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 이야기
‘아… 시작했구나…’ 찜찜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면 여지없이 생리와 마주한다. 생리는 ‘흔적 티 내기’부터 시작한다. 속옷이든, 이불이든, 화장지든 어딘가에 묻어 ‘내가 찾아왔다! 빠밤!’ 알린다. 달갑지 않은 그 자태를 보면서 ‘어쩐지…’ 근래 유독 없었던 기운, 묵직했던 아랫배 등을 떠올린다. 생리가 시작했든 안 했든 생활인은 출근 준비를 한다. 씻고, 말리고, 바르고, 챙긴다. 그러면서 오늘 하루를 대충 스케치한다. 할 일, 해야 할 일, 버텨야 하는 순간, 퇴근 후 계획까지 그리면 그 사이사이에 ‘생리가 주는 불편’이 자리 잡는다. 생리를 하면 수시로 화장실에 가야 하고, 평소보다 몇 배는 더 피곤해 일의 능률이 떨어지고, 가볍기만 한 퇴근 후 귀갓길도 버겁게 느껴진다. 어찌어찌 출근을 해서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본다. 자꾸만 흐려지는 사고와 옅어지는 기력에 뇌가 버벅댄다. ‘오늘은 영 아니다… 영 아니야… 눕고 싶다… 아프다… 피곤하다…’ 연체동물처럼 흐물거리며 퇴근을, 퇴근만을 애타게 기다린다. 중간중간 동료들의 눈을 피해 생리대를 꺼내고, ‘에티켓 없이 생리한다고 티 내는 거야?’ 이런 식의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애써 괜찮은 척도 한다. 후…
생리할 때 보통 이렇다. 그래서 성인이 된 후, 일을 한 후 ‘생리’가 몇 배는 더 불편했다. 생리 때문에 아프고, 힘겨운데 그걸 ‘절대로’ 남에게 들켜서도, 드러내서도 안 되니까. 아픔+불편+괜찮은 척까지 하다 보면 정! 말! 많! 은! 에너지가 소모되니까.
생리대 회사에 다닌 후론 이런 불편, 부담, 걱정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졌다.
평소보다 예민할 때 ‘생리해? 생리해서 그래?’ 이런 식의 저급한 농담 따윈 주고받지 않는다. 생리하지 않는 척, 기운 있는 척하지 않아도 된다. 아프면 아픈 대로, 기운 없으면 기운 없는 대로 ‘생리하는 본래의 나’ 그대로 드러내도 누구도 개의하지 않는다. ‘힘들면 제발 집에 가! 가서 쉬어! 권리야!’ 등 떠민다. 파우치나 서랍에서 생리대를 꺼내며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된다. ‘걍’ 꺼내서 ‘걍’ 화장실에 간다. 늘 반복해서 말하는 ‘자연스러운 생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행여 생리혈이 새면 어쩌나 항상 고민하는데 만약 새서 옷에 묻으면 수습할 수 있도록 동료들이 앞다퉈 도와줄 것이다. 그리고 또 ‘제발 집에 가!’ 할 것이다.
물론 성인이고, 해야 할 일도 있고, ‘아프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집으로 고!’ 하지 않으니 생리기간에도 어쨌든 괜찮은 척한다. 그런데 생리대 회사에 다니면, ‘생리’ 때문에 벌어지는 모든 일을 이해해주는 회사에 다니면 확실히 마음 한편이 덜 무겁다. 생리가 덜 걱정스럽다.
많은 회사, 집단, 사회가 그러길 바란다. ‘이런 분위기’가 사람을 얼마나 편하게 해 주는지, 그 편함 덕에 일의 능률이 얼마나 오르는지, 이 모든 게 모인 ‘안정감’이 생리로부터 얼마나 자유롭게 해 주는지 나만 느끼기엔 너무 아까우니까.
별거 아닌 것 같죠? 그 별거가 별거인지 아닌지 일단 한번 해보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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