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 이야기
초경 후 2년쯤 지난여름이었다. 난생처음 입은 '교복'과 낯가림을 끝낸 시기였다. 쉬는 시간 10분 안에 화장실에서 차례를 기다렸다가 생리대를 갈고, 재빨리 교실로 달려오는 게 벅찼다. 움직임이 느려 언제나 제일 마지막 순서로 화장실을 쓴 탓에 쉬는 시간이 짧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학교가 마칠 무렵엔 화장실에 가지 않았다. 바로 학원에 가서 수업을 듣는 동안에도 생리대가 '제발 갈아줘! 한계야!' 외치는 걸 무시했다. 집에 가는 버스에서는 만사 다 귀찮아서 빨리 침대에 눕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집에 돌아와 잠옷으로 갈아입고, 교복을 본 순간 아찔했다. 치마에 빨갛고, 커다랗게 피가 물들어 있었다. 언제부터 이랬는지 알 수 없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참혹함을 봤는지 역시 알 길이 없었다. 얇은 하복 치마라 빨리 빨아서 말릴 수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옷에 피가 묻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황은 꿈까지 나를 따라왔다.
오늘은 어제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잠에서 깼는데 이불에 그려진 빨갛고, 커다란 동그라미가 제일 먼저 보였다. 말도 안 돼. 거짓말. 내가 아무리 거짓말이라 우기고, 꿈일 거라 외쳐도 생리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얼마나 조심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그것도 하루의 시작에. 엄마는 빨면 되니까 걱정 말라고 했지만 이 모든 게 탐탁지 않았다.
왜 그럴까? 왜 교복 치마에 묻은 피와 이불에 스며든 피 그리고 그런 상황들이 탐탁지 않았을까? 뭐가 묻으면 불쾌하긴 하다. 거기까진 인정. 그런데 본능적으로 ‘탐탁지 않다’고 여긴 이유는 무엇일까? 피는 액체이고, 얇은 생리대 한 장이 다 받아낼 수 없는 양이며 내가 숨만 쉬고 가만히 있지 않는 이상은 조금이라도 샐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지 않나? 그런데 왜?
학교에서 생리대를 꺼내면 선생님들은 '보이게 들고 다니지 마!'라고 했다. 엄마는 아빠 눈치를 살피며 은밀하게 생리대를 줬다. 생리대를 살 때는 또 어떻고? 점원 분이 검은 봉투에 넣으면서 '보이게 가져가면 창피하잖아요~'라고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마트 홍보용 전단지로 둘둘 말아서 주는 점원 분도 있었다. 이렇게 생리대를 생리대가 아닌 것처럼 위장하고, 숨기는 상황이 반복됐다, 마치 주입식 반복 교육처럼. 그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뇌가 '생리대는 숨겨야 하는 것'으로 저장한 게 아닐까? 그럼 자연스럽게 '생리도 숨겨야 하는 것' 그룹에 묶였겠지? '숨겨야 하는 것'을 교복과 이불에 남겼으니 '탐탁지 않았'겠지?
이상하다. 생리를 하게 됐을 땐 '여자가 된 걸 축하해', '어른이 된 걸 환영해', '이제 엄마가 될 수 있어' 등등의 말로 축하를 받는다. 거창한 축하식이나 대단한 행사는 없더라도 일단 '축하'를 받긴 받는다. 그런데 그 후엔 생리와 생리대를 숨겨야 한다. 흔적도 남겨선 안 되며 내가 생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내보여선 안 된다. 앞뒤가 너무 다른 거 아닌가? PMS, 생리, 생리통, 생리대에 시달리는 것도 벅찬데 그걸 감추고, 아닌 척하기까지 해야 하니 너무 피곤하다.
뭘까, 생리? 축하받을 일인데 심신이 힘들고, 환영받을 일인데 감춰야 하는 생리. 도대체 뭘까?
- 하다