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 이야기
옆자리 동료와 사담을 나누다가 아직 생리대와 생리가 익숙하지 않았던 시절을 떠올렸다. 잠깐 방심한 사이 혈이 새서 옷이 젖고, 그게 의자나 강당 바닥에 묻은 경험을 주고받았다. 다시 떠올려도 아찔하고, 참담하고, 걱정스러운 시절을 지나 이젠 30대 후반에 안착(?)했으나, 여전히 그런 두려움을 안고 산다. 물론 그동안 쌓인 경험치 덕에 예전만큼 조마조마 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그러니까 생리와 생리대에 적응하고, 익숙해지기까지 나의 본능이 갖가지 노력을 기울였다. 가방마다 생리대 하나씩 넣어 다니고, 나들이를 가면 목적지 근처의 편의점 위치를 파악하고, 생리 예정일이 가까워오면 만약을 대비해 속옷도 한 장씩 가지고 다녔다. 만약 화장실에 자주 갈 수 없는 환경이라서 생리가 갑작스레 시작했을 때 대처할 수 없다면 미리 생리대를 착용하고 있기도 했다.
회사를 다닐 때 그리고 회사를 옮길 때 하는, 일종의 ‘파악’ 또는 ‘의식’도 노력이라면 노력이라 할 수 있다. 내가 근무하는 곳에서부터 화장실까지의 거리 가늠, 그 화장실의 위생상태 점검, 함께 근무하는 동료들이 생리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 파악 등이 그것이다.
사무실과 화장실이 멀리 떨어져 있을 경우 생리대를 교체하러 화장실에 갈 때마다 눈치가 보인다. 안 그래도 생리할 땐 화장실에 오래 있을 ‘수밖에’ 없는데 화장실이 멀기까지 하면 오가는 시간도 더해진다. ‘남들 일 할 때 쟤는 화장실만 왔다 갔다 하나’는 얘기를 듣고 싶지 않다. 그래서 사무실에서 화장실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살펴보고, 거기에 따라 교체 주기를 조절한다.
회사 화장실 위생상태 점검도 중요하다. 인간은 먹고, 싼다. 그래서 화장실과 밀접하다. 여성은 생리 때문에 더 밀접하다. 그런데 오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화장실 환경이 좀 그러면… 생리대 교체할 때마다… 찝찝하다. 생리 때문에 찝찝한데 화장실 때문에 더 찝찝해서 계속 찝찝하다. 먹고 사는 게 중요하니 회사의 화장실 환경이 만족스럽지 못해도 금방 수긍하나, 괴로운 건 변하지 않는다. 내가 나의 청결을 다방면으로 더 신경 쓸 ‘수밖에’.
동료들이 생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속할 ‘회사’라는 집단이 생리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알아보는 것도 꼭 한다. 생리를 부끄러워하거나, 밖으로 드러내선 안 된다고 생각하거나, ‘생리’라고 말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의 동료와 회사라면 거기에 따라야 한다. 파우치가 아닌 생리대’만’ 들고 화장실에 가고, ‘제가 생리통이 너무 심해서 생리 휴가를 쓰고 싶은데요’라고 했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생리가 부끄럽다는 인식’이 있고(답답하다), 조직을 거스르면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 찍히고(또 답답하다), 내가 거기에 맞추는 게 어떤 사람들의 사고로는 당연한 것이니 ‘걍 사람 1’인 나는 따를 ‘수밖에’.
이런 다채로운(?) 연습, 노력, 관찰, 판단을 하며 36살까지 살아왔다.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생리를 ‘넘길’ 수도 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이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가 생리에 적응을 한 것인지 아니면 아직도 적응 중인지는 모르겠다. 내 몸에서 벌어지는 일인데 여전히 낯설다. 그럼에도 능숙하게 대처는 한다. 아마 완경을 맞이할 때까지 이러지 않을까. 생리는 나에게 불쑥 와서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다가 또 불쑥 떠나니까.
-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