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버 이야기
오전 일찍 뜬 눈으로 한참을 밍기적대다가 기어나온 거실엔 뜨뜻한 햇살이 비춘다. 어제부터 머릿속에 맴도는 음악을 흥얼거리며 냉장고를 뒤적이면 눈에 띄는 건 소분해서 얼려둔 돼지고기, 당근, 애호박, 파, 마늘, 고추. 찬장을 뒤적이면 눈에 띄는 소면. 서랍을 열어 보면 김자반이 있다. 좋아, 오늘은 국수를 해 먹자.
밀가루로 만들어진 음식을 차게 먹는 걸 즐기지 않아 따뜻한 잔치국수를 좋아한다. 그런데 왜인지 멸치나 다시마를 이용해 육수를 내려 하면 늘 실패한다. 비리거나 쓰거나 아무튼 끔찍한 맛을 내는 육수를 쏟아버리고 나면 밀려오는 진한 현타를 이겨낸 게 벌써 몇 년 전이고, 돼지고기를 사용한 잔치국수를 해 먹기 시작한 것도 몇 해가 지났다. 난 전공자도 전문가도 아니지만 이 국수는 꽤나 그럴듯한 맛을 낸다. 어떻게 만드는지 주절주절 설명해 보려 한다.
신선한 생고기면 더 좋겠지만, 갑자기 계획된 요리에 모든 재료가 완벽할 순 없다. 냉동된 돼지고기를 살짝 녹인다. 전자레인지에서 고기가 돌아가는 동안, 대파의 하얀 부분과 통마늘 두어 개, 청양고추 두어 개를 깨끗이 씻어 준비한다. 냄비에 물을 받고 대파, 통마늘, 청양고추, 통후추 대여섯 알, 대충 녹은 고기와 함께 강불에 끓인다. 이후 육수가 팔팔 끓기 시작하면 국간장 약간, 멸치액젓 약간을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한다. 육수를 만드는 과정이다.
스토브에 육수 냄비를 올려 두고, 고명을 준비한다. 먼저 대파와 마늘이다. 얇게 썰어 기름에 튀기듯 볶은 뒤 건져 기름을 빼 둔다. 당근과 애호박을 채 썰어 대파와 마늘을 볶은 기름에 딱딱한 느낌이 사라질 정도로 볶아 둔다. 그리고 양념김치. 김치를 적당한 크기로 썰고 고춧가루와 설탕, 참기름 약간, 참깨로 양념해 둔다. 청양고추를 썰어 두고, 김자반을 덜어 둔다. 다음은 팔팔 끓는 육수 냄비에서 고기만을 건져 얇게 썰고, 육수 두 스푼과 참기름 약간, 소금, 후추로 간을 해 버무려 둔다. 이렇게 하면 모든 고명이 준비된다.
이제 소면을 삶는다. 고명 6(고기)을 준비하기 직전에 물을 올려 두면 좋다. 팔팔 끓는 물에 적당량의 소면을 넣어 3분 정도 익힌다. 한 올을 꺼내 맛을 본 뒤, 약간 덜 익은 듯 쫀득한 식감이라면 바로 불을 끄고 소면을 체에 받쳐 찬 물에 헹군다. 물기를 털고 체에 받쳐 둔다.
냄비를 닦고 나면 소면의 물기가 웬만큼 다 빠져 있다. 육수를 다시 약불에 올리고 소면을 그릇에 옮겨 담는다. 만들어둔 고명들을 소면 위에 얹는다(김자반과 볶은 대파, 마늘은 아직 올리지 않는다). 그 위로 육수를 붓고, 후추와 참기름을 취향껏 뿌린다. 마지막으로 김자반과 볶은 대파, 마늘을 올리면 내 취향 가득한 잔치국수 완성.
부엌 창문을 열어 두면, 낮인데도 제법 차가운 바람이 불어들어온다.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도 서늘한 날씨에 어울리는 맛을 내는 음식이다. 과정이 길어 보이지만, 육수를 올려 두고 모든 과정을 진행하면 중간중간 정리하며 준비하더라도 길어야 40분이다. 어려울 것도 없으니 한 번쯤 시도해 보셔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