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 이야기
시를 쓰는 버스 운전사가 있다. 그의 이름은 패터슨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시리얼을 먹고, 도시락을 들고 출근을 한다. 버스에 승객을 태우고 정해진 노선을 운전하다가 퇴근한다. 저녁을 먹고, 반려견과 산책하고, 단골 바에 갔다가 귀가 후 잔다.
패터슨은 매일 이 과정을 반복한다. 영화는 똑 같은 일상을 보내는 패터슨을 요일별로 보여준다. 화면에 적힌 ‘Monday’, ‘Tuesday’, ‘Wednesday’, ‘Thursday’, ‘Friday’ 등이 없다면, 월요일을 화요일로, 화요일을 금요일로 착각할 정도로 매우 흡사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아니, 하루하루를 매우 흡사하게 보낸다. 그러는 와중에 시를 쓴다. 일 하다가, 점심 먹다가, 퇴근 후에 시를 쓴다. 꾸준히, 차근차근 쓴다.
뜻밖의 사고, 우연한 만남이 끼어들지만 패터슨은 ‘거의 비슷한 일상으로 삶을 채우며 시를 쓰는 사람’이다. 그 모습을 담은 영화는 자칫 지루할 수 있다. 보다가 스르륵 잠들 수도 있다. 그래도 문제는 없다. 당신이 잠든 사이 영화에서 특별한 일은 벌어지지 않으니까.
영화 ‘패터슨’과 주인공 ‘패터슨’에게 매료된 이유는 이 꾸준함과 무미함 때문이다.
금방 싫증 내고, 빨리 포기하고, 심심한 걸 조금도 못 견디며, 새로운 것, 자극적인 것을 찾는다. 글은 엉덩이 힘으로 쓰는 것이며, 영감은 찾아오길 기다릴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때에 오도록 유도해야 한다는데 천성이 그걸 못한다. 지루해도, 지금 당장 눈에 띄는 성과가 없어도 진득하게, 끈질기게 반복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 그래서 무언가를 계속, 꾸준히 하고 또 하는 패터슨에게 끌렸다.
곰곰 생각해보니 내 주변인 모두 패터슨이다. 엄마를 봐도, 짝꿍을 봐도, 친구들을 봐도, 동료들을 봐도 모두 패터슨과 흡사하다. 잠을 자고, 일어나고, 뭔가를 하고, 다시 잠을 자는 생활을 반복한다. 맡은 바를 꾸준히 이어 나가고, 하루하루 인생 경험치를 쌓는다. 틈틈이 시를 쓰는 패터슨처럼 틈틈이 ‘지금 내가 사랑하는 것’을 한다.
주변인과 패터슨이 흡사하다 느낀 것은 주변인이 패터슨을 닮았기 때문이 아니라 ‘패터슨’이 ‘우리’에게서 탄생했기에 그런 것 아닐까. 감독의 제작기를 본 적 없어서 장담하긴 어렵다. 조심스럽게 추측하자면 ‘일상과 반복의 미학’ 즉, 우리가 매일 하고 있는 ‘것’을 담으려던 게 아닐까. 드라마틱한 사건도 없고, 세상을 뒤흔드는 소식의 주인공이 되지도 않지만, 복사+붙여넣기 연속으로 보이는 나날이지만, 꾸준히 살아내고 있는 우리가 ‘예술’이라는 것을 달리 표현한 게 아닐까. 같아 보여도 어제와 오늘은 분명 다른데, 한 번 흘러간 물살에 다시 발을 담글 순 없는데, 그 다름 속에서도 ‘한결같이’, ‘진득하게’ 삶을 살아내는 대단함을 우리가 실천하고 있음을 전하려던 게 아닐까.
오독일 수 있으나, 이렇게 믿고 싶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패터슨을 응원한다.
- 하다
사진 © IM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