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피해자성, 피해자다움

하다 이야기

by 오늘

한 소녀가 성폭행을 당했다. 신고를 했고, 경찰이 와서 어떻게 된 것이냐 물었다. 소녀는 대답을 했다. 잠시 후 형사들이 찾아왔다. 어떻게 된 것이냐고 또 물었다. 소녀는 또 대답을 했다. 성폭행범을 잡기 위해 신체에 남은 증거를 모으는 와중에도 누군가가 어떻게 된 것이냐 물었다. 소녀는 또 대답을 했다. 아까 그 형사들이 진술서를 써야 한다며 어떻게 된 것이냐 또 물었다.

소녀는, 또 대답했다.


그 후 범인을 잡았을까? 아니다. 형사들은 피해자인 ‘소녀’를 파헤쳤다. 소녀의 진술이 일관적이지 않고, 소녀의 부모가 없고, 소녀가 많은 위탁가정을 거쳤으며, 소녀의 평소 행실이 바르지 않다는 이유였다. 결국 소녀는 거짓말을 한 것으로 ‘여겨’ 지고, 사회에서 쫓겨나고, 친구들에게 멸시당했다.


믿을수02.jpg


넷플릭스에서 처음 공개됐을 때 보고, 최근에 다시 본 미국 드라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의 1편 내용이다. 2편부터는 좀 다르다. 두 ‘여’ 형사가 범인을 쫓아 전력 질주한다. 1편과 그다음 편의 차이점은 한 ‘여’ 형사가 피해자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부터 확실히 드러난다. 피해자는 계속 자신이 성폭행을 당한 후 어떤 행동을 했고, 왜 했는지 설명하려 한다. 그러자 ‘여’ 형사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어떤 일을 왜 했는지 나한테 설명하지 않아도 돼요.”


피해자가 성범죄를 당한 것이 맞는지, 그때 노출이 많은 옷을 입었는지, 그동안 괜찮은 삶을 살았는지, 현재의 직업과 학벌은 어느 정도인지, ‘성범죄를 당할 만한 사람인지’, ‘성범죄를 당할 리가 없는 사람인지’. 성범죄를 둘러싼 아니, 성범죄 피해자를 둘러싼 이런 기사와 편견, 판단, 표현이 너무 많다. 대부분이라 해도 과하지 않다. 게다가 피해자가 피해를 입은 후 어떤 언행을 했는지를 놓고 범죄의 유무, 참/거짓을 가리기도 한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그런 태도를 비판하고, 거부한다.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안위이며, 범인을 빨리 잡는 게 우선임을 보여준다.


믿을수03.jpg


한 피해자가 성폭행범에게 묻는다, 왜 나에게 그랬냐고. 나의 무엇이 당신을 자극했냐고. 내가 입은 옷, 했던 행동이냐고. 제발 알려 달라고. 그러면 다시는 하지 않을 거라고.


최근에 이수정 교수님이 하신 말씀을 빌리겠다.

성범죄를 어떻게 피해? 그냥 피해자들은 일상을 열심히 사는데 재수 없이 잘못된 장소에 잘못된 시간에 있다 보니까 그런 건데. 왜 피해자한테 피하는 방법을 물어봐. 그 범죄를 피해지게 만들어야 되는 에이전트는 어디 있어요? 국가에 있는 거지. 국가에서 해야 되는 일을 안 해 놓고서 왜 피해자한테 피하는 방법을 물어봐.


또 언젠가 읽은, 성범죄 피해자의 인터뷰를 옮기겠다.

성폭행을 당한 이후 삶은 망가졌다. 하지만 나는 살고 있다. 떠올리면 끔찍하고, 지옥 같지만, 나는 살고 있다. 내 삶이 끝난 것처럼 말하지 말아 달라. 피해를 당한 거지 희생을 당한 게 아니다. 그런 눈빛으로 보지도 말아 달라. 모든 잘못이 나에게 있다고 말하지 말아 달라.


- 하다




nadograe.com/storiG


사진 © Netfli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