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 이야기
늘 내 인생에 임신, 출산, 육아는 없을 거라고 말한다. 비하하고, 폄하하는 게 아니라 나같이 불안정하고, 게으른 인간은 절대로 꿈꿔선 안 되는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엄마’라 부르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여자는 모두 모성애가 있으며, 엄마는 자식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주장은 꺼둡시다.)
자신의 삶을 살면서 아이를 돌보고, 자신의 생활을 이어가면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 나를 대입하면 상상 자체가 불가능한 것들을 해내는 그들에겐 아이가 정말 중요하다. 아이가 먹는 것, 사용하는 것에 무척 신경을 쓰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것을 찾는다. 강아지와 고양이를 돌봤던 적이 있어서 어렴풋이 이해가 된다. 내 옷, 내 영양제는 사지 않아도 강아지와 고양이의 영양제와 장난감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제일 좋은 걸로 골라 샀으니까.
그런 ‘엄마’는 자기 자신을 위해 좋은 생리대를 구매할까? 예전보다 경제적으로 더 팍팍한 시대를 살아가는데 나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사는 게 가능할까? 엄마가 되어본 적 없으니 추측할 따름이다. 이럴 때마다 나의 엄마를 먼저 떠올린다. 엄마는 쇼핑을 좋아한다. 옷, 신발, 이불 사는 걸 굉장히 즐긴다. 그런데 딸(나)을 위한 소비를 먼저 한다. 그 후 여유가 있으면 자신의 것을 산다. 요즘의 ‘엄마’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 기저귀는 제일 좋은 것으로 사고, 아이들 입에 들어가는 것도 무조건 건강한 것으로 사고, 아이들이 원하는 것도 최대한 들어주려 할 텐데, 그럼 엄마의 생리대는? 엄마의 생리통은? 엄마의 갱년기는?
나도그래 구매자들이 남긴 리뷰를 보면 ‘딸을 위해 샀어요~’라는 내용이 참 많다. 딸을 위해 유기농 생리대를 사는 엄마. 구매해서 딸과 함께 쓰기도 하겠지만, ‘딸을 위해’ 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내가 나에게 유기농 생리대를 사줄 수는 없을까. 유기농 생리대를 파는 회사에 다니면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어떻게 비춰질지 모르겠으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자신을 위해 소비를 하는 것, 죄책감 느끼지 않고 부연설명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럴 수 있는 것, 누구도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지 않는 것, ‘엄마’에게 우리가 만들어낸 ‘엄마’의 책임과 역할을 강요하지 않는 것.
이런 사고의 흐름은 립스틱에서 출발했다. 출산 선물로 뭐가 좋냐는 물음에 누군가 ‘립스틱’이라 답한 것을 보고 놀랐다.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엄마도 여자라 화장을 하고 싶어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엄마와 여자를 억압하지 말자고요.) 또 ‘딸에게 좋은 생리대를 사주는 게 엄마의 책임’이라는 얘기도 아니다. (엄마에게 ‘엄마’됨을 강요하고 싶지 않습니다.)
‘엄마’도 ‘아내’도 ‘여자’도 아닌 나. 온전한 나. 오롯이 나. 어떤 카테고리로 분류하지 않고, 존재하는 그 자체의 나. 우리 모두 타인이 날 그렇게 봐주길, 대해주길 바라는데 ‘엄마’라 불리는 사람들이라고 다를까. 아마 누군가는 ‘엄마’가 되고 싶기도 할 것이고, 누군가는 ‘자신’으로 혼자 서길 바랄 것이고, 또 누군가는 ‘엄마와 자기 자신’에서 갈팡질팡할 것이다. 이런들 또 어떠하며 저런들 또 어떠하리.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하고, 나는 지지할 따름인 것을. 우리의 영역은 판단이나 평가가 아니라 지지 또는 묵묵한 연대가 아닐까.
-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