심적인 무언가를 잃어버린 상태인 것이다. 그리고 이때 다시 패트릭이 등장한다.
패트릭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이 관계의 테니스를 완성하는 데는 두 명의 선수와 한 명의 관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가 애틀란타 게임에서 다시 타시 앞에 나타났을 때, 그는 타시에게서 빼앗은 “I TOLD YA”라는 문구가 써진 티셔츠를 입고 있다. 앞서 타시가 이 옷을 입고 등장하는 장면에서 타시는 아트와 점심을 먹고 있었다. 아트가 섣부르게 조언한다. “걘 너 사랑 안해.” 타시는 쏘아붙인다. “누가 사랑받고 싶대?” I TOLD YA, 내게 사랑은 중요하지 않아. 그러나 아트는 타시에게서 늘 사랑을 갈구한다. 둘의 관계는 균형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타시와 아트가 삐걱거릴 때, 패트릭이 그 티셔츠를 입고 나타난다. 마치 ‘너네 둘 사이에 내가 필요할 거라고 말했지’라는 듯이. 테니스가 관계라고 말한 것은 타시지만 그 가르침을 완수하는 건 패트릭이다. 애초에 타시를 모텔 방으로 초대한 것도, 그녀에게 코치 자리를 제안한 것도, 마지막 세트에서 아트에게 서브로 힌트를 주는 것도 모두 패트릭이다. 가장 안정적인 도형, 삼각형. 패트릭은 이 구조를 되살린다.
마지막 세트, 패트릭은 처음 타시를 쟁취했을 때 장난스럽게 했던 그 약속을 다시 꺼낸다. 타시랑 잤으면 아트처럼 서브 넣기. Fire이 타오르고, Ice는 녹는다. 패트릭과의 경쟁을 통해 타시의 시선을 느낄 때, 아트는 비로소 살아난다. 그리고 그제야 타시도 이 둘의 경기에 만족한다.
타시에게 테니스는 정체성 그 자체다. 그러나 그녀는 부상 이후 선수로 돌아갈 수 없다. 타시가 다시 완전해지는 방법은, 경기를 설계하고 게임의 일부가 됨으로써 테니스 그 자체가 되는 것뿐이다. 영화에서 타시는 두 번 포효한다. 한 번은 선수 시절 주니어 US 오픈 우승 순간. 직접 관계 안에 존재하기에 내지르는 동물적인 함성이다. 다른 한 번은 마지막 세트에서 비로소 이 게임의 일부가 되었을 때. 이때 카메라는 테니스 공이 되어 네트를 넘나든다. 이렇게 타시는 다시금 테니스라는 관계 속에 존재하게 된다. 세 명 모두가 이 관계에 가담했을 때 비로소 진짜 게임이 시작되고, 삼각형이 완성됨으로써 그들은 각자 온전해진다.
사랑은 둘이 아니라 셋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게 더 안정적일지도 모른다. 루카 구아다니노는 스포츠와 승부욕을 매개로 하여 이 과격한 명제를 탐구한다. 트렌트 레즈너와 애티커스 로스의 테크노 비트 위에 펼쳐지는 격정적인 랠리,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코트 위를 가로지르는 시선을 통해 이 삼각형을 스크린 위에 완성해 보인다. 관능적이되 외설적이지 않고, 파괴적이되 폭력적이지 않은 형태로. 영화의 시작에서 관객이 품었던 질문 “누가 이 게임의 승자인가”는 이제 무의미하다. 진짜 게임은 승패가 아니라 이 세 사람이 만들어내는 테니스, 즉 관계 자체였으니까. I TOLD 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