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니라는 변명

하다 이야기

by 오늘

그 날은 평범했다. 출근해서 방송 원고를 쓰고, 섭외를 하는, 별다를 것 없는 날이었다. 매체에서는 ‘세월호’ 얘기가 끊이지 않았지만, 내 염두에는 없었다.


국장님이 스튜디오로 오셔서 뉴스 확인을 하고, 방송 방향 조정하고, 원고를 수정하라고 하셨다. 그때부터 며칠 동안 ‘세월호’가 원고를 가득 채웠다.


아주 어릴 때부터 가족들의 죽음을 경험했고, 그 죽음이 닥치기까지의 ‘삶과 죽음의 모호한 경계’를 체험했기에 내게 ‘죽음’은 예민한 사안이지만, 낯설지는 않았다. 해서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을 당시에도 매체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원고를 쓰기 위해 자료를 찾으며 비로소 보고, 느꼈다.


평범한 날이었을 것이다. 뭉뚱그리면 누군가 배를 타고 이동하는 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배 한 척에 가려진 진실이 드러날수록 ‘평범’으로 봉합하기엔 속상하고, 답답하며 속이 뒤틀리는 ‘살인사건’이 되었다. 희생자 저마다의 사연이 알려질수록 안타깝고, 무릎이 꺾이는 ‘살인사건’이 되었다.


엄마는 전화를 해 몇 번이고 안부를 물었다.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이 평소와 다른 온도의 인사를 건넸다. 어쩌면 내가 세월호에 탔을 수도 있다, 어쩌면 네가 거기에 있었을 수도 있다 등을 생각하며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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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차원의 ‘죄책감’이 들었다. ‘나에게 벌어졌을 수도 있는 일’이라 애처로운 것이 아니라 ‘생겨선 안 되는 사고가 벌어졌고,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을 죽인 일’인데 자꾸 내 중심으로 생각함이 미안했다. ‘이제는 그만 해라, 잊어라’ 말하는, 한심하고 무지한 족속들을 향해 큰소리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수치스러웠다.


나는 세월호 참사와 무관하다, 나는 잊지 않았다, 나는 애도했다,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닌다 등의 이유를 내세워 개념 있는 척하지만, 문득문득 얼굴이 달아오른다.


2014년 4월 16일, TV와 Radio 그리고 포털사이트에 기사가 뜰 때 관심 없었잖아. 원고를 쓸 목적이 아니었다면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았을 거잖아. 희생자 가족들에게 비난이 쏟아질 때 마음으로만 안타까워하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잖아. 어차피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며 적극적으로 정치 공부를 하지 않았잖아. 무엇보다도 세월호를 얘기하며 ‘난 사려 깊은 사람’이라고 자위하잖아. 그러면서 이렇게 당당하면 안 되지. 나는 아니라고, 나는 세월호를 잊자는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하면 안 되지. 그런 치졸한 변명은 하면 안 되지.


이런 글을 쓰는 것조차 나를 두둔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한편으론 다시 마음을 다잡기 위해 이 글을 쓴다. 그래야 하니까. 다른 이유는 없다.


-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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