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 이야기
부모님은 시골에 산다. 주변에 다른 집은 없으며, 앞에 작은 저수지만 하나 있다. 지대가 높고, 공기가 맑아서 개똥벌레가 날아다닌다.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 고라니가 밤이 깊었다고 우는 소리가 가득하다. 도시에서는 보지 못하는, 이름 모를 다양한 새가 마당에서 놀다 간다. 강아지 밥도 빼앗아 먹고, 낮잠 자는 강아지 등에 올라탔다가 혼쭐나고 도망간다. 말 그대로 공기 좋고, 물 맑고, 평화로운 시골집이다.
부모님은 강아지, 흑염소, 닭과 함께 산다. 어떤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걍’ 같이 산다. 흑염소는 계단으로 올라와 (부모님 집은 1층 주차장, 2층-3층 주거공간으로 되어있다) 현관문을 거칠게 두드리며 밥 달라고 할 정도로 똑똑하다. 닭은 야무지게 알을 낳아 품어서 병아리를 부화시켜 데리고 산책한다. 아-주 귀엽고, 아-주 소란스럽다.
부모님 집에는 주로 진돗개가 산다. 종종 관광객이 버린 아이, 도시에서 키우다가 감당 안 된다며 대신 키워달라 맡긴 아이 등등 다른 강아지들도 머문다(안타깝게도 그런 아이들은… 다들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 인간이 제일 나쁘다). 제일 처음 키운 백구는 ‘흰둥이’였다(모든 강아지 이름은 내가 짓는다). 뼈대(?) 있는 가문에서 태어난 진돗개 ‘흰둥이’는 멧돼지와 다퉈 등이 다 까지고, 고라니를 사냥해 마당에 놓곤 했다. 밖에서 놀다 돌아오면 코로 툭툭 치면서 ‘다녀왔습니다’ 인사를 했다. 흰둥이의 아들, 그 아들의 아들까지 있었는데 다 비슷했다.
암컷 백구도 있는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꽃분이’다(얼마 전에 아파서 죽었다. 10년 넘게 살았는데… 지금은 마당 한쪽에서 자고 있다). 꽃분이는 딱 한 번만 출산을 했다. 남자 친구가 제법 많았지만 친하게만 지낼 뿐, 자기가 원하지 않으면 아이를 낳지 않았다. 보통 ‘동물은 본능에 충실하다’고 하고, 사람처럼 ‘사고’ 하기 쉽지 않다 여긴다. 꽃분이를 보면서 그건 인간이 만든 편견임을 깨달았다.
똑똑한 꽃분이가 사라진 적이 있다. 주변 동네에 가서 꽃분이를 불렀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텅 빈 꽃분이 집은 모르는 새들의 사랑방이 됐다. 꽃분이는 엄마 등산 친구였던 터라 엄마는 꽃분이가 없어진 후엔 등산을 못했다. 집에 오는 손님 모두 ‘아직도 꽃분이 안 왔어?’ 물었다. 나도 엄마랑 통화할 때마다 ‘꽃분이 안 왔어?’ 물었다.
우리집 진돗개들은 가끔 집을 비웠다. (이웃 주민들이 여러 번 ‘그 집 백구가 우리집 왔다 갔어~’ 알려준 소식에 따라 추측하건대) 정기적으로 관리하는 구역이 있는 것 같았다. 쭉 둘러본 후 평균 일주일 안에 집으로 왔다. (세상이 흉흉하고, 수시로 개를 잡아가는 트럭이 오가기에 만약을 대비해 아이들을 묶어둔 적도 있다. 그럼 몇 날 며칠 동안 밥도 안 먹고, 불러도 안 오고, 뒤돌아서 벽만 보고 있다. 힘으로 목줄을 끊는 건 기본이다.) 그런데 이건 수컷들의 습성이었고, 암컷들은 보통 집에만 있었다. 그래서 꽃분이의 가출이 단순 가출이 아니라 납치(?)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누가 우리 꽃분이를… 모두 침울하게 몇 달을 보냈다.
그날도 엄마랑 통화하면서 꽃분이 소식을 물었고, 엄마는 꽃분이가 오지 않았다고 했다. 둘 다 한 숨을 푹 쉬었다. 그러다 엄마가 소리를 질렀다! 어머나! 그리고 말했다, 꽃분아!
본 적 없는 목줄을 한 꽃분이가 마당에 서있었다고 한다. 누군가 꽃분이를 잡아서 집에 묶어 뒀는데 탈출한 것으로 추정했다. 잘해준 것도 없는데 그래도 집이 좋다고 탈출할 기회를 엿보다가 돌아온 게 고맙고, 짠했다. 언니 기억해?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밥은 잘 먹었어? 물어도 꽃분이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차분하게 앉아서 내 손을 천천히 핥았다. 다정하고, 친절하고, 똑똑하고, 따뜻한 우리 꽃분이가 맞았다.
마지막으로 본 꽃분이는 많이 아파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말썽 한 번 부린 적 없고, 어릴 때부터 의젓했던 꽃분이는 마지막까지 그 모습 그대로였다.
사람이 죽어서 하늘나라로 가면 먼저 가 있던 반려동물이 꼬리 치며 마중 나온다고 한다. 그때 만날 우리 애기들 얼굴을 가끔 떠올린다. 잊어버리면 안 되니까.
-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