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 괜찮을까?

하다 이야기

by 오늘

매일 아침 일회용 마스크를 쓸 때마다 생각한다, 괜찮을까? 빨대를 쓸 때도 생각한다, 괜찮을까?


외국의 한 환경운동가의 인터뷰를 봤다. 우리가 이렇게 일회용 마스크를 쓰면 언젠가는 썩지 않은 마스크가 지구를 뒤덮을 거라고 했다. 동시에 예전에 본, 빨대가 코에 박혀 힘들어하는 거북이가 떠올랐다. 물론 이런 ‘고민’은 바로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몇 달 혹은 몇 년이 지나야 비로소 야금야금 ‘행동’으로 옮겨간다.


생과 사가 중요함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진리이다. 더불어 나의 부주의로 타인에게 바이러스를 전염시킬 수도 있을 땐 방어와 차단 역시 중요하다. 그런데 오늘만 살 것이 아닌 이상 미래의 삶도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오늘 이렇게 힘겹게 지켜낸 ‘미래’가 마스크로 덕지덕지 덮여 앓으면 안 되니까.


(혹시나 해서 붙이는 말, 그래서 마스크를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 다 꼼꼼하게 마스크를 쓰고, 손을 씻어서 최대한 빨리 종식시켜서 더 이상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드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해 없으시길.)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쓴, 수없이 많은 일회용품이 지구의 어느 지점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거기에 살던 동물은 쫓겨나거나 일회용품과 뒤섞여 있다.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까 넘어간다. 나 혼자 조심해도 소용없을 테니 나를 제외한 타인을 탓하며 살던 대로 산다. 그런 선택과 일종의 체념이 잘못이고, 틀리고,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럴 수 있다. 내 코가 석 자고, 오늘 하루 버티는 것도 버겁고, 나 혼자 아무리 뭘 해도 나아지지 않으면 기운 빠지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그렇게 넘어가고, 포기하고, 체념하면 나아지는 것은 없다. 그래도 한 번, 그럼에도 한 번 이런 ‘한 번’이 모이고 모이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훗날엔 변하지 않을까. 오늘 빨대 하나 덜 쓰고, 종이컵 하나 덜 쓰고, 더불어 나는 실천하는데 너는 왜 실천하지 않느냐며 타인을 손가락질하지 말고, 깜빡하고 오늘 빨대 두 개 썼다며 자책하지 말고, 묵묵히 오늘을 살아내는 것처럼 그렇게 기복 없이 동요 없이 꾸준히 하다 보면 지구의 어느 부분은 덜 아프지 않을까.


물론 이런 시도에도 암은 있다. 면마스크를 빨 때 사용하는 세제가 물을 더럽히고, 빨대 대신 사용한 무언가도 결국 쓰레기가 되니 말이다. 이런저런 고민은 계속 이어지는데 명쾌한 해답은 없다. 지구를 생각한답시고 뭔가를 하는데 대단히 건설적이지도 않다. 분명 좀 전에 ‘자책하지 말고’라고 적었지만, 이렇게 또 자책까지 한다. 관광객이 줄어 환경이 좋아지니 보이지 않던 동물들이 나타났다는 관광지 사진이 자주 보인다. 나의 여행할 자유가 먼저인지 그들이 살아갈 권리가 먼저인지 따지면 비슷한 맥락으로 일회용품이 떠오르고 다시 마음이 시끄러워진다.


아마 완벽한 대처는 없을 것이다. 내가 사는 세계가 변하지 않는 이상 거기에 속한 나의 노력은 그리 대단한 힘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잊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그저 지구에 70년 80년 머물다 흩어질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그저 이 별을 잠깐 빌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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