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나이

하다 이야기

by 오늘

2020년 현재 36살이다. 만으로는 34살이다.


25살 무렵 ‘너도 이제 꺾인다’는 얘기를 지겹도록 들었다. 25살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도 노산이라는 말도 들었다. 26살 때는 누군가 ‘너도 이제 아줌마야, 아줌마’랬다. 30살이 됐을 땐 ‘여자 나이 서른이면 이제 끝났다고 봐야지’라던 사람도 있었다.


꺾인다는 건 뭘까. 아줌마는 뭘까. ‘여자 나이’는 뭘까.


세상에 나왔으니 자라고, 늙고, 죽는 건 당연하다. 수명이 늘었다고는 하나 그것과는 별개로 자연에 속한 인간은 다 같은 과정을 거쳐 태어나고, 살고, 죽는다. 그런데 ‘여자 나이’는 좀 다른 것 같다.


10대는 뭘 해도 예쁜 나이, 뭘 하지 않아도 예쁜 나이란다. 화장 안 해도 예쁘고, 꾸미면 어른스럽게 예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예쁘고, 그 나이에 어울리는 뭔가를 하면 예쁘다는 소리를 듣는다. 10대에는 ‘예쁜’이 항상 붙는다. 모든 기준이 ‘예쁨’, ‘예쁘지 않음’과 연결된다. 나의 10대를 반추하면 꼭 그랬다.


20대는 25살을 기점으로 나뉘었다. 25살 때까지는 젊고, 예쁘고, 물이 올랐단다. 25살이 지나면 ‘크리스마스’와 비슷하단다. 연애를 하지 않고, 결혼을 ‘못’하면 ‘안’ 된다고 덧붙인다. 누군가의 아내도, 엄마도 안 되면 ‘여자’도 아닌 그냥 늙은 ‘존재’가 될 거라고도 한다. 그래서 누가 나이를 물으면 얼버무렸던 기억이 선명하다. 대답을 하는 순간 줄줄 나오는 저 대사가 너-무 피곤했다.


딱 30대부터는 ‘독하다, 히스테릭하다’는 평가가 늘 내 뒤에 붙었다. 아니, 이름 앞에 붙었다. 누군가가 날 측은하게 바라보는 시선, 만남을 주선해 관계를 맺게 하려는 분위기, 혼자 살다 늙어 죽으면 어쩌려 그러냐는 걱정과 한숨, 포궁이 있음에도 아이를 낳지 않는다니 무책임하다는 손가락질. 모두 단짝이 됐다.


몇 년 후면 40대가 되는데 이젠 내가 뭘 해도 아줌마란다. 기이하다. ‘아줌마’의 사전적 의미는 아주머니를 낮추어 이르는 말이다. ‘낮추어’에 방점이 찍힌다. ‘아주머니’의 사전적 의미는 남남끼리에서 결혼한 여자를 예사롭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다. 그런데 진작 한껏 퇴색됐다. 아줌마 같아, 아줌마스럽다 등등으로 변주하고, 혐오를 가득 담아 여자를 호명한다. 사전적 의미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여자를 나이로 분류해서. 40대를 나이 들었다고 할 수 있나? 게다가 그 ‘아줌마’에 혐오가 담겼는데,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혐오 범벅인 ‘아줌마’로 불려야 마땅할까?


모르겠다. ‘여자 나이’가 도대체 뭐길래 예쁘다, 물이 올랐다, 독하다, 아줌마 등등으로 표현하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면서 왜 ‘여자 나이’는 갖가지로 함의하고, ‘마땅히’ 혐오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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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나’이고 싶다. ‘여자 나이’에 종속된 사람 말고 그냥 나. 실비아 플라스의 소설 ‘벨자’에서 문장을 빌려 전하자면 ‘나는 변화와 짜릿함을 원했고, 나 자신이 사방으로 튕겨나가고’ 싶다. 나이와 무관하게 ‘사방으로 튕겨’ 나가는 나이고 싶단 말이다.

제발 나이로 묶어 정의하거나, 한계를 긋거나, 어떤 기질을 나이와 연관 짓지 않길 바란다.

그거 너무 고루해.

덧, 그 나이로 안 보여요, 나이치고 젊네요 등등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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